<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유영국>
1957년 제1회 《모던아트협회전》에 출품한 작품 중 <노을>로 추정된다. 이 전시에서 유영국은 <산맥>, <산과 구름>, <호수>, <가을>, <생선>, <노을>, <새> 총 7점을 출품하면서, 한국전쟁 후의 본격적인 화업을 보여주었다. 곡선을 이루는 산등성이 위로 빨간 노을이 세상을 붉게 물들인다. 어둠이 내려앉은 대지와 붉은 하늘이 극적인 대조를 이루는 가운데, 화면 오른쪽 아래 주황빛의 조각 하나가 둘 사이의 관계를 이어준다. 단순한 선과 색, 화강석처럼 단단하게 겹쳐 칠해진 마티에르의 효과는 ‘현대회화’가 나아갈 새로운 길을 예고하고 있다.
국전 사태로 미술계 전반이 어지럽던 그다음 해인 1956년, 젊은 미술가들을 중심으로 관권주도형 미협에 대항하는 작은 그룹들이 그동안 가둬져 있던 봇물이 터지듯 여기저기서 태동하기 시작했다.
같은 예술적 이념을 근간으로 하는 미술가들끼리 소그룹으로 미술운동을 전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자각 속에서 가장 먼저 출범한 그룹은 ‘사인회’였다.
홍대 출신의 젊은 작가 네 명(김영환, 김충선, 박서보, 문우식)이 조직한 사인회는 대담하게도 “국전과 결별하고 기성화단의 아집에 철저한 도전과 항쟁을 통하여 창조적인 시각 개방에 집중적으로 참여”한다는, 파격적인 ‘반(反)국전’을 선언하면서 화단에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다음 해인 1957년에는 ‘창작미술가협회’, ‘현대미술가협회’, ‘신조형파’, ‘모던아트협회’ 네 개의 그룹이 결성되었다. 보다 다양하고 자유로운 모던아트가 기지개를 켜며 피어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창작미술가협회’는 ‘대한미전’을 중심으로 활약하던 중견작가들이 새로운 감각을 추구하기 위해 결성한 모임이었다. 그에 비해 20대 젊은 화가들에 의해 결성된 ‘현대미술가협회’는 실험적 작품을 과감하게 선보이면서 한국 화단에 추상미술이 크게 수용되는 긍정적 효과를 불러왔다. ‘신조형파’는 서구 입체파 이후의 미학적 사조에 바탕을 두고 혁신을 꾀한 그룹이었다.
이 시기 유영국도 기득권 싸움과 이권분쟁으로 얼룩진 국전에 크게 실망하고 분노하던 터였다. 게다가 누구보다 먼저 일본에서 전위미술 그룹 활동을 했던 유영국은 예술적 취향이 같은 화가들끼리 모여 함께 도약하는 그룹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유영국은 ‘신사실파’ 동인이었던 이규상과 박고석, 황염수, 한묵과 함께 그해 10월 ‘모던아트협회’를 결성했다. 모던아트협회는 “순수한 현대회화 운동의 전위체”를 표방하며 한국 최초로 현대회화 작가들이 결성한 미술단체였다. 보수적인 관전(국전)을 견제하면서 건전한 화단 풍토를 육성하고자 한 모던아트협회는 한국 현대미술의 시작을 알린다고 할 만큼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결성이었다.
유영국은 1957년 동화화랑에서 열린 제1회 《모던아트협회전》에 <호수>, <산맥>, <새>, <생선>, <가을>, <노을>, <산과 구름> 총 7점의 작품을 출품했다. 이때 유영국은 화강석처럼 단단하게 겹쳐 칠하는 마티에르 효과를 강하게 사용했다.
1958년 제3회 《모던아트협회전》에는 <나무>, <산맥>, <구름>, <바다에서>, <비>, <언덕> 총 6점의 작품을 출품했다. 정규와 김창억이 신입회원으로 합류한 가운데 개최된 제4회 《모던아트협회전》에는 <계곡>, <노을>, <산>, <호수> 총 4점의 작품을 출품했다.
‘모던아트협회’는 창립전을 시작으로 1960년 7월까지 총 6회의 협회전을 열었다. 그동안 정점식, 임완규, 정규, 문신, 김경, 천경자 등이 가입하면서 회원의 폭은 점점 넓어졌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순수추상을 하는 유영국, 이규상과 나머지 표현주의와 후기입체파를 지향하는 모던아트 회원들 사이에 점차 간극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미술 이념적 차이가 아니라 회원들의 폐쇄적인 태도에서 기인했다. 모던아트 회원들은 《모던아트협회전》 이외에는 작품을 출품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이들은 자기들만이 옳고 자기들만이 최고라는 독존주의와 폐쇄적인 예술 엘리트주의에 경도되어 또 다른 모순에 빠져들고 있었다.
유영국도 고집은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사람이었다. 어떠한 식으로든 예술을 독선화시키면서 그것을 마치 자기들만의 제사장적 특권인양 권력화하려는 독존과 아집을 유영국은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
회원들이 모던아트협회 전시회 외엔 참가하지 않겠다는 내부방침을 정하자 유영국은 1959년 11월 제4회전을 끝으로 자신이 주도했던 모던아트협회를 탈퇴한다. 유영국이 생각하는 참된 예술운동은 평등하고 자유로운 이념 속에서 각각의 차이를 존중하고 함께 발전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