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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Feb 22. 2017

03. 미움받을 용기

<도널드 트럼프의 빅뱅>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겪은 고비는 힐러리 클린턴과 치른 대결이 아니라 공화당 후보 경선 과정이었다. 도널드 트럼프까지 모두 17명이 출마했는데, 이는 역대 대통령 선거 역사상 가장 많은 수였다. 모두가 쟁쟁했다. 몇 차례 미국 대통령 선거판을 기웃거리는 했지만, 도널드 트럼프는 실질적으로 정치 초년생이었다. 한마디로 1 대 16으로 벌이는 격투기였다.

사실 대통령 선거를 1년 6개월 앞두었던 2015년 4월 전후부터 공화당의 분위기는 썩 좋지 않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집권한 8년 동안 정권을 내준 공화당은 정권 탈환에 나서야 할 상황이었지만, 이렇다 할 지도자 후보가 나타나지 않았다. 첫 번째 유색인종 대통령에 이어 첫 번째 여성 대통령을 준비하는 민주당과 달리, 공화당은 이렇다 할 호재를 찾을 수 없었다.

당시 가장 주목받던 공화당 대선 예비 후보는 뉴저지 주지사 크리스 크리스티였다. 하지만 전국적인 지명도를 얻기에는 그에게 이렇다 할 개인사가 부족했다. 그런 그를 이어 켄터키 주 상원 의원 랜드 폴, 휴렛팩커드(HP) 회장 겸 최고 경영자 칼리 피오리나, 오하이오 주지사 존 케이식, 전 아카소 주지사 마이크 허카비 등이 자천타천으로 거론되었다. 도널드 트럼프는 이때까지도 대통령 출마 의사를 공식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그러다가 말로만 돌던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공화당 출마 소식이 실제로 전해졌다. 물론 그때까지도 미국 국민은 도널드 트럼프가 진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막대한 재산을 보유한 부동산 개발업자이자, 리얼리티 TV 쇼 ‘어프렌티스’를 진행한 경력을 지닌 도널드 트럼프가 단지 대중의 이목을 끌기 위한 쇼맨십 차원에서 대통령 선거 출마를 거론한 것이라고 여긴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2015년 6월 17일, 도널드 트럼프는 2016년 미국 공화당 대통령 선거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이즈음부터 공화당은 본격적인 대통령 선거 분위기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4월 여론조사에서 주목받던 인물들은 사라지고 새로운 인물들이 부각되었다. 도널드 트럼프로 인해 공화당 경선 분위기는 순식간에 타올랐다. 예상 밖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럼에도 도널드 트럼프와 관련한 미국 언론의 반응은 진지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쇼맨십 강한 도널드 트럼프가 벌이는 해프닝 정도로 생각했다. 대통령 선거 출마로 인기를 모은 도널드 트럼프가 그 경력을 사업에 이용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고, 빌 클린턴과 친한 그가 힐러리 클린턴을 측면 지원하는 것이라는 설도 나돌았다. 그때까지 정계는 물론이고 언론들도 도널드 트럼프가 대선에 완주할지 여부보다는 낙마 시점이 언제일지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출마 선언과 함께 도널드 트럼프의 인기는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공화당 역사에서 도널드 트럼프와 비슷했던 선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영화배우 출신 로널드 레이건이 대표적이다. 그는 1980년 제40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시 현직에 있었던 지미 카터 대통령을 물리치고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물론 도널드 레이건은 영화배우 협회장, 주지사 경력 등 나름 정치 경력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는 정말로 생짜 배기 대통령 경선 후보 출마자였다. 공화당 입당도 출마 선언과 동시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당시 공화당 1위 후보는 전 플로리다 주지사 젭 부시였다. 젭 부시는 부시 집안의 3번째 대통령 후보가 되겠다고 일찌감치 선언하고, 아버지와 형을 돕던 참모들과 2016년 대통령 선거를 준비하고 있었다. 공화당 지지자들은 부시 가문에서 또다시 후보가 나온다면 필패하리라 전망했지만, 당시까지는 15%로 가장 높은 지지율을 보였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가 출마를 선언하자마자 상황은 돌변했다. 7월 초 여론조사에서 도널드 트럼프는 젭 부시와 똑같이 15%의 지지도를 나타냈고, 이후 두 달 만에 25%라는 믿기 어려운 지지도를 확보했다. 도널드 트럼프가 도약하자 젭 부시의 지지도는 순식간에 10%대로 떨어졌다. 그리고 공화당의 버락 오바마를 꿈꿨던 흑인 신경외과 의사 벤 카슨, 플로리다 연방 상원 의원 마르코 루비오, 위스콘신 주지사 스콧 워커 등이 15%라는 지지율로 치고 나왔다.

지지율이 높아지면서 도널드 트럼프는 역풍을 맞기 시작했다. 첫 번째 고비는 12월 7일, 미국 의회가 행동에 나설 때까지 무슬림의 입국을 “전면적으로 통제해야 한다”고 한 발언 때문에 맞이했다.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이 인간 생명에 대한 존중이 없는 이슬람 성전(지하드) 숭배자들이 저지르는 참혹한 공격의 희생자가 될 수 없다”고 강조했는데, 여론의 반응은 싸늘했다. 공화당 내부의 반발도 엄청났고, 언론까지 나서서 무슬림 출신 전사자의 부모를 앞세워 도널드 트럼프를 공박했다. 12월 초에 행해진 여론조사에서, 도널드 트럼프는 갑자기 치고 올라온 텍사스 주 연방 상원 의원 테드 크루즈에게 1위를 빼앗겼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는 재미있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발언이 자극적일수록 유권자들이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이었다. 연예인의 가십에 주목하는 시청자들이 욕을 하면서도 다음 소식을 기다리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도널드 트럼프는 수위 높은 발언이 유권자들을 낚는 낚싯바늘이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무슬림 관련 발언 직후 트럼프에 대한 지지도가 일시적으로 떨어진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12월 말, 지지율은 원래보다 높은 35%로 뛰어올랐고, 테드 크루즈는 18%로 떨어졌다. 정치 초년생 도널드 트럼프는 선거의 본질을 완전히 터득했다. 후보는 어떤 식으로든 유권자의 관심을 계속 끌어야 했다. 터닝 포인트였다.

2016년에 접어들어서도 도널드 트럼프는 여전히 35%라는 높은 지지율로 1위를 차지했다. 2위인 테드 크루즈도 25%로 치고 올라왔고, 마르코 루비오, 존 케이식, 벤 카슨이 10~15%로 그 뒤를 이었다. 모두가 도널드 트럼프의 정치 선배였지만, 그는 이미 선거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는 유권자들이 궁금해서 안달이 날 발언을 연일 쏟아냈다. 그때부터 그는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 판세를 좌우하기 시작했다. ‘트럼프 타임’이 개봉된 것이었다.

2016년 2월 1일 공화당은 아이오와 코커스(caucus)를 시작으로 아이오와 코커스, 뉴햄프셔 프라이머리(primary), 사우스캐롤라이나 프라이머리를 치르기 시작했다. 도널드 트럼프는 연일 충격 발언을 내뱉었고, 다른 후보들은 도널드 트럼프 죽이기에 나섰다. 하지만 ‘트럼프 드라이브’는 좀체 꺾이지 않았다.

그사이 유력한 공화당 대선 후보 젭 부시가 경선을 포기했다. 후보 추대까지는 몰라도 경선 완주는 할 것으로 예측했던 젭 부시의 경선 포기는 충격이었다. 젭 부시는 반트럼프 진영에 앞장서겠다는 변으로 사퇴 의사를 밝혔지만, 선거 판세를 잘못 읽은 발언이었다. 아버지와 형에 이어 본인까지 대통령이 되겠다는 것은 민주 공화국 미국을 왕조로 만들겠다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다. 공화당 지지자들은 미국이 왕조 국가로 변모하는 데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경선은 도널드 트럼프 대 반도널드 트럼프로 정리되고 있었다. 경선에 나선 후보와 일부 공화당 당직자들은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 후보가 된다면 지지하지 않겠다는 발언을 서슴없이 내뱉었다. 공화당 스스로가 비민주적 이익 집단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경선 후보들은 물론이고, 도널드 트럼프를 주저앉히기 위한 공화당 지도부의 공격이 이어졌다. 도널드 트럼프로 인해 선거 정국은 뜨겁게 달아올랐고, 광고 시장을 의식한 언론은 가십성 기사를 연일 쏟아냈다.

도널드 트럼프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에 대한 폭로도 이어졌다. 거기에 도널드 트럼프의 거친 표현과 자극적 발언까지 더해져, 미국 대통령 선거 판세는 전례 없는 비난으로 얼룩졌다. 심약한 사람이라면 심장마비라도 걸릴 상황이었다. 하지만 당사자 도널드 트럼프는 요동하지 않았고, 오히려 상황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경선 과정 중 도널드 트럼프가 보여준 모습은 위기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당당함이었다. 알프레드 아들러식으로 표현하자면, 도널드 트럼프에게는 대통령 당선을 위해 ‘미움받을 용기’가 있었다.

그런 가운데 판세는 도널드 트럼프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공화당 지도부에서는 도널드 트럼프가 경선을 통과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내다보기도 했고, 경선을 통과해도 도널드 트럼프를 공화당 대통령 선거 후보로 받아들이지 말지를 표결에 부쳐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5월 3일 저녁, 인디애나 주 경선에서 패배한 테드 크루즈가 경선 선언을 포기하고 이튿날 저녁 존 케이식까지 뒤를 밟으면서, 중재 전당 대회가 열릴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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