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건축, 미술로 만나는 유럽
책 읽기는 집짓기와 같다.
집짓기 해보셨나요? 대부분 고개를 저으시겠지만, 저는 누구나 해보셨다고 생각합니다. 왜냐고요? 그럼 먼저 집짓기란 어떤 과정인가 간단히 살펴보죠. 집짓기는 어느 땅이 좋을까 발품을 팔아 땅을 골랐다면, 밑그림을 그리고, 터를 닦고, 땅을 파서 기반을 다지고, 기둥을 세우고, 벽과 벽을 잇고, 지붕을 덮는 과정입니다. 어릴 때 가지고 놀던 레고 블록 쌓기, 해변에서 모래성 쌓기가 다 집짓기 아닌가요? 그렇다면 다 해보신 것과 다름없죠.
책을 읽는다는 것은 집짓기와 같습니다. 평면을 입체로 세우는 활동이죠. 우리의 지식 속에 2차원 평면으로 연결된 단어, 주제는 책을 통해 3차원의 입체로 세워집니다. ‘3차원 입체 독서’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첫째, 관점(perspective)입니다. 평면일 때 미처 생각지 못했던 관점이 입체로 세웠을 때 생기죠. 건축물을 어느 방향에서 보는지, 내부와 외부 어디서 보는지에 따라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둘째, 연결(connection)입니다. 집을 짓다 보면 마을이 생기죠. 마을과 마을은 도로로 연결됩니다. 책을 통한 지식도 이처럼 연결되어 가며 확장되고 통한다는 의미입니다. 셋째, 통찰(insight)입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속담처럼 하나의 개별적인 사실이나 현상을 보고도 그와 관련된 전반적인 실태나 본질을 환히 꿰뚫어 보는 역량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스토리텔링으로 유럽 여행을 안내하다.
<유럽의 시간을 걷다>의 서평에 앞서 책 읽기를 집짓기에 비유해본 이유는, 이 책이 유럽이라는 평면을 입체적으로 세워 소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럽 역사의 길고 오랜 시간에 담겨 있는 인물, 역사, 예술, 문화, 건축 이야기를 파노라마처럼 펼쳐내고 있지요. “처음을 기억한다. 책을 쓰기로 마음먹은 그 날부터 시대의 인물들이 나에게 속삭이기 시작했다. 시대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달라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말이다.”로 시작하는 저자의 말에서 시대의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전달하려는 저자의 의도를 읽을 수 있습니다.
저자 최경철은 영국 유학 기간 특별한 경험을 합니다. 현지 가이드죠. 여행자의 관광을 이끌어주는 역할입니다. 그런데 가이드 여행의 질은 어떤 가이드를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저 안내만 해주는 가이드가 있고, 자신의 경험담과 뒷골목 야화를 들려주는 가이드가 있는데,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가이드는 여행지의 역사, 문화, 예술을 폭넓게 아우르며 스토리텔링으로 들려주는 가이드가 아닐까요? 당시 저자의 가이드는 어떠했는지 알 수 없으나, <유럽의 시간을 걷다>를 통해 저자는 스토리텔링 가이드로서 우리를 안내하고 있습니다.
현재 서울에서 건축 디자인 회사 모프(Morph)를 운영 중인 저자는, 팟캐스트 <예술핥기>의 진행자로 예술을 더욱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돕는 또 다른 가이드 일을 하고 있습니다. 경희대학교와 영국 런던 대학교(University College London) 바틀렛(Bartlett) 건축대학에서 공부하고 서울과 런던에서 건축 실무 경험도 쌓았지요.
로마에서 20세기까지, 유럽을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
저자의 유럽 여행은 긴 호흡으로 이어집니다. 로마 시대의 끝자락에서 이야기가 시작되죠.
“혼돈의 시대가 있었다. 4세기부터 시작된 이 혼돈은 유럽사회 전반에 불안과 공포를 일상으로 만들었다. 이 시대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 이유는 하나다. 이와 같은 상황을 극복하면서 새로운 시대가 탄생하기 때문이다.” <유럽의 시간을 걷다> 중
책은 6개의 장과 51편의 작은 이야기들이 모여 있는데, 저자는 편마다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설처럼 들려주며 시선을 끌어냅니다. 야만족의 침입으로 성당에 쥐죽은 듯 숨어 아이를 가슴에 묻고 떨고 있는 여인, 모진 시간의 풍파를 견뎌낸 건축물 앞에서 건축 양식을 되새기는 석공의 이야기는 할머니 무릎에 앉아 ‘옛날 옛날에~’로 시작하는 이야기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입니다.
‘1347년 중세 유럽에서 흑사병 창궐’ 이것은 학교에서 우리가 배우고 기억한 점과 같은 지식입니다. 중세가 저물어갈 무렵, 또다시 혼돈의 시대를 맞은 유럽의 이야기죠. 이어서 ‘흑사병 창궐 후, 중세 시대가 막을 내리고 르네상스 시대로 진입’이라는 또 하나의 점이 찍힙니다. 이렇게 점과 점 사이, 우리가 지식으로 기억 속에 집어넣지 못했던 시대의 이야기들이 건축과 미술의 역사와 맞물려 흥미롭게 이어집니다.
‘로마네스크’는 언제 이름 붙여졌는가.
다만 무엇이 오류인지 확인이 필요한 부분도 눈에 띕니다. 로마네스크의 유래를 설명한 글에서 저자는 로마네스크가 19세기에 명명된 이름이라 하였는데요.
“로마네스크는 두 개의 단어를 조합한 말이다. 로마(Roma)는 ‘로마제국’을 의미하고 네스크(Nesque)는 ‘풍’을 뜻한다. 즉 로마풍 건축 양식이다. 쉽게 말해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은 로마 건축물과 유사하다. 그러면 누가 이러한 이름을 붙였을까? 실제로 당대에는 로마네스크라는 말이 존재하지 않았다. 로마네스크라는 말은 19세기 미술 비평가들이 명명한 것이다. 이 비평가들은 10~12세기에 나름의 형식적 완성을 갖춘 건축 양식이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 형식의 바탕에 로마의 건축 양식이 있다는 것을 반영해 로마네스크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런데 로마네스크의 문학비평용어 사전을 찾아보면, “문예 용어로서 로마네스크는 사건과 심리의 측면에서 현실적 논리를 초월하여 독자의 상상력을 강력하게 자극하는 성질을 뜻하는 것으로 17세기 중엽 프랑스에서 사용되었다. (네이버 문학비평용어 사전 ‘로마네스크’ 편 참조)”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17세기부터 문예 용어로 사용된 말을 19세기에 이르러 미술 비평가들이 건축 용어로 명명한 것인지, 둘 중 어딘가에 오류가 있는 것인지 독자는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군요.
유럽의 시간은 세계의 반쪽, 유럽에 대한 나만의 관점과 통찰을 얻다.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신고전주의, 그리고 새로운 양식들. <유럽의 시간을 걷다>는 이렇게 4세기부터 20세기까지의 방대한 유럽의 시간을 아우르고 있습니다. 스토리는 마치 옆집 이웃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한 생동감이 느껴집니다. 스토리의 주인공을 통해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가 그들이 사는 시간 속에서 역사를 읽고, 그들이 이끄는 곳에 발을 딛고 건축과 미술의 가이드가 되어 주고 있지요.
“유럽에 대해 안다는 것은 세계의 반쪽을 이해하는 것과 같다.”는 저자의 주장은, 유럽의 문명이 세계의 근현대사에 미친 영향이 얼마나 컸는가를 말합니다. 역설적으로 지금의 세계화는 유럽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책에 나오는 주인공들과 함께 <유럽의 시간을 걷다> 보면 로마, 피렌체, 베네치아, 파리, 런던부터 바르셀로나, 피사, 아헨, 라벤나, 아를, 더럼까지, 어느새 내 머릿속에 입체적으로 세워진 유럽의 집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유럽 여행을 실제로 하든 하지 않든, 유럽의 역사에 대한 나만의 관점과 통찰을 갖고 세상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요.
임재영 l 더좋은책연구소 소장, 서평가
“독서는 완전한(full) 사람을, 토론은 준비된(ready) 사람을, 쓰기는 정밀한(exact) 사람을 만든다.”는 프랜시스 베이컨의 말에 이끌려 독서에 몰입했다. 책을 읽고 비평하며 더 좋은 책을 소개하는 일에 매력을 느껴 서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