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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작별,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그때 당신이 거기에 있었다>

by 더굿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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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청 걱정을 하느라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다. 할아버지 이야기는 학교 수업보다 더 지루했다. 하지만 샤오투, 샤오황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으로 거리를 재는 시늉을 했다.

그러는 동안 지청은 아빠가 할아버지에게 보낸 편지들을 모두 읽고 부모님의 이혼 서류와 엄마가 외국에서 돈을 보낸 송금 명세서도 확인했다.

그날 우리의 임무가 모두 끝난 후 지청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알고 보니 나는 이곳에서 태어나지 않았어. 우리 엄마, 아빠는 원래 다른 도시에 살았는데 내가 태어나자마자 두 분이 이혼을 하시고 엄마는 외국으로 떠나셨나 봐. 아빠는 이혼 사실이 창피하기도 하고 내가 자라면서 비뚤어질까 봐 고아원에 맡기셨어. 그런데 할아버지가 이 사실을 알고 크게 화를 내시며 나를 데려오셨대. 그리고 아빠에게 다시는 나를 보러 오지 말라고 하셨나 봐.”

나는 이 일을 꾸밀 때 지청이 당연히 영화처럼 다시 가족을 만나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청의 결말은 영화와 달리 참담했다.

“전에 부모님 소식을 알게 되면 만나러 갈 거냐고 물었었지? 생각해봤는데 부모님을 만나러 가지 않을 거야. 이럴 줄 알았다면 차라리 돌아가셨다고 생각하고 살걸…. 차라리 내가 태어나지 말았으면 좋았을 걸….”

잠시 후 지청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아니야. 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우리 할아버지는 어땠겠어? ”

“맞아. 우리는 네게 그런 할아버지가 계시다는 게 정말 부러워. 손으로 포탄도 수백 개씩 나르고, 손가락으로 거리를 재는 법도 아시잖아.”

사실 이런 위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차라리 모르는 척하는 편이 나았다. 우리는 지청에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했고 지청 역시 자신에게 아무 일도 없었던 척했다. 우리는 이렇게 모르는 척하고 있으면 모든 일이 저절로 마무리될 거라고 믿었다.

그 이후로 우리는 지청의 부모님에 관한 이야기는 절대 꺼내지 않았다. 농담을 할 때도, 숙제를 베낄 때도, 선생님께 야단을 맞을 때도 ‘부모’ 혹은 ‘엄마, 아빠’ 등의 단어는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6학년으로 올라가는 방학에 지청은 할아버지와 함께 고향으로 떠났다. 지청이 없는 방학은 우리 세 사람에게 아주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방학숙제를 스스로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셋이서 3분의 1씩만 완성하려고 해도 머리를 쥐어짜야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지청이 방학숙제를 다 끝내고 가도록 했어야 했다. 어쨌든 우리는 그렇게 방학을 보냈다.

개학 첫날, 지청은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그 다음날도 보이지 않았다. 셋째날 선생님께 여쭤보니 지청이 아파서 학교에 못 나온다고 했다.

일주일 후에도 지청은 나타나지 않았다. 한 달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샤오황이 집에 찾아가보자고 했지만 나는 지청이 다 나으면 학교에 다시 나올 거니까 방해하지 말자고 말했다. 샤오투도 그러자고 했지만 샤오황이 펄쩍 뛰며 말했다.

“만약 지청이 아주 심각한 병에 걸려서….”

“그럴 리 없어! 꼭 돌아올 거야!”

나는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그 말을 샤오황이 할까 봐 얼른 말을 끊었다. 샤오황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났지만 지청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매일 달걀 네 알을 학교에 가져갔다. 그런데 나 혼자서는 두 알만 먹어도 배가 불렀다. 어떻게든 꾸역꾸역 하나를 더 먹었지만 마지막 한 알은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집에 가져가면 엄마가 다음날은 네 알을 삶아주지 않을까 봐 남은 달걀은 학교 연못에 버렸다. 한 알, 두 알, 세 알, 네 알… 달걀은 계속 버려졌다.

네 사람이 이제 세 사람이 되었다. 한 사람 줄었을 뿐인데 절반이 뚝 떨어져나간 듯 허전했다. 이제 학교가 끝나고 셋이 함께 걸어가도 서로 별다른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점점 집에 함께 가는 날이 줄었다. 나는 이제 숙제하는 것을 깜박해도 다른 친구 것을 베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틀리더라도 내가 직접 했다.

어느 날 수업이 모두 끝나고 선생님께서 할 말이 있다며 반 친구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나는 분명 지청과 관련된 이야기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그래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모든 정신을 듣는 데 집중했다.

“오늘 오후에 지청의 할아버지가 학교로 전화를 하셨단다. 지청이 홍반성 낭창이라는 큰 병에 걸렸다고 해. 아무래도 너희들과 6학년을 함께 다니기는 어려울 것 같구나. 이번 주말에 몇몇 친구들과 함께 병문안을 가려고 해. 아무쪼록 지청이 얼른 회복하기를 바랄 뿐이란다. 좋아,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나는 가방을 메고 서둘러 교실을 뛰쳐나와 집으로 달려갔다. 아빠는 의사니까 분명 홍반성 낭창이 어떤 병인지 알고 계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아빠를 만나자마자 갑자기 물어보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 나는 도대체 어떤 병인지 알기 전까지 아빠에게 지청이 그런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의학 서적이 가득 있는 아빠의 서재에 들어가 홍반성 낭창에 관한 내용을 찾아봤다.

홍반성 낭창(루프스)은 전신에 나타나는 만성 질병으로, 발생하고 호전되는 과정이 반복되는 자가 면역 질환이다. 각종 장기의 면역력을 떨어뜨려 생존율이 30%에 불과하다.

자세한 내용은 읽어도 잘 모르겠고 어쨌든 지청이 불치병에 걸렸다는 사실 하나는 확실했다.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졌다. 지청은 자신이 불치병에 걸린 걸 알고 있을까? 이런 병은 치료하려면 돈이 얼마나 들까? 지청이 없으면 할아버지는 어떻게 살까?

책을 덮자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지청이라면 분명 이 질문들에 답을 해줬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지금 누워 있다. 아니, 어쩌면 병원에 입원해 있는지도 모른다. 의식은 있는지, 많이 아픈지, 팔에 주사바늘을 꽂고 있는지…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다음날 선생님은 지청을 함께 만나러 가고 싶은 사람은 손을 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머뭇거렸다. 지청을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친구들이 다 보는 앞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울음을 터뜨리면 어떡하지? 만약 지청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지청의 손을 잡고 위로해줄 수 있을까? 아니면 이번에 친구들과 가지 말고 샤오투, 샤오황에게 따로 가자고 말할까? 하지만 이번에 우리가 보이지 않으면 지청이 크게 실망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자 더 이상 머뭇거릴 수가 없었다. 나는 손을 들어 친구들과 함께 가는 병문안을 신청했다.

병문안을 가던 날, 나는 겉으로는 침착해보였지만 머릿속으로는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까 고민하느라 바빴다.

우리는 경비실에서 방명록을 작성하고 철문을 지나 주택가로 들어섰다. 선생님은 단지를 몇 바퀴나 돌았지만 지청의 집을 찾지 못했다. 결국 내가 친구들을 주택가 입구로 다시 데려와 지청이 가르쳐준 시를 외우며 왼쪽으로 한 번, 오른쪽으로 한 번 돌아 그의 집을 찾았다.

초인종을 누르자 할아버지가 문을 열고 나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할아버지의 표정은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밝고 온화했다. 할아버지가 고개를 돌려 소리치셨다.

“지청, 선생님과 친구들이 왔어!”

쿵쿵쿵. 뛰어오는 소리가 들리고 잠시 후 누군가 우리 앞에 나타났다. 나는 처음에 그가 누군지 몰라봤다. 내 앞에 서 있는 지청은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몸무게가 두 배는 불어나 있었다. 얼굴에도 살이 쪄서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그런데 눈빛과 표정을 자세히 살펴보니 바로 지청이었다. 나는 오는 동안 수없이 연습한 인사말을 한 마디도 꺼내지 못한 채 멍하니 그를 바라봤다.

지청이 먼저 말을 꺼냈다.

“나 살이 많이 쪘지? 네가 준 달걀은 아무리 많이 먹어도 살이 안쪘는데, 두 달 동안 약을 먹었더니 이렇게 살이 쪘지 뭐야. 나도 이렇게 될 줄 몰랐어.”

나는 지청을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어 고개를 숙였다. 그는 처음 보는 이상한 헝겊 신발을 신고 있었다. 아마 발에도 살이 많이 쪄서 그동안 신던 신발이 맞지 않은 모양이었다.

지청이 말했다.

“이 신발이 보기보다 정말 편해.”

지청이 아무렇지도 않은 척할수록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더 이상 그 모습을 보고 있을 수가 없어 초롱꽃을 보러 간다고 말을 하고는 뛰쳐나가 초롱꽃 나무 한 귀퉁이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왜 갑자기 울음이 터져 나왔는지는 모르지만 울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안으로 들어가 선생님과 친구들 옆에 조용히 앉았다. 뚱뚱해진 지청은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며 대화를 나눴다. 지청은 어색하게 앉아 있는 나를 일부러 모른척해 줬다.

작별 인사를 할 때 나는 미소를 지으려고 노력했다.

지청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자주 놀러와. 잘 안풀리는 문제가 있으면 나한테 물어봐도 돼. 집에서도 공부는 계속 하고 있거든.”

할아버지도 말씀하셨다.

“자주 놀러오렴. 지청이 너희들을 많이 보고 싶어 한단다.”

집에 돌아와서 아빠에게 여쭤봤다.

“아빠, 홍반성 낭창은 치료할 수 있는 병인가요?”

“완전히 치료하려면 조금 어렵지. 그 병이 다른 병을 일으키기도 하거든. 치료 효과에 따라서 다르단다. 그런데 왜 그런 걸 묻는 거니?”

“제 친구가 그 병에 걸렸대요. 혹시 죽을 수도 있나요?”

아빠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대답하셨다.

“꼭 그렇지는 않단다.”

꼭 그렇지는 않다는 말은 그럴 수도 있다는 말이다. 우리의 만남이 언제든 마지막 만남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샤오투와 샤오황이 부모님의 사업 문제로 6학년 때 전학을 가게 되었다. 떠나던 날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눈물만 흘렸다.

그 이후 지청을 만나러 갈 때마다 나는 먼저 학교에서 일어난 일들을 머릿속에 꼼꼼히 정리했다. 학교 식당에 사는 고양이가 드디어 새끼를 낳았다거나 어떤 남자애가 어떤 여자애에게 말을 걸었다거나…나는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지청에게 모두 전해줬다. 목적은 단 하나였다. 만약 지청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 그가 모르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너무 단순한 이유에서였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런 것 밖에 없었다.

내가 가장 힘들었던 건 갈 때마다 변해 있는 지청의 모습을 보는 것이었다. 어느 날 지청이 약을 한 움큼 입에 털어 넣으며 ‘붓기’라는 표현을 썼다. 나는 그제야 지청이 살이 찐 것이 아니라 온몸이 부어 있는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루는 할아버지가 병원에 약을 받으러 가신 사이 지청이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해 우리 둘은 창문 사이로 이야기를 나눴다.

어떤 날은 할아버지가 집 안에 있는 모든 신발을 슬리퍼로 고치고 계셨는데 지청이 더 이상 헝겊 신발도 신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또 어떤 날은 의사가 지청에게 링거를 꽂는데 온몸이 퉁퉁 부어 혈관을 제대로 찾지 못했다. 의사가 주사바늘을 꽂는 동안 지청은 입술을 꽉 깨물고 고통을 참았다.

나는 지청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러나 갈 때마다 그의 상태는 계속 나빠지기만 했다. 지청의 침대 머리맡에 아프기 전 그의 사진이 담긴 액자가 하나 놓여 있었는데 누가 봐도 지금 침대에 누워있는 사람과 동일 인물이라고 믿기 어려웠다. 어느 날 할아버지는 그 사진을 치웠다. 한때 포병으로 활약하고 손가락으로 적군과의 거리를 잴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할아버지는 손자의 사진이 담긴 액자를 품에 안고 방으로 들어가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어떤 노래에 이런 가사가 있다.

‘총명한 아이가 깨지기 쉬운 초롱을 들고 있네. 대범한 그대는 마음의 근심을 속세의 인연으로 승화시켰네.’

몇 년 뒤 이 노래를 들었을 때 마치 나와 지청의 이야기 같았다.

매번 작별 인사를 할 때마다 그는 창문에 기대어 내가 모퉁이를 돌아사라질 때까지 지켜봤다. 나는 모퉁이를 돌고 나서 몇 초 동안 기다렸다가 고개를 내밀어 지청을 바라봤다. 그는 창문에 몸을 기댄 채 슬픈표정을 짓고 있었다. 내가 키 높이의 초롱꽃을 손으로 흔들면 지청은 나를 발견하고 다시 밝은 표정을 지었다.

안녕.

안녕.

우리는 서로 손을 흔들었다. 이번이 영원한 이별일지도 몰랐다.

6학년 2학기 중간고사가 끝나자 친구들은 졸업 기념 수첩을 적기 시작했다. 나는 내 수첩과 스무 명 가까이 되는 친구들의 수첩을 들고 지청을 만나러 갔다. 만약 지청의 상태가 괜찮으면 수첩을 적을 수 있도록 도와줄 생각이었다.

문을 두드리자 할아버지가 아닌 3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나왔다.

내가 말했다.

“지청을 만나러 왔는데요.”

아주머니가 말했다.

“지청의 학교 친구니? 난 지청의 엄마란다. 잠깐 기다려 보렴.”

문틈 사이로 중년의 아저씨가 거실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저씨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가 소리가 나자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며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그날 따라 집안 분위기가 굉장히 무거웠다.

지청의 어머니가 졸업 기념 수첩을 가져오셨다.

“지청은 지금 자고 있단다. 이 수첩을 네게 전해주라고 하더구나. 샤오투, 샤오황에게도 전해줄 수 있겠니?”

지청도 졸업을 염두에 두고 수첩을 한 권 준비해놓았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써달라고 부탁하지 않고 스스로 써서 우리에게 줬다.

졸업 기념 수첩은 자신이 간직하는 것 아니었나? 왜 우리에게 수첩을 준 것일까?

나는 순간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지청의 어머니는 한동안 말이 없으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어린아이에게 아들의 병세에 대해 사실대로 이야기해도 좋을지 고민하셨던 것 같다.

“지청의 상태가 많이 안좋단다. 방금 의사 선생님이 다녀갔는데 약을 먹고도 의식이 없어. 곧 구급차가 올 거야. 그러니까….”

지청의 어머니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나는 지청의 어머니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너무나 잘 알았다.

“네. 제가 친구들에게 수첩에 글을 남겨 달라고 부탁할게요.”

나는 이미 친구들의 수첩들로 가득 찬 가방에 지청의 수첩을 집어넣고는 지청의 어머니에게 미소를 보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지청이 어서 괜찮아졌으면 좋겠네요.”

나는 인사를 하고 뒤돌아 애써 힘차게 걸어갔다. 모퉁이를 돌고 나서야 벽에 기대어 지청의 수첩을 꺼내 보았다. 지청은 친구들에게 짧은 글들을 남겼다.

나에게는 이렇게 썼다.

‘세상에 대한 모든 궁금증이 풀리길 바래. 모두 잘 될 거야!’

샤오투에게는 이렇게 썼다.

‘꼭 원하는 중학교에 합격하기를 바래. 모두 잘 될 거야!’

샤오황에게는 이렇게 썼다.

‘언젠가 마돈나 같은 여자를 만나기를 바래. 모두 잘 될 거야!’

지청은 우리가 했던 바보 같은 이야기를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수첩 위의 글씨는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쓰여 있었다. 퉁퉁 부은 손으로 잘 잡히지도 않는 펜을 들고 얼마나 열심히 써내려갔는지 상상이 되었다.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울지 말자. 울지 말자. 아주 잠깐 의식이 없는 것뿐이다. 곧 괜찮아질 것이다. 지청의 부모님도 모두 돌아오셨으니까.

나는 속으로 다섯까지 셌다.

그리고 숨을 한 번 크게 들이마신 다음 초롱꽃 가지를 힘차게 흔들었다. 고개를 내밀어 지청의 집 창문을 바라봤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꿈이 아니었다. 소년의 꿈은 산산이 부서지고 그 자리에 고요한 침묵과 빈 창문만이 남아 있었다.

다음날 학교에 가서 친구들에게 수첩을 돌려주며 지청이 집에 없었다고 둘러댔다. 그리고 집에 와서 지청이 준 수첩을 책장 가장 안쪽에 꽂아두었다.

열두 살의 나는 이별이 두려웠고, 친구를 잃는다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졸업 수첩을 책꽂이에 꽂으며 다시는 그를 보러 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소식을 모르는 한 지청은 영원히 내 마음속에 살아 있는 거야.’

그렇게 나는 마음속에서 지청이라는 문을 완전히 닫아버렸다.

그 이후 나는 곧바로 중학교에 진학했고 방학이 되어도 초등학교 동창들과는 거의 만나지 않았다. 이십 여 년 동안 학교에 찾아간 적도 없고 지청의 소식을 물어보는 일도 없었다. 지금까지 딱 한 번 누군가 ‘지청’이라는 이름을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 순간 나는 벌떡 일어나 도망치듯 그 자리를 떠났다. 나는 지청이 무슨 일이 있어도 견뎌낼 거라고 믿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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