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당신이 거기에 있었다>
누구나 강해질 필요는 없다.
아무리 불공평한 대우를 받아도,
아무리 많은 좌절을 경험해도
미간을 찌푸리지 않을 수 있다면 마음이 편안할 것이고
남을 탓하느라 괴로워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푸톈(福田)은 나보다 두 살이 어리지만 삼촌뻘이다. 나는 왜 두 살이나 어린 애를 삼촌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또 항렬이라는 게 대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어쨌든 푸톈의 아버지가 우리 할아버지와 항렬이 같기 때문에 내가 그를 삼촌이라고 불러야 하는 것이라고 했다.
푸톈 삼촌은 늘 싱글벙글 웃는 표정이었다. 푸톈 삼촌과 나는 일년에 한 번 설 때만 만날 수 있었는데 삼촌은 아침 일찍부터 마을 입구 언덕에 앉아 우리를 기다렸다.
친하지 않은 사람을 오랜만에 보면 어색하기 마련이다. 일년에 한 번 보더라도 중간에 자주 연락을 해야 그런 어색함이 없다. 하지만 푸톈 삼촌과는 그런 것이 전혀 없었다. 삼촌은 늘 내 책가방을 대신 메고 마을 여기저기를 구경시켜 줬다.
중학생이 되기 전까지 나는 어린 삼촌과 꽤 잘 어울려 다녔다. 그런데 중학생이 되고 나서 고향에 내려갔을 때 삼촌에게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걸을 때마다 다리를 절뚝거리고 균형을 잃고 쓰러지기 직전에 힘겹게 다음 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아빠, 푸톈 삼촌 걸음걸이가 좀 이상하지 않아요?”
“늘 저렇게 걸었잖니.”
아빠가 내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아 다시 여쭤봤다.
“삼촌은 왜 저렇게 걸어요?”
아빠가 난처한 표정을 지으셨다. 내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하시는 것 같았다.
“그건 작은할아버지와 작은할머니가 사촌 사이기 때문이야. 그래서 푸톈 삼촌은 태어날 때부터 남들과 조금 달랐어.”
근친결혼의 영향으로 삼촌의 뇌는 다른 아이들보다 느렸고 걸음걸이도 온전하지 못했다.
나는 왜 작은할아버지가 사촌인 작은할머니와 결혼했는지, 푸톈 삼촌이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게 될지 생각해보기도 전에 갑자기 무섭고 부끄러워졌다. 내 친척 중에 근친결혼으로 태어난 바보가 있다니!
그해 설에는 푸톈 삼촌이 아무리 말을 걸어도 모른 척했다. 삼촌이 새로 태어난 강아지를 보여준다고 했을 때도, 함께 산으로 나물을 캐러 가자고 했을 때도 쌀쌀맞게 거절했다. 나는 삼촌이 곤충 표본을 들고 와 보여줬을 때도 시큰둥했다. 삼촌은 속상했던지 밥을 먹다가 가족들이 다 있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왜 통통이 나를 무시하는 거예요?”
삼촌의 말에 가족들은 모두 놀라 쳐다봤다.
작은할아버지가 이내 웃으며 말씀하셨다.
“누가 너를 무시했다고 그러니? 그런 것 아니지?”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있었다.
삼촌이 모든 사람들 앞에서 내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말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만약 나였다면 무시당하는 것이 창피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 순간 속으로 맹세했다.
‘앞으로 절대! 삼촌이라고 부르지 않겠어! 정말 짜증 나는 자식이야.’
아빠가 상황을 수습하며 내게 말하셨다.
“푸톈이 기분이 안 좋은 것 같구나. 밥 먹고 둘이 같이 폭죽을 사와서 놀아라.”
아빠가 10위안짜리 지폐를 하나 꺼내 푸톈 삼촌에게 건네자 삼촌은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푸톈 삼촌은 어서 폭죽을 사러 가자며 나를 재촉했다. 나는 정말 같이 가고 싶지 않았다. 함께 있으면 왠지 나도 바보가 될 것 같았다. 그러다 문득 푸톈 삼촌이 얼마나 바보인지 시험해보고 싶었다. 나는 주머니에서 1위안짜리 지폐 다섯 장을 꺼내며 말했다.
“삼촌, 지금 갖고 있는 그 지폐 한 장이랑 내꺼 다섯 장이랑 바꿀래? 그럼 삼촌이 넉 장 더 갖게 되는 거잖아.”
푸톈 삼촌은 내 손에 들린 1위안 지폐 다섯 장과 자신의 손에 들린 10위안 지폐 한 장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럼 네 것이 적어지잖아.”
“괜찮아. 폭죽 사러 간다고 했잖아. 돈이 많아야 폭죽을 더 많이 사오지.”
삼촌은 고개를 끄덕이며 흔쾌히 10위안 지폐를 내게 건네고 1위안 지폐 다섯 장을 받아들었다.
푸톈 삼촌에게는 여동생이 하나 있었는데 삼촌보다 훨씬 영리했다. 나는 아빠에게 나보다 훨씬 어린 고모도 근친결혼으로 태어났느냐고 조심스럽게 여쭤봤다. 아빠는 작은할아버지가 고모를 입양했다고 하셨다.
푸톈 삼촌의 비밀을 알게 된 이후 나는 자연히 어린 고모와 더 가까워졌다. 나는 고모에게 10위안 지폐를 보여주며 말했다.
“이것 봐, 5위안이랑 바꾼 거야.”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던 고모는 내가 그렇게 쉽게 돈을 번 것을 마냥 부러워했다.
“푸톈 삼촌한테 1위안 지폐 다섯 장을 가져가서 바꿨어. 삼촌한테 아직 5위안이 있을 거야.”
나는 순간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혹시 5마오(10마오는 1위안이다-역주)짜리 지폐 있어? 5마오짜리 여섯 장을 가져가서 5위안이랑 바꾸자고 해봐. 분명 그렇게 한다고 할걸?”
어린 고모는 2위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뛸 듯이 기뻐하며 서랍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무리 뒤져도 5마오 지폐는 넉 장밖에 찾을 수 없었다.
내가 말했다.
“일단 넉 장을 가져가서 물어보기나 해봐. 바꿔줄지 어떻게 알아?”
내 말에 고모는 얼른 푸톈 삼촌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잠시 후 5마오 지폐 넉 장을 1위안 지폐 다섯 장으로 바꿔왔다. 푸톈 삼촌도 지폐 한 장을 여러 장으로 만들어 신이 났기 때문에 나와 고모는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않았다.
다음 날은 설날이었다. 아이들은 모두 아침 일찍 어른들에게 세배를 드리고 세뱃돈을 받았다. 푸톈 삼촌도 세뱃돈을 두둑이 받았다. 어른들마다 봉투에 50위안씩 넣었으니 족히 수백 위안은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삼촌은 세뱃돈을 받자마자 어디론가 소리 없이 사라졌다.
삼촌은 오후가 되어서야 집에 돌아와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돈을 아주 많이 벌어왔어요!”
그리고 주머니에서 1위안 지폐와 동전들을 잔뜩 꺼냈다. 그중에 5위안, 10위안 지폐는 한두 장밖에 보이지 않았다.
작은할아버지의 표정이 굳어졌다. 나는 푸톈 삼촌이 엄청난 일을 저질렀다는 것을 직감했다.
작은할아버지가 삼촌에게 물었다.
“이 돈이 어디에서 난거니?”
푸톈 삼촌은 신이 나서 다른 마을 어린이들과 바꾼 것이라고 말했다.
“이 돈을 무엇과 바꿨다는 말이니?”
“그야 세뱃돈이죠!”
작은할아버지가 삼촌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을 세어보았다. 푸톈 삼촌이 아침에 들고 나간 세뱃돈 봉투에는 500위안도 넘게 들어 있었는 데 남은 돈은 60위안 남짓밖에 되지 않았다. 당시 100위안만 해도 푸톈 삼촌의 일년 학비와 맞먹는 굉장히 큰돈이었다.
작은할아버지는 정확히 누구누구와 돈을 바꾸었느냐고 물었지만 푸톈 삼촌은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화가 난 작은할아버지가 삼촌의 뺨을 세게 후려쳤다. 나는 마치 내 뺨을 맞는 것 같았다. 푸톈 삼촌의 코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삼촌은 너무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뺨을 부여잡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작은할아버지가 물었다.
“누가 너한테 이런 일을 시켰니?”
푸톈 삼촌이 울면서 말했다.
“돈을 더 많이 가져왔는데 대체 저한테 왜 그러세요!”
나와 고모는 차마 우리가 한 짓이라고는 말을 못하고 숨을 죽이고 있었다.
아빠가 나서서 말리자 작은할아버지도 이내 체념하신 듯 보였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한참이 지나도 삼촌의 코피가 그치지 않았다. 어른들은 모두 놀라 서둘러 삼촌을 읍내에 있는 큰 병원으로 옮겼다. 나는 줄곧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아빠 뒤에만 숨어 있었다.
그날 나는 작은할아버지에게 아들이 하나 더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아이 역시 푸톈 삼촌처럼 근친결혼에서 생긴 자식이었는데 혈우병을 앓아 한 번 피가 나면 잘 멈추지를 않았다. 여섯 살 무렵에 길을 가다가 넘어졌는데 출혈이 너무 심해 그대로 죽고 말았다. 그리고 몇 년 뒤 푸톈 삼촌이 태어난 것이다.
혈우병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 가장 위험한 건 피가 나는 것이었다. 푸톈 삼촌은 코피 한 번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이틀 만에 겨우 살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