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당신이 거기에 있었다>
혈우병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 가장 위험한 건 피가 나는 것이었다. 푸톈 삼촌은 코피 한 번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이틀 만에 겨우 살아났다.
나는 푸톈 삼촌이 병원에서 돌아왔을 때 먼저 가서 사과하고 싶었지만 어른들이 볼까 봐 선뜻 다가가지 못했다. 그러다가 삼촌이 혼자 놀러 나가려고 할 때 재빨리 따라나섰다.
“푸톈 삼촌… 저기… 이거 가져.”
나는 세뱃돈 봉투에서 200위안을 꺼내 건넸다.
삼촌은 갑자기 왜 돈을 주는 거냐고 물었다. 나는 내가 한 장난 때문에 삼촌이 수백 위안을 손해 봤고 그것 때문에 할아버지께 맞아서 죽다가 살아나지 않았냐며 열심히 설명했다. 하지만 말을 하면 할수록 푸톈 삼촌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결국 나는 고모에게 도움을 청했다.
고모는 역시 나보다 삼촌을 더 잘 이해하고 있었다. 고모는 삼촌의 저금통을 꺼내며 내가 돈 모으는 것을 도와주고 싶어서 그런다고 설명했다. 삼촌은 그제야 이해를 한 듯 저금통을 내밀었다.
삼촌의 저금통 안에는 동전이 가득 들어 있었다. 나는 그 돈을 모아서 무엇에 쓸 거냐고 물었다. 그러자 삼촌이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나중에 결혼할 때 쓰려고.”
“결혼할 때 쓸 돈을 벌써 모으기 시작했어?”
“돈이 많아야 좋은 짝을 만날 수 있어.”
당시에는 누가 삼촌에게 그런 황당한 생각을 심어줬는지 의아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어쩌면 삼촌의 상황에서는 그리 이상한 말이 아니었던 것 같다.
어쨌든 그 사건을 계기로 나는 내 행동을 뼈저리게 반성하고 다시 한 번 맹세했다. 앞으로 다시는 삼촌을 무시하거나 모른 척하지 않겠다고 말이다.
설 명절이 지난 어느 날 푸톈 삼촌이 동네 애들한테 둘러싸여 맞을 뻔한 걸 지나가던 친척이 발견해 겨우 구해냈다는 소식을 들었다. 맞아서 피가 나기라도 했다면 정말 큰일 날뻔했다. 아빠에게 왜 삼촌이 동네 애들에게 맞을 뻔했냐고 물었더니 그 애들이 이번에도 잔돈을 가져와 지폐로 바꿔 달라고 하자 삼촌이 먼저 때렸다고 했다.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준비하느라 몇 년 동안은 명절에도 고향에 내려가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늘 푸톈 삼촌을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했던 바보 같은 일을 반성했다. 만약 그때 삼촌이 나 때문에 세상을 떠났다면 평생 죄책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나는 그때 이후 재밌는 만화영화가 있으면 비디오테이프를 내 것과 삼촌 것 두 개를 샀고, 재밌는 만화책이 있으면 다 본 이후에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지 않고 명절 때 가져가려고 챙겨 두었다.
아빠가 카메라를 사주시면서 필름 두 통을 주셨을 때도 한 통만 찍고 한 통은 삼촌을 위해 남겨놓았다. 삼촌은 사진 찍는 것을 좋아했는데 읍내에 있는 사진관에서밖에 카메라를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언젠가 삼촌이 텔레비전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중에 멋진 사진을 찍어서 지갑 속에 넣고 다닐 거야.”
필름 한 통을 남겨놓은 것을 보고 아빠가 물었다.
“왜 갑자기 푸톈에게 이렇게 잘해주는 거니?”
나는 대답을 얼버무렸다.
“그냥요, 어차피 남은 거 그냥 두면 아깝잖아요.”
그해 명절에 나는 푸톈 삼촌을 만나자마자 신이 나서 말했다.
“이거 하나 남은 건데 버리기 아까워서 가져왔어.”
삼촌에게 주고 싶어서 아껴 놓은 거라고 왜 솔직히 말하지 못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어른들이 들을까 부끄러워서 그랬던 것 같다.
“우리 사진 찍으러 가자.”
나는 카메라를 푸톈 삼촌 앞에 흔들었다.
푸톈 삼촌은 어린 아이마냥 신이 나서 폴짝폴짝 뛰며 말했다.
“사진 찍으러 간다고? 정말? 잠깐 기다려 봐. 올라가서 옷 좀 갈아입고 올게.”
나는 무슨 일에든 쉽게 기뻐하는 삼촌을 보면서 처음으로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촌은 친구들과의 관계나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관해 전혀 고민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저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고 있을 뿐이었다. 삼촌은 성적이 나빠도 모두들 그러려니 했고, 잘못을 저질러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나는 그런 삼촌이 그저 부러웠다.
“우리 연못가에 가서 사진 찍는 게 어때? 거기 물이 있잖아.”
푸톈 삼촌이 앞장서고 나와 고모가 뒤따라갔다. 필름 한 통으로 사진을 30장 찍을 수 있었는데 삼촌은 찍고 싶은 것이 정말 많은 모양이었다. 논두렁도 찍고, 길가에 누워 있는 개도 찍고, 길을 걷다가 뒤돌아 손짓하는 모습을 찍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어린 고모는 길을 가다가 커다란 나무를 발견했는데 나무 위쪽의 모습이 나오도록 사진을 찍고 싶어 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높은 언덕이 있어 나는 그곳에 올라가 사진을 찍어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언덕은 온통 진흙탕이어서 굉장히 미끄러웠다. 나는 결국 발을 헛디뎌 미끄러졌고 언덕에서 데굴데굴 굴러떨어졌다. 손에 들고 있던 카메라는 넘어지면서 멀리 날아가 진흙탕 속에 빠져버렸다.
푸톈 삼촌이 얼른 달려와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는 저 멀리 진흙탕 속에 빠진 카메라를 바라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보아하니 카메라는 진흙에 빠져 완전히 망가진 것 같았다.
내가 푸톈 삼촌과 고모에게 말했다.
“됐어. 어차피 망가진 것 같으니까 주워도 소용없을 거야.”
고모는 자기 때문에 카메라가 망가졌다고 생각했는지 조용히 눈물을 흘렸고 푸톈 삼촌은 계속 어쩔 줄 몰라 하며 왔다 갔다 했다.
집에 돌아와 아빠가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을 때 나는 내 잘못으로 카메라가 진흙탕 속에 빠졌다고 말했다. 아빠와 이야기하는 동안 푸톈 삼촌은 아무도 모르게 방으로 가서 논에서 일할 때 입는 방수 작업복을 입었다. 겨울이라 옷을 많이 껴입은 탓에 방수복이 잘 들어가지 않자 삼촌은 입고 있던 외투와 스웨터를 벗고 얇은 옷 위에 방수복을 걸치고 집을 나섰다.
집에 돌아왔을 때 삼촌은 추위에 온몸을 덜덜 떨며 한 손에는 진흙으로 뒤범벅되고 물이 뚝뚝 떨어지는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가족들은 모두 이 추위에 정신이 나갔냐며 나무랐고 작은할머니는 서둘러 물을 끓여 목욕물을 준비하셨다.
나는 삼촌에게 화가 나면서도 마음이 아팠다. 왜 저렇게 바보 같은 짓을 한 걸까.
푸톈 삼촌이 목욕을 마치고 나와 주방 입구에서 나를 몰래 불렀다. 삼촌은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여기서 뭐해?”
내가 다가가자 삼촌은 갑자기 등 뒤에 숨겼던 손을 불쑥 내밀었다. 그의 손에는 깨끗하게 씻은 카메라가 들려 있었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것이 진흙탕에 빠졌던 카메라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카메라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는 것만 빼면 말이다.
“헤헤, 이것 봐. 내가 깨끗하게 씻었더니 새것 같지?”
푸톈 삼촌이 어깨를 으쓱하며 나를 바라봤다.
물에 젖은 카메라를 들고 기뻐하는 삼촌을 보고 있으니 갑자기 코끝이 찡해지면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눈물을 닦으며 내가 물었다.
“사진 찍으러 갈래?”
삼촌이 대답했다.
“좋아!”
나는 망가진 카메라를 들고 삼촌과 나갔다.
사람들은 그가 지능이 낮고 다른 사람을 생각할 줄 모르는 바보라고 여겼다. 하지만 내가 아는 삼촌은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시간이 흘러나와 푸톈 삼촌, 어린 고모 모두 성인이 되었고 집안에서는 슬슬 삼촌의 결혼 문제가 거론되기 시작했다.
내가 푸톈 삼촌에게 장난을 치며 말했다.
“지금까지 모아 놓은 돈 나 좀 빌려줘. 내가 나중에 돈 많이 벌면 더 큰 돈으로 돌려줄게.”
푸톈 삼촌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 돈은 장가갈 때 쓰려고 모은 돈이야. 아무에게도 빌려줄 수 없어.”
내가 웃으며 말했다.
“알겠어. 어서 좋은 신붓감을 찾길 바래.”
하지만 푸톈 삼촌의 결혼 상대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정상적인 아가씨들 중에 삼촌에게 시집오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었다. 삼촌을 만나고 싶어 하는 아가씨들은 모두 삼촌처럼 어딘가 불편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다 보니 결혼은 계속 미뤄졌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 어른 한 분이 건넛마을의 한 아가씨를 소개해주겠다고 나섰다. 중매인 말로는 조금 모자란 구석이 있지만 일은 정상인들처럼 잘한다고 했다.
설 다음 날 푸톈 삼촌은 아침 일찍 일어나 멋지게 차려입고 작은할아버지를 따라 집을 나섰다. 그런데 정오가 되기도 전에 삼촌이 화가 잔뜩 나서 집에 돌아왔다.
“왜 나한테 바보를 소개해주는 거예요? 나는 그런 바보천치와 결혼하고 싶지 않단 말이에요!”
삼촌은 마당에 있는 물건들을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 던졌다.
그날 나는 멀찌감치 떨어져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물건을 집어 던지다가 마당 한가운데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내가 다가가자 삼촌이 울면서 말했다.
“지금까지 바보라고 놀림 받으면서 살았는데 마누라까지 바보를 얻으라는 말이야? 내 아이만큼은 절대 바보로 만들고 싶지 않단 말이야!” 푸톈 삼촌은 바보가 아니었다. 다만 어떤 일들은 그의 머리로 이해하지 못할 뿐이었다.
그때가 삼촌과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대학교에 다니면서는 명절에 고향에 자주 내려가지 못했다. 어느 날 고향 친구를 만나 얘기를 나누다가 푸톈 삼촌이 생각나 그가 결혼을 했는지 물었다.
그러자 친구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푸톈은 2년 전에 저 세상으로 갔어.”
저 세상으로 갔다고? 이게 갑자기 무슨 소리인가? 나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삼촌이 지붕에 콩 말리는 것을 도우러 올라갔다가 발을 헛디뎌 3층 높이에서 떨어졌는데 지혈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병원에 옮겨져 응급처치를 받았지만 상처가 워낙 깊어서 피가 멈추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아빠에게 이 사실을 알고 있었냐고 여쭈어보았다.
“알고 있었단다. 그때 네가 멀리서 공부하고 있었기 때문에 얘기를 미처 못했구나.”
푸톈 삼촌은 세상을 떠나던 날 병원으로 온 고모를 붙잡고 계속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저금통…저금통…!”
병원에서 집까지 너무 멀어서 가져올 수 없다고 하는데도 삼촌은 계속 저금통을 찾았다. 푸톈 삼촌이 세상을 떠나고 가족들이 물건을 정리하다가 저금통 두 개를 발견했다. 저금통 하나에는 삼촌의 이름이, 다른 하나에는 고모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고모의 저금통 안에는 삼촌이 27년 동안 모은 돈의 절반이 들어 있었다. 그가 고모의 결혼자금으로 쓰라고 나누어놓은 것이었다. 그날 집안은 눈물바다가 되었다고 한다.
아빠가 덧붙이셨다.
“어느 해인가 고향집에 내려가는데 산길이 너무 질퍽거려 산 입구에 차를 세워두고 걸어가야 했어. 저녁에 카드놀이를 할 때 지나가는 말로 ‘차를 멀리 세워두고 와서 불안하네’라고 말했거든. 그때 아무도 그 말을 진지하게 듣지 않았어. 그런데 다음날 아침 일찍 푸톈이 밖에서 이불 꾸러미를 들고 들어오는 거야. 어디에 갔다 오는 길이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말하더라고. ‘형이 어제 차를 멀리 세워두고 와서 불안하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제가 지난밤에 차 옆에서 잤어요. 밖은 정말 춥네요.”
지금 생각해보면 푸톈 삼촌은 바보가 아니었다. 그는 그저 바보같이 착한 사람일 뿐이었다.
푸톈 삼촌이 세상을 떠난 지도 벌써 몇 년이 흘렀다. 고향집에 내려가 푸톈 삼촌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아빠는 내가 몰랐던 그에 관한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시곤 했다. 나는 그때마다 눈물이 나오는 걸 겨우 참았다. 아빠는 푸톈 삼촌이 세상을 떠나기 전 몇 년 동안 늘 공책을 한 권 들고 다녔다고 했다. 삼촌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속담이나 사자성어 같은 것들을 공책에 적어놨다가 모르는 것은 사전을 찾아보고 이야기할 때 사자성어를 쓰기도 했다. 사자성어를 구사하는 삼촌의 모습이 진짜 어른 같았다고 했다.
삼촌의 말과 행동에는 언제나 꾸밈이 없었다. 그래서 그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삼촌은 누구보다 맑고 투명한 사람이었고 그와 함께 있으면 나 역시 마음이 편안해졌다. 때로는 바보로 사는 것이 얼마나 편한 일인가 생각한 적도 있다. 이것저것 신경 쓰지 않고 내키는 대로 즐겁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말이다. 그런데 푸톈 삼촌은 스스로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고 자신보다 남을 위해 더 많이 희생했다. 삼촌을 떠올릴 때면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