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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쏟아지는 비에 옷이 흠뻑 젖었을 때

<그때 당신이 거기에 있었다>

by 더굿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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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비에 옷이 흠뻑 젖었을 때
누군가 다가와 우산을 씌워주었다.
너와 나 사이의 소중한 인연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막 일을 시작했을 때 학교 근처에 방을 얻어 살았다. 학교 주변이라 방값도 싸고 밥값도 비싸지 않아서 좋았다.

내가 살던 동네에는 밥집이 여러 개 있었는데 어디에나 늘 손님이 많았다. 처음 이사를 왔을 때 나는 이곳저곳을 기웃거릴 뿐 몇 바퀴를 돌도록 어떤 집에서 밥을 먹을지 결정하지 못하곤 했다.

아마 우리 엄마가 이 모습을 봤다면 분명 이런 잔소리를 하셨을 것이다.

“아이고, 답답해라. 그럼 그냥 들어가서 한 번씩 먹어보고 가장 맛있는 집을 고르면 될 것 아니야?”

나는 어스름할 무렵에 나와 깜깜해지도록 계속 밥집 주변을 맴돌았다. 겉에서 봤을 때 내부는 모두 비슷해 보였다. 가게마다 텔레비전이 하나씩 놓여 있었고 보고 싶은 사람이 자유롭게 보도록 리모컨이 놓여 있었다. 등은 대부분 백색이었는데 한 집만 유일하게 노란 등을 켜고 있었다. 그래서 그 집은 다른 곳들에 비해 어두워 보였다. 나중에 그 밥집 주인인 차이 아저씨에게 여쭤보니 이유를 말씀해주셨다.

“어느 날 어떤 학생이 그러더라고, 노란 등 밑에서 밥을 먹으면 집에서 밥을 먹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말이야. 그래서 바꾸게 된 거야.”

사실 내가 차이 아저씨네 밥집을 단골 식당으로 정하게 된 계기는 그 집 딸아이 때문이었다.

차이 아저씨의 딸은 다섯 살 정도 되어 보였는데 내가 식당 앞을 지나갈 때 마당에 나와서 그릇을 닦고 있었다. 그릇은 모두 같은 모양이었는데 아이는 손에 든 그릇들과 설거지통 안에 놓여 있는 그릇들을 번갈아 바라보면서 무언가 고민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안으로 들어가 새로운 통을 하나 가져와 손에 들고 있던 그릇 네 개를 넣고 깨끗하게 씻었다. 그러고는 계산대로 달려가 작은 붓을 꺼내와 그릇 아래에 뭔가를 적기 시작했다.

아이는 아마도 그릇에 어떤 표시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멀리서 지켜보다가 아이의 진지한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 물었다.

“얘, 그릇에다가 무슨 표시를 하고 있는 거니?”

아이는 고개를 들지도 않고 열심히 글씨를 쓰면서 말했다.

“이렇게 하면 누구의 그릇인지 알 수 있잖아요.”

“저기 그릇들이 많이 있는데 왜 여기 있는 것들에만 이름을 적는 거니?”

“이건 오늘 새로 온 언니들 거라서 그래요.”

아이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내가 물었다.

“만약 오빠가 너희 집에서 한 달 치 식권을 끊으면 내 그릇에도 이름을 적어주겠니?”

“좋아요. 그럼 지금 적어줄게요.”

아이는 바람같이 안으로 달려가서 깨끗한 그릇을 하나 가지고 나왔다. 나는 그렇게 해서 차이 아저씨네 단골손님이 되었다.

한 달치 식권을 사면 볶음고기요리 한 가지에 3위안이었고 고기요리에 채소요리 하나를 더 하면 5위안이었다. 만약 한 달 치 식권을 끊지 않고 사 먹으면 요리 두 가지에 7위안이었다. 한 끼에 2위안씩 절약할 수 있는 까닭에 차이 아저씨의 가게는 늘 학생들로 붐볐다.

차이 아저씨는 언제나 친절했고 꼬마 차이는 귀엽고 영리했다. 다만 차이 아주머니는 조금 인색한 편이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머니가 그렇게 구두쇠처럼 굴지 않았다면 그 밥집은 더 빨리 문을 닫았을 것이다.

차이 아저씨가 요리를 할 때면 학생들은 옆에 서서 자신이 주문한 요리가 나오기를 기다렸는데 아저씨가 재료를 넣을 때마다 옆에서 이렇게 소리쳤다.

“사장님, 고기가 하나도 안 보이잖아요. 팍팍 좀 넣어주세요!”

그러면 아저씨는 멋쩍게 웃으며 고기를 조금씩 더 넣어주곤 하셨다. 하지만 그때마다 아주머니는 아저씨에게 불같이 화를 내셨다.

“당신 미쳤어요? 요리 하나에 3위안밖에 안 받으면서 고기를 그렇게 많이 넣으면 어떡해요! 고기 사고, 기름 사고, 쌀 사고, 임대료 내고 나면 우리한테 남는 게 얼마나 된다고 그래요? 당신 정말 장사할 생각이 있는 거예요, 없는 거예요?”

아주머니가 화를 내면 학생들은 슬그머니 빠져나가고 불쌍한 아저씨만 그 자리에서 계속 혼이 났다. 한 번은 아저씨가 이렇게 해명하는 것을 들었다.

“나중에 우리 딸이 먼 곳에서 대학교를 다닌다고 생각해봐요. 타지에 혼자 있는 우리 딸을 누가 이렇게 챙겨준다면 안심이 되지 않겠어요?”

“우리 딸은 하나잖아요! 우리 가게에 한 달 치 식권을 끊은 학생들만 50명이 넘는데 그 애들한테 다 이렇게 선심을 썼다가는 곧 망하고 만다고요. 식권 제도를 없애든가 아니면 장사 똑바로 해요!”

아무도 아주머니를 당해낼 수가 없었다.

내가 지나가는 꼬마 차이에게 놀리듯 말했다.

“너희 엄마 평소에도 저렇게 무섭니?”

그러자 꼬마 차이가 말했다.

“엄마가 화를 내는 데는 다 이유가 있어요.”

그때 차이 아주머니가 다가와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조용히 밥을 먹었다.

때로는 한 달 치 식권을 살 돈이 없어서 몰래 차이 아저씨께 외상을 부탁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아저씨는 담배 한 개비에 못 이기는 척 외상을 받아주곤 하셨다. 하지만 아주머니에게 두 번 발각된 이후 가게 안에는 커다란 칠판이 하나 걸렸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우리 집은 외상을 받지 않습니다!’

칠판이 걸린 이후로 외상으로 밥을 먹는 학생들은 확연히 줄었다.

어느 날 밥을 먹고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말했다.

“문제를 이렇게 금방 해결하다니 아주머니는 정말 대단하세요. 이제 외상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잖아요.”

차이 아저씨가 껄껄 웃으며 대답하셨다.

“장사를 할 줄 아는 사람이지.”

당시에 나와 같은 시간에 밥을 먹으러 오는 남학생 두 명이 있었다. 그들은 늘 밥을 먹고 나서 남은 음식을 일회용 도시락에 싸고 무료로 제공되는 밥도 몰래 더 퍼갔다. 남학생들은 아주머니가 계산을 하는 틈을 타서 재빨리 밥을 퍼갔다. 하지만 그런 일이 일주일이나 반복되자 아주머니도 눈치를 채셨다. 아주머니가 왜 그렇게 밥을 많이 퍼 가냐고 묻자 남학생들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밤에 배고플 때 먹으려고 그런다고 말했다.

아주머니는 남학생들을 앉혀 놓고 말씀하셨다.

“내가 그동안의 일을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지난 일주일 동안 남은 음식이랑 밥을 싸갖고 가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냥 모른 척해준거다.”

남학생들은 얼굴이 빨개져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그 순간 나서서 밥값을 대신 내주고 싶었다. 하지만 나도 그때 아직 인턴이라 월급이 많지 않았고 차비에 월세에 식비를 빼고 나면 여윳돈이 거의 없었다. 나는 귀를 쫑긋 세우고 듣고 있다가 만약 아주머니가 남학생들에게 밥을 더 이상 못 가져가게 하면 내 한 달 치 식권에서 밥값을 제하라고 말씀드리려고 했다.

학생들은 말없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고 아주머니도 어쩐 일인지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잠시 후 아주머니가 물으셨다.

“너희와 함께 다니던 샤오쟈오는 왜 안보이니? 전에는 항상 셋이 같이 다니더니 왜 이제 둘만 오는 거니?”

두 남학생은 아주머니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서로 얼굴만 쳐다볼 뿐이었다.

“너희 혹시 샤오쟈오 주려고 그런 거니?”

“아, 아니에요. 그냥 저희가 야식으로…그게 아니라…사실은…네, 샤오쟈오에게 가져다 준 것 맞아요.”

“왜 이번 주에는 함께 오지 않고 밥을 가져다주는 거니?”

두 남학생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다가 사실대로 말했다.

“샤오쟈오의 아빠가 일을 하다가 크게 다쳐서 이번 달에 생활비를 못 보내주셨대요. 원래는 이번 달만 외상을 부탁드리고 집에서 돈을 부쳐주면 그때 밥값을 내려고 했대요. 그런데 칠판에 저렇게 쓰여 있어서….”

한 남학생이 말하면서 칠판을 손으로 가리켰다.

“셋이 왔는데 2인분만 시켜서 먹기도 눈치가 보이고 해서 이 방법을 생각해낸 거예요. 정말 죄송합니다.”

아주머니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잠시 후 남학생들에게 말씀하셨다.

“내일 샤오쟈오와 함께 오너라. 이번 달만 외상을 받아줄 테니 남은 음식을 먹게 하지는 마라.”

“정말요? 감사합니다.”

나는 조금 멀리 떨어져 앉아 있었는데도 감격해 떨리는 남학생의 목소리를 생생히 들을 수 있었다.

밥을 먹고 식당을 나설 때 아주머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주머니는 무표정한 얼굴로 계산대에 앉아 돈을 세고 계셨다.

다음날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갔을 때 남학생 세 명이 앉아 있었다. 그중 처음 보는 한 명이 어제 얘기한 샤오쟈오인 것 같았다. 칠판에 쓰인 내용 중 달라진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 집은 외상을 받지 않습니다!’라고 크게 쓰여 있는 그 아래에 작은 글씨로 이런 내용이 덧붙여져 있었다.

‘사정이 있는 사람은 주인아주머니를 찾아오세요.’

칠판의 글을 읽는 순간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 집의 노란 등은 정말로 사람의 마음을 푸근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더이상 아주머니가 예전에 생각했던 것만큼 차갑고 인색한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남학생들이 밥을 다 먹고 나가려는데 아주머니가 샤오쟈오를 불러 말씀하셨다.

“샤오쟈오, 넌 내일 학생증 사본 좀 가져오너라. 그래야 내가 안심이 될 것 같구나.”

그 순간 샤오쟈오의 밝았던 표정이 갑자기 어색해졌다. 그가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네, 그럼요. 내일 가져다 드릴게요. 정말 감사합니다.”

나 역시 아주머니의 말을 듣는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기분이 딱히 좋은 건 아니었는데 그렇다고 아주머니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아닌 뭔가 개운하지 않은 기분이었다.

시간이 흘러 나는 어느새 인턴 과정을 끝내고 정식 직원이 되었다. 하지만 얼마 후 건강 문제로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원 진학 준비를 시작했다. 나는 그달 월급에서 월세를 내고 남은 돈으로 대학원 진학에 필요한 책들을 샀다. 그러고 나니 통장 잔고가 참담했다. 잡지사에 보낸 글의 원고료도 아직 들어오지 않은 상태라 당장 밥값을 낼 돈도 없었다. 나는 아빠에게 도움을 받을까 하고 전화를 걸었지만 한참 동안 이런저런 얘기만 나누다가 그냥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대학교도 졸업하고 사회생활도 하고 있으면서 생활비가 모자라니 도와 달라는 말을 차마 꺼낼 수가 없었다.

나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차이네 주인 아주머니를 찾아가 외상을 부탁하기로 했다. 만약을 대비해 신분증 사본과 사원증 그리고 잡지사에 보낸 글을 인쇄해 곧 원고료를 받게 될 거라는 증빙 자료로 가져갔다.

다음날 아주머니를 찾아가 조심스럽게 외상 이야기를 꺼냈는데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기도 전에 아주머니는 내 신분증 사본만 있으면 된다고 말씀하셨다. 오래된 신분증에는 현재 나에 대한 정보는 거의 나와 있지 않았다. 나는 다른 증빙 자료를 더 보여드리려고 했지만 아주머니는 필요 없다고 하셨다.

“나중에 저를 못 찾으면 어떻게 하시려고요?”

“내가 자네를 찾아서 뭐하게?”

대학원 준비를 하는 동안 꼬마 차이는 종종 내게 토마토계란탕이나 고깃국 같은 따뜻한 국물을 가져다줬다. 내가 주문한 음식이 아니라고 하면 꼬마 차이는 이렇게 말했다.

“다른 사람이 주문한 건데 아빠가 물을 너무 많이 넣어서 한 그릇이 더 만들어졌대요.”

“그렇구나.”

그때는 그렇게 무심하게 대답을 하고 말았지만 사실 아저씨, 아주머니의 마음에 큰 감동을 받았었다. 하지만 나는 감정 표현에 서툴렀기 때문에 감사한 마음을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이 하나 있었다. 차이 아저씨가 내 요리를 만들고 있을 때 절대 ‘고기 좀 더 넣어주세요!’라는 등의 말은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누군가를 난처하게 만드는 말을 하지 않는 것도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는 한 가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대학원 시험이 끝나고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일자리를 구했다. 아저씨, 아주머니도 시험 결과를 궁금해해서 아직 발표가 안 났다고 하자 내게 합격할 자신이 있느냐고 물으셨다. 나는 시험을 잘 본 것 같으니 큰 이변이 생기지 않는 한 합격할 수 있을 거라고 말씀드렸다.

차이 아저씨가 말씀하셨다.

“베이징에 있는 학교에 합격하면 더 이상 우리 집에 밥 먹으러 오는 일은 없겠구나.”

꼬마 차이도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오빠, 이제 여기 안 올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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