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더굿북 Feb 28. 2017

06. 세계의 화약고로 돌변한 영국의 브렉시트

<도널드 트럼프의 빅뱅>

이번 제45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미국 언론은 힐러리 클린턴 편이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미국 민주당도 힐러리 클린턴 편이었고, 심지어 공화당 내부에서조차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겠다는 사람들 천지였다. 전 대통령인 공화당의 조지 W. 부시조차 트럼프를 찍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도널드 트럼프는 대통령이 되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그것은 도널드 트럼프의 호소에 미국 국민이 공감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는 버락 오바마가 현실도 모르고, 항상 학교에서 배운 말만 하는 이상주의자라고 비판한다. 버락 오바마가 미국을 망쳐놓았다고 탄식하는 것이다.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이지만, 힘이 강해지면 친구들이 모인다. 나라도 마찬가지다. 미국이 힘이 강할 때는 자유세계 국가들이 전부 모여든다. 그리고 그 결속력은 강해진다. 함께 중동 국가들을 공격하기도 하고, 아프리카에 평화유지군을 보내기도 한다. 힘이라는 것이 생기면, 주변이 알 수 있을 정도다.

그런데 요사이 미국에는 험악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미국 주변 친구들이 전부 떨어져 나가는 것이다. 예전 같으면 미국의 말 한마디에 꿈쩍도 못 하던 나라들이 이제는 아예 미국의 눈치도 보지 않는다. 브렉시트가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은 지난 100년간 영국을 잘 끌고 다녔다. 말로는 종주국이라 칭하면서 영국의 위세를 높이는 척했지만, 사실 주인이 몸종 부리듯했다. 영국도 뭔가 잇속이 있으니까 따라다녔겠지만, 못내 답답한 부분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에야 조그만 섬나라 처지가 되었지만, 영국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시민혁명을 하고, 산업혁명까지 한 근대국가다. 미국에게 경제 패권을 물려준 150년 전까지, 영국은 전 세계 영토를 25%나 차지했던 식민 강대국이었다. 한때는 미국도 식민 통치했고, 인도와 중국까지 모두 손으로 잡고 쥐락펴락했다. 영국 입장에서 보면,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에는 답답한 구석이 많다.

어쨌거나 영국의 위세는 아직도 대단해서, 영국을 포함해서 과거 대영제국 식민지로 구성된 영국연방은 무려 세계 54개국에 이른다. 영국연방의 인구 역시 17억 명으로, 세계 인구의 4분의 1에 해당하는데, 이것만 봐도 영국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어림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유럽연합 이야기가 처음 나왔을 때 영국은 주저했다. 판세를 보아하니, 인구 많은 독일이 유럽연합을 주도할 것 같았다. 독일은 뒤늦게 산업혁명을 하고 나서도 영국 식민지를 가로채려 2차례나 세계대전을 야기한 나라였다.

영국 처지에서는 독일이 못내 괘씸하고 얄밉지 않을 수가 없었다. 두 차례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영국이 얻은 결과는 그동안 유지했던 식민지들을 독립시켜주는 것이었다. 전쟁을 일으킨 것은 독일인데, 영국은 막상 전쟁에서 승리하고서도 패국과 함께 식민지 청산에 나서게 된 사실이 답답하기 이를 데 없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당시 영국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이 제일 먼저 유럽연합에 대한 구상을 발표했음에도, 영국은 복잡다단한 경제 현실 때문에 유럽연합 가입을 망설였다. 유럽연합 국가들이 전부 유로화를 사용하는 반면 영국만 파운드화를 쓰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영국은 정말 난감한 처지에 놓였다. 적대국 독일이 유럽연합을 주도하는 데다, 북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와 얽힌 관계도 애매하고, 더불어서 영국연방 국가들에게 낯도 안 서고 관계 설정도 복잡했다. 영국은 유럽연합 가입을 질질 끌었다. 그리고 1973년 가입했던 유럽경제공동체 수준에서 유럽 대륙과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했다.

그러나 당시 동유럽과 구소련 체제가 붕괴되면서 유럽연합은 결국 대세가 되었다. 결국 영국도 어쩔 수 없이 유럽연합 가입을 선택했다. 유럽연합의 개막은 시장의 확장이었으므로 가입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유럽 통합에 반대하던 마거릿 대처 총리는 끝까지 영국의 가입 반대를 주장했지만, 1990년 유럽 통합을 결정한 보수당 지도부는 마거릿 대처가 사임하도록 내몰았다.

이듬해인 1991년, 12개국 유럽 공동체에서 시작된 유럽연합은 1999년 단일 화폐 유로화를 도입했다. 그리고 2016년 6월 23일, 영국 정부가 자국민에게 브렉시트 찬성 여부를 묻는 투표 전까지 유럽연합은 총 19개국 5억 명이 가입한 상태였다. 전 세계 경제의 23%를 차지하는 대규모 경제 공동체였다.

그런데 2012년 하반기부터 유럽연합의 재정 위기가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미국발 금융 위기가 유럽으로 옮겨가서 경제 구조가 취약한 남유럽 국가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로 간단히 정리한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의 헷지 펀드를 유럽은행이 구입하면서 야기된 문제였다. 문제는 미국이 저질렀는데, 수습은 유럽 국가들이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었다.

그러자 2013년 1월, 영국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브렉시트를 2017년에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자국 통화 파운드를 쓰는 영국은 유럽연합 회원국의 일원으로 유럽연합의 금융 위기에 경제적 지원을 해야 하는 상황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이와 함께, 독자적인 금융 서비스업을 운용하던 영국은 유럽발 금융위기 상황 속에서 유럽연합 금융 감독 규제를 받을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영국 국민이 유럽연합 탈퇴를 요구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유럽은 위기로 돌진하고 있었지만, 버락 오바마는 영국 국민에게 브렉시트 불가 제안만 했다. 경제 위기가 발생한 남유럽 일부 국가들은 유럽연합에서 강제퇴장 위기에 처했고, 영국이 브렉시트를 결정하면 유럽연합이 해체될 수도 있었다. 유럽연합 해체는 곧바로 세계경제 혼란으로 직결되는 최악의 경제 위기 상황을 낳을 것이었다. 버락 오바마는 유럽연합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었다.

2015년 5월, 재집권을 목표로 총력을 기울이던 보수당 데이비드 캐머론 총리는 브렉시트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리고 재집권에 성공하자 유럽연합에 독자적 난민 수용과 여러 가지 부수 조항을 요구했다. 유럽연합은 영국의 요구를 들어주었지만, 영국 국민은 브렉시트를 결정했다. 투표 직전 버락 오바마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지만, 영국국민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다.

버락 오바마는 역대 어떤 미국 대통령보다 영국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다. 영국이 유럽연합에 남아 있는 것이 좋다는 이상적인 이야기만 늘어놓았다. 버락 오바마는 이주, 경제 불평등, 테러, 기후 변화 등 같은 국제적인 문제들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집단행동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영국이 유럽연합에 남는 것이 유익하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미국이 주도하는 TPP에 참여하는 것이 영국에 유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버락 오바마의 발언은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켰다. 지금까지 영국에 어떤 경제적 혜택도 준 적이 없는 미국 대통령이 오히려 이 어려운 와중에 자국인 미국의 이익만 챙기고 있다고 비난을 받은 것이다. 브렉시트 반대를 주도하던 보수당 내부에서조차 영국의 혜택보다 미국의 이익을 중심으로 브렉시트를 관망하는 버락 오바마에 대해 볼멘소리를 낼 정도였다.

상황이 그랬으니 브렉시트를 주도하던 영국독립당 당수 나이절 패라지가 가만히 있었을 리가 없다. 나이절 패라지는 버락 오바마가 유럽연합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비난하며, 영국에 대한 내정간섭을 즉각 중단하라고 핀잔했다. 그리고 버락 오바마의 바람과 달리, 영국 국민은 브렉시트를 선택했다.

도널드 트럼프는 버락 오바마가 경제도 모르고 국제 관계도 모른다며 무시할 만했다. 브렉시트 이전부터 영국은 중국이 주도하는 AIIB에 가입하면서 미국과 갈라서고 있었다. 버락 오바마는 영국이 영원히 미국의 들러리 역할을 감당하리라고 믿었는지 모르겠지만, 영국의 생각은 달랐다.

영국은 미국이 세계경제를 주도할 동력을 잃었다고 믿었다. 더불어 성장 한계에 빠진 유럽연합도 곧 정체에 빠질 것으로 전망했다. 영국은 인구 경쟁력과 성장 동력을 지닌 신흥 시장이 주도할 것을 알았다. 그래서 영국은 미국의 들러리 대신, 과거 식민지였던 중국과 인도를 새로운 동반자로 선택했다. 영국은 아는 것을 버락 오바마만 몰랐다. 도널드 트럼프는 그것에 화가 잔뜩 났다.

도널드 트럼프는 《불구가 된 미국》의 열세 번째 장 ‘가치관’에서 버락 오바마의 자세를 지적한다. “내가 오바마 대통령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나는 그가 형편없는 대통령이었다고 생각한다. 그의 경험 부족과 오만은 이 나라에 큰 부담을 지웠다. 그는 군을 약화시켰고, 우방을 소외시켰으며, 적국을 부추겼다. 또한 권한을 넘어선 행정 조치들로 권력을 남용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01. 1,000원짜리 땅 투자 가능한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