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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Mar 03. 2017

10. 언제나 같은 자리에 (마지막 회)

<그때 당신이 거기에 있었다>

우리는 우르르 몰려가 초두부를 한 사람당 다섯 조각씩 주문했다. 두부를 튀기는 동안 친구들은 각자 자신의 근황을 팡 할머니에게 전했다.

팡 할머니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씀하셨다.

“너희들이 모두 잘 되어서 정말 기쁘구나.”

할머니는 더 이상 우리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셨다. 하지만 얼굴은 모두 기억하고 계시는 것 같았다. 할머니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모두 인사를 건네셨다.

그때 우리는 옛 추억에 젖어서 그동안의 작은 변화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저 모든 것이 변하지 않은 채 옛날 그대로라고만 생각했다. 할머니가 두부를 튀기는 속도가 점점 느려지고 있다는 사실도, 장사가 예전만큼 잘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요즘 학생들은 우리 때만큼 초두부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할머니의 허리가 굽고 얼굴에 주름이 가득해졌다는 사실도 우리는 보지 못했다.

몇 년의 시간이 더 흐르고 인터넷이 보편화된 뒤 나는 인터넷 뉴스를 통해 자주 고향 소식을 찾아봤다. 고향과 관련된 내용을 검색하다 보면 ‘천저우에서 반드시 먹어 봐야 할 현지 먹거리’라는 제목의 기사가 종종 보였는데 기사에 소개된 먹거리 중에는 늘 팡 할머니의 초두부도 포함되어 있었다. 기사는 이런 내용이었다.

‘할머니는 이곳에서 매일 두부를 튀기면서 그동안 수많은 학생들의 졸업을 지켜봤다. 매일 두부를 200개씩 튀겼다고 생각하고 계산해 보면 20년 동안 할머니는 146만 개의 초두부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곳은 이 기사를 쓴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소중한 어린 시절의 추억을 간직한 곳이다.’

학교 앞에서 할머니의 초두부를 사 먹은 아이들은 처음에는 키가 1미터도 채 되지 않아 까치발을 들어야 두부를 튀기고 있는 냄비 안을 겨우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런데 눈 깜짝할 새 시간이 흘러 어느새 그 아이들은 기자가 되어 있기도 하고, 경찰이 되어 있기도 하고, 변호사가 되어 있기도 했다.

언젠가 초등학교 앞 도로를 정비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도로 정비 때문에 다른 노점상들은 모두 다른 곳으로 옮겨갔는데 유일하게 팡 할머니의 초두부 리어카만 계속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아무도 감히 팡할머니를 그곳에서 내쫓지 못했고 다른 노점상들도 특별히 불만을 갖지 않았다. 소문에 의하면 그쪽 도로를 관리하는 책임자도 어렸을 때 팡 할머니의 초두부를 먹고 자랐다고 했다.

팡 할머니가 없다는 것은 더 이상 맛있는 초두부를 먹을 수 없다는 의미고 어린 시절의 즐거웠던 기억도 함께 사라진다는 의미였다.

그런 팡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니….

이 소식은 순식간에 고향 친구들에게 모두 전해졌다. 언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연세가 어떻게 되셨는지, 집은 어디였는지, 누군가 할머니의 리어카를 물려받아서 계속 장사를 하는지… 궁금한 것이 너무나 많았지만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팡 할머니는 우리에게 가장 친숙하면서도 낯선 사람이었다. 20년 넘게 할머니를 알고 지내는 동안 초두부를 먹으러 갈 때면 너도나도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에 바빴지 정작 할머니에게 관심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이 오직 관심을 가졌던 건 각자 즐거웠던 어린 시절을 추억할 수 있도록 할머니가 계속 그 자리에 계시는지 여부였다.

“직접 보기 전에는 못 믿겠어.”

나는 기차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학교 앞으로 갔다. 20년 넘게 봐온 익숙한 풍경이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로 북적이던 골목에는 이제 아무도 없었고 기름이 튀어 늘 얼룩져 있던 바닥도 깨끗하게 닦여 있었다. 수십 년간 차곡차곡 쌓인 먼지가 한차례 바람에 흔적도 없이 모두 날아가 버린 것 같았다.

팡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친구와 나는 서로 말없이 얼굴을 바라보다가 둘 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왜 눈물이 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더 이상 맛있는 초두부를 먹을 수 없어서였을까? 더 이상 팡 할머니를 볼 수 없어서였을까? 이제 친구들과 만나는 약속 장소를 바꿔야 해서였을까?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찬바람이 쌩쌩 부는 모퉁이에 서 있으니 쉴 새 없이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나는 그제야 그곳이 바람이 굉장히 세게 부는 자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할머니는 그동안 그렇게 추운 곳에서 20년 넘게 서 계셨던 것이다. 우리는 팡 할머니에 대해 정말 아는 것이 없었다.

그 이후 친구들은 더 이상 초두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고 할머니가 계시던 학교 앞 모퉁이 길을 지나가지도 않았다. 지나가야 할 일이 있어도 굳이 다른 길로 멀리 돌아갔다. 그 이후 나는 초두부 리어카를 보면 본능적으로 피했다.

누군가 내게 물었다.

“너 예전에는 초두부를 굉장히 좋아하지 않았어?”

어쩌면 나는 다른 그 무엇으로 팡 할머니에 대한 기억을 대체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흔히 과거의 일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하지만 굳이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그렇게 일 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다시 설 명절이 다가와 고향에 내려갈 채비를 하고 있는데 샤오우가 갑자기 단체 채팅방에 울고 있는 이모티콘과 함께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얘들아, 팡 할머니가 살아 계셔….”
“!!!!”

모두들 너무 놀라 말을 하지 못했다.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어떻게 된 일이냐고!”

친구들은 다양한 이모티콘을 띄우며 흥분과 놀라움을 표시했다. 사실 팡 할머니가 살아 계시다는데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겠냐만은 다들 이번에는 할머니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할머니가 연세가 많으시다 보니까 계속 몸이 안 좋으셨나 봐. 그래도 매일 나와서 장사를 하셨는데 어느 날 폐렴으로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 가셨대. 그때 한 달이나 병원에 입원해 계셨다는데 이제 괜찮다고 하시더라고. 오랜만에 그곳을 지나가는데 할머니가 계셔서 정말 깜짝 놀랐어.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지 뭐야.”

고향에 내려가자마자 우리는 팡 할머니의 초두부 리어카 앞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 학교 근처에 다다르니 멀리서 할머니가 굽은 허리로 두부를 튀기고 계신 모습이 보였다. 할머니는 수십 년간 두부를 튀기면서 몸속의 수분을 모두 빼앗긴 듯 바싹 말라 있었다.

할머니를 보자마자 눈물이 쏟아져 나올 것 같은 걸 겨우 참았다. 모두들 이번에는 수다스럽게 떠들지 않고 차분히 앉아서 할머니께 여쭈었다.

“할머니, 건강이 많이 안 좋으시다면서 이렇게 나와서 장사를 해도 괜찮으세요?”

팡 할머니가 우리를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너희들이 내가 죽었다는 소문을 듣고 다들 대성통곡을 했다기에 이렇게 나왔단다. 다들 이제 어디에 가서 초두부를 먹어야 하나 걱정이었다며? 그래서 내가 여기 이렇게 양념 만드는 비법을 적어놓았단다.”

리어카 한쪽에는 할머니의 비법이 적힌 작은 간판이 걸려 있었다.

<팡 할머니의 양념 비법>
재료 : 마른 고추 50g, 팔각 10g, 회향과 산초 각각 10g, 감초 10쪽, 계피 2쪽, 육두구 열매 3개
조리방법: 물 10컵을 넣고 천천히 끓인다. 물이 끓기 시작하면 양파, 마늘, 생강을 넣고 반 건조한 무채를 넣는다. 그런 다음 뜨거운 동백기름 세 숟가락을 넣어준다…

나는 당장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

“할머니, 제가 어렸을 때 늘 두부를 한 조각만 주문했던 것 기억나세요? 할머니께서 늘 무채 같은 양념을 듬뿍 올려주셨잖아요.”

“그럼, 기억하고말고. 다른 애들은 모두 네다섯 조각씩 살 때 너는 꼭 한 조각씩만 샀잖니. 네가 좀 부끄러워하는 것 같아서 특별히 한 조각을 아홉 조각으로 잘라주고 양념을 남들보다 많이 얹어 준 거란다. 네가 그걸 정말 맛있게 먹는 걸 보고 기분이 좋았단다.”
“할머니, 그럼 얘 이름도 기억하세요?”

옆에 있는 친구가 물었다.

“미안하지만 이름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구나. 나도 벌써 여든이 다 되어간단다. 많이 늙었지.”
“팡 할머니, 고향이 어디세요?”
“팡 할머니, 집이 어디세요?”

모두 할머니께 궁금했던 질문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할머니, 저 초두부 한 조각만 주세요. 예전처럼 아홉 조각으로 잘라서요.”

내가 말했다.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추억의 음식이 한두 가지씩 있다. 이런 음식은 언제 어디에서 먹든, 그것을 떠올리기만 해도 감동을 준다. 그것은 그리운 고향의 맛이기도 하고, 가족의 따뜻한 사랑이 담긴 맛이기도 하다.

팡 할머니의 초두부가 우리에게는 그리운 고향의 맛이었다. 사람들은 내가 팡 할머니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할머니의 초두부가 그렇게 맛있냐고 물었다. 사실 맛이 있는지 없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할머니의 초두부에는 즐거웠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겨 있기 때문에 그 맛이 특별하고 소중한 것이었다.

팡 할머니는 단순히 초두부를 팔던 장사꾼이 아니라 우리의 기억을 지켜주던 수호자였다.

고향에 남아 있는 친구에게 들으니 최근에는 팡 할머니의 아들과 며느리가 가끔 나와 일을 거든다고 했다. 팡 할머니는 사람들에게 아들 내외를 소개시켜주면서 나중에 자신이 없더라도 장사를 잘할 수 있게 도와 달라고 부탁하셨다. 사람들은 당연히 그러겠다며 고개를 끄덕였고 아들에게 할머니가 그간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얼마나 고생하셨는지 설명했다. 팡 할머니의 아들은 누차 잘못했다고 말하며 이제 다시는 어머니를 고생시키지 않겠다고했다 한다.

내 생각에 팡 할머니의 인생에서 가장 기뻤던 일은 두 가지가 있을 것 같다. 첫 번째는 어린 아이들이었던 우리가 모두 어른이 된 것, 두 번째는 자신의 아들이 드디어 어른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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