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더굿북 Mar 03. 2017

05. 타고난 투자자는 만들어진다.

<한국의 1,000원 짜리 땅 부자들>

공무원 생활을 하던 내가 부동산전문가로 변신하게 된 데는 여기서 소개하는 또 다른 멘토와의 인연이 크게 작용했다.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 중 한 명으로 그의 땅 투자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이 분과 처음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88년 부천시로 발령을 받아 농지업무를 담당하면서부터였다. 당시 이 분이 찾아와 중동 신도시 개발 소문이 돌고 있는 지역에 논을 사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이제 곧 개발하게 되면 논을 수용할 텐데 그곳에 왜 투자를 하느냐고 만류하자, 그냥 농지취득자격증명만 해주면 된다는 것이었다. 당시 배우자와 자녀에게 농지를 사주었는데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이는 합법적 증여를 위한 것이었다. 당시는 취득신고를 대부분 공시지가로 하는 시기였다. 따라서 공시지가로 신고하고 증여신고를 하면 실거래가의 1/3로 저렴하게 증여한 것이 되니 증여세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 추후 보상은 실거래가로 이루어져 그 차액인 2/3만큼의 증여세를 절세할 수 있었다.

이 분은 젊어서부터 직장에 다녔지만, 농지를 사서 농사도 짓고 살았다. 그런데 돈이 모이면 땅을 사고 땅을 산 후에는 농사를 짓다 보니, 어느 시점이 되면서부터는 개발될 만한 땅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사놓으면 길이 나고, 그리고는 택지로 개발되었다. 보상을 받으면 그 돈을 다른 곳에 쓰지 않고, 다시 인근에 땅을 사서 점차 불렸다. 땅 한 평 없던 처지에서 돌아가시기 직전에는 본인과 가족 명의의 땅이 전답을 포함해 농지가 15만㎡, 임야가 30만㎡나 되었다. 

최근에는 부천 오정물류단지에서 4만㎡ 이상의 보상을 받았고, 몇천 원에 샀던 산골짜기에 농지는 전철역세권이 되어 1천만 원대로 치솟았다. 또한, 시흥과 서운동에서 도로 보상금으로 2000년대 초에 산 포천 땅은 도로가 나면서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그 모습을 보면 참으로 경이롭기까지 하다. 정말 땅을 보는 눈이 신기에 가깝고 저절로 존경할 마음이 든다. 특별히 부동산을 공부한 것도 아닌데 타고난 능력을 보이는 이유는 그동안 여러 곳을 돌아보며 투자하고 경험한 결과라는 생각이다.

내가 이 분을 멘토로 칭하는 이유는 투자실력 때문만은 아니다. 이 분 덕에 나 역시 땅을 보는 눈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파주에 LCD 공장이 들어온다고 할 때인 2000년 초였다. 나는 어디에 어떻게 투자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었다. 때마침 이 분이 놀러 오셨기에 물었다. “정말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이 분은 다짜고짜 차에 타라고 하더니 나를 기흥 삼성전자 앞에 내려놓고는 “돈 있지?” 하고는 가버리는 것이었다. 영문을 몰라 그냥 집에 왔더니 다음날 사무실로 와서는 “내가 이럴 줄 알았다!” 하며 다시 차에 태워 기흥에 내려놓고 가버렸다. 

“그래, 삼성전자 주변을 보라는 것 같은데 한번 보자.” 나는 수원역, 용인, 영통지구 등을 며칠 동안 빙빙 돌아다녔다. 그분의 의도가 어느 정도는 읽혔기에 발이 퉁퉁 부을 정도로 발품을 팔았다. 그러고 나니 정문과 후문 그리고 주변의 개발 모습이 조금씩 보였다. 나는 다시 파주 월롱으로 돌아갔다. 이제 대략 개발지역이 눈에 들어왔다. 당시 대부분 전문가가 월롱역 주변을 추천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땅을 보는 눈이 확 트였다. 그러니 멘토라 할 수밖에….

<현재 까치울역 주변 항공사진> 개발 전 사진을 구할 수 없어 현재 모습을 싣는다. 개발 전에는 까치울역 주변에 도로도 없었고 산골짜기에 불과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09. 중동 평화는 이스라엘에서 시작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