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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Mar 06. 2017

10. 멕시코는 스스로 장벽을 친다. (마지막 회)

<도널드 크럼프의 빅뱅>

도널드 트럼프와 엔리케 페냐 니에토

미국 언론이 우습게 여기던 지난 대통령 선거 공화당 후보 시절, 도널드 트럼프가 멕시코에 장벽을 치라고 이야기했다. 그때 엔리케 페냐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은 가소롭다는 듯이 비웃었다. 그렇지만 엔리케 페냐 니에토가 지금도 도널드 트럼프에게 그렇게 행동할 수 있을까?

2016년 11월 9일,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자마자 상황은 순식간에 달라졌다. 클라우디아 루이스 마시에우 멕시코 외무 장관은 곧바로 언론 인터뷰를 통해 “멕시코 정부는 장벽을 위한 돈을 내는 건 우리의 비전이 아니라고 분명히 해왔다”고 발표했다. 상황은 많이 진지해졌지만, 아직도 도널드 트럼프 시대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발언이었다. 이는 멕시코의 외무 장관으로서 멕시코의 자존심을 생각하는 자세였다.

그러나 상황은 급반전되었다. 클라우디아 루이스 마시에우의 발언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의 논평을 들었는지, 곧바로 엔리케 페냐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이 “트럼프 당선인과 함께 일할 준비가 되어 있다”며 화해 의사를 내보냈다. 자신의 트위터에 “미국의 선거 과정과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을 축하한다”며 “트럼프와 기꺼이 양국 관계의 이익을 위해 함께 일할 것”이며, “멕시코와 미국은 친구 겸 동료이면서 북미 발전과 경쟁을 위해 반드시 함께 협력해야 하는 우방”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의 위력을 인정한 태도다.

이것으로 모든 사태가 종결될 것 같은가? 어림없는 소리. 도널드 트럼프는 끝장을 보는 사람이다. 자신이 쏟아낸 말이 결실을 보도록 엔리케 페냐 니에토에게 압박을 넣을 것이다. 바보가 아닌 이상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다.

미국 대통령이 멕시코에게 장벽을 세우라고 했는데, 멕시코가 장벽을 세우지 않는다. 그렇다면 미국 대통령과 멕시코 대통령 중에서 누가 이긴 것일까? 당연히 멕시코 대통령이다. 도널드 트럼프는 이기고 지고를 떠나서 “하라고 했으니 할 것이냐, 말 것이냐?”만 물을 것이다. 물론 엔리케 페냐 니에토는 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된다. 미국 대통령 선거기간, 도널드 트럼프를 향해 손가락 욕설을 한 비센테 폭스처럼 손가락 욕설을 해도 된다. 그리고 손이 발이 되게 빌고 이틀 뒤에 사과한 비센테 폭스처럼, 다시 사과할 수도 있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멕시코 이민자를 ‘강간범’에 비유했던 도널드 트럼프는 이미 멕시코에게 줄 많은 선물을 준비하고 있다. 이것들은 멕시코 정부가 이민 장벽을 건설하든 말든, NAFTA 재협상, 멕시코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 대폭 인상 등 멕시코 경제에 위협적인 정책이다. 도널드 트럼프는 멕시코 불법 이민자들이 미국 질서를 흔들고, 일자리를 빼앗고, 범죄행위를 저지르며, 마약을 유입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멕시코를 ‘강간범’이라고 불렀다.


도널드 트럼프는 멕시코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 이미 충분히 했기 때문이다. 손가락 욕설도 들었고, 미친 사람이라는 비난도 들었고, 그런 잘못에 대한 사과도 들었고, 자존심을 지키려고 이민 장벽만은 설치하지 못하겠다는 주장도 접했다. 그렇다고 도널드 트럼프의 태도가 바뀐다면, 그를 뽑아준 미국 국민은 뭐가 되겠는가? 멕시코는 아직도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모른다.

호세 안토니오 메아데 멕시코 재무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섣부른 대응을 피할 것”이라면서 도널드 트럼프의 행보를 주시한다고 말했다. 아구스틴 카르스텐스 멕시코 중앙은행 총재도 “트럼프 당선으로 인한 경제 변동성 확대를 예방하기 위해 경계를 늦추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그렇다고 상황이 끝난 걸까?

2016년 12월 3일, 필리핀 언론은 로드리고 두테르테가 도널드 트럼프와 통화했다고 보도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는 기자회견에서 전날 도널드 트럼프와 전화 통화한 사실을 밝혔다. 그리고 “트럼프가 마약 문제에 민감했다”며 “우리의 ‘마약과의 전쟁’이 잘 치러지길 바랐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가 왜 도널드 트럼프의 전화 통화 내역을 언론에 공개했을까? “이제는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로드리고 두테르테는 버락 오바마가 마약 범죄 용의자 몇천 명을 사법 절차 없이 사살하는 자신의 강력한 마약 단속 정책을 인권 침해라고 비판하자, 버락 오바마에게 “지옥에나 가라”며 막말을 퍼부었다. 그리고 곧바로 중국과 러시아로 건너가 동맹 운운했다.

그러나 아마도 로드리고 두테르테는 그날 이후 밤잠을 설쳤을지 모른다. 미국 대통령에게 쌍욕을 해댔으니 밤에 잠이 올 리가 없었을 것이다. 필리핀 국내의 마약 사범 몇천 명을 사살하면서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로드리고 두테르테였지만, 미국 대통령과 척을 지고는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본인이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필리핀 전체가 쑥대밭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는 “새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 협조적인 관계를 맺어 굉장히 기쁘다”면서 “도널드 트럼프는 우리가 문제를 다루는 방식을 이해했고 이는 미국이 우리나라 일에 더는 간섭하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는 그냥 ‘기쁜 것’이 아니라, ‘굉장히 기쁘다’라고 말했다. 한숨이 저절로 쉬어지는 느낌이 드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해서 도널드 트럼프 정권 인수위원회 관계자는 “두테르테가 트럼프에게 축하를 전했고 양국 간의 오랜 우정과 협력의 역사에 주목해 긴밀히 협력할 것에 동의했다”고 전하면서, 필리핀의 마약 소탕 정책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와 로드리고 두테르테의 대화 속에서 느껴지는 것은 무엇인가? 미국 우선주의와 필리핀 내정 불간섭, 그리고 필리핀에 대한 우호 다짐이다. 도널드 트럼프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다. 미국에 필요하지 않으면 필리핀 내정에 쓸데없이 개입하지 않는다. 그리고 미국에게 필요한 것은 필리핀이 우방으로 남아서 중국의 일대일로가 진척되지 않게 막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는 버락 오바마처럼 경솔하게 행동하지 않았다. 필리핀의 마약 소탕 정책이 마음에 안 들면, 버락 오바마는 조용히 전화를 걸어서 “하지 마!”라고 한마디 하면 될 일이었다. 세계 어느 나라 대통령이라도 미국 대통령이라고 대놓고 내정에 간섭한다면 반발할 수밖에 없다. 버락 오바마는 하수였다. 정말로 필리핀의 인권을 생각했다면, 로드리고 두테르테의 인권을 먼저 생각해야 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를 무시했으니 “지옥에나 가라”는 막말을 들었던 것이다.

로드리고 두테르테와의 전화 통화 내용을 보면 도널드 트럼프가 멕시코 정부에 요청한 이민 장벽이 어떻게 될지 생각해볼 수 있다. 물론 여기에도 미국 우선주의와 멕시코 내정 불간섭, 그리고 멕시코에 대한 우호 다짐 원칙은 적용된다. 도널드 트럼프는 항상 원칙대로 행동했고 내뱉은 말은 실현했다.

멕시코 장벽

도널드 트럼프는 불법 이민자와 마약이 들어오니까 멕시코 정부에게 장벽을 세우라고 요구했다. 그것은 도널드 트럼프의 선거 공약이었다. 미국 대통령의 선거 공약이 멕시코 정부에 대한 명령이라고 우길 수도 있겠지만, 미국 국민이 동의한 사실이다. 돈이 문제라면, 도널드 트럼프는 멕시코 정부에게서 충분한 관세를 걷어 충당할 수 있다. 자존심이 문제라면, 멕시코 정부가 스스로 장벽을 세울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경제 제재도 할 수 있다. 그것이 불만이라고 이야기해도 소용이 없다.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이 무너지는 것에 분개했다. 그는 멕시코 국민에게 인기 얻으려 미국 대통령이 된 게 아니다.

멕시코 행정부는 가만히 있는데, 미국에 이민 간 멕시코인들부터 변화가 시작되었다. 2016년 멕시코계 이민자들의 본국 송금 액수가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멕시코가 국경 장벽 비용을 대지 않으면 멕시코 이민자들의 송금을 막겠다는 공약 때문이었다. 멕시코 이민 장벽이 사건의 시작이다. 이것이 세워지면 남미 문제 전체가 도널드 트럼프의 뜻대로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미국이 남미에 세울 장벽이다.

도널드 트럼프는 NAFTA를 재건하거나 TPP를 강화하려 하지 않는다. 그냥 일대일로를 무너뜨리거나, 그렇게 하지 않아도 중국이 일대일로를 무너뜨리거나, 그렇게 하지 않아도 중국이 일대일로를 제대로 감당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한다. 일대일로가 두렵거나 중국이 부담된다면 중국을 치면 된다고 여긴다. 확실히 버락 오바마와 대응 규모가 다르다.

우방에 대한 입장도 분명하다. 우방이므로 우방에 맞는 대접을 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마음에 들지 않는 대접을 한다. 필리핀과 멕시코에 보여준 태도를 보면, 향후 도널드 트럼프의 세계 경영이 어떻게 진행될지 알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의 임기 8년 동안, 미국은 남미에 대한 명확한 정서적 · 공간적 · 경제적 · 정치적 장벽을 칠 것이다. 그것이 바로 도널드 트럼프식 미국 우선주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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