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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Mar 06. 2017

01. 소크라테스는 왜 독배를 마셨나?

<철학 콘서트>

“당신의 생각은 옳은가요.” 끈질기게 질문하면서 상대편이 진리에 도달하도록 안내하는 것이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이다. 

     
기원전 399년, 평소 소크라테스를 눈엣가시처럼 여긴 아테네의 지도층 인사들은 신을 믿지 않는 불경죄와 청소년들의 정신을 타락시켰다는 것을 이유로 그를 법정에 세운다. 소크라테스는 최후의 변론을 시도하지만, 압도적인 표차로 사형이 선고된다.    

오랫동안 우리의 사회 교과서는 법의 안정성을 강조하고자 ‘악법도 법’임을 주장해왔다. 그리고 악법 준수의 신화를 만드는 데 죄 없는 소크라테스가 이용되었다. 소크라테스가 죽기 전 제자들과 나누었던 대화를 전하는 글은 《크리톤》이다. 크리톤은 어릴 적부터 소크라테스의 친구였다. 장사로 돈을 많이 벌었다던가? 크리톤은 소크라테스에게 그야말로 헌신적인 후원자였다.
     
그런 크리톤이 소크라테스가 처형되기 전날 제발 탈옥해줄 것을 종용하러 감옥에 찾아간다. 친구를 잃기 싫은 크리톤은 갖가지 이유를 들어가며 설득한다. 자라나는 자식들은 어떻게 할래, 자식들이 클 때까지라도 아비가 살아 있어야 하지 않느냐, 부인은 또 어떻게 하고. 이렇게 간절히 애원한다. 탈옥은 당시 아테네 시민에게 불명예스러운 행위가 아니었다. 한바탕 정변이 일어날 때마다 정치인들은 외국으로 망명했고, 다시 정변이 일어나면 망명객들이 귀국하곤 했기 때문이다.
     
지금 소크라테스가 머무는 사형 대기실에서는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친구는 탈옥을 권유하는데 사형수는 독배를 고집한다. 왜 독배를 마셔야 하는지 구구절절 이유를 대가며 음독 행위의 정당성을 설명한다. 원, 참…….    

“나는 언제나 나의 이성적 사유에 따라 가장 올바른 것으로 판단되는 원칙만을 따르며 살았네. 이 원칙 준수의 결과가 사형 선고일지라도 나는 원칙을 포기할 수 없다네. 아이들에게 겁을 주어 설득하듯 투옥과 재산 몰수, 죽음으로 나에게 압력을 가하더라도 나는 나의 길을 갈 것이야. 사람들의 평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올바른 사유가 중요한 것이지. 어영부영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훌륭하게 아름답게 올바르게 사는 것이 중요한 거야.”
   
우리 선조들은 눈 덮인 들판을 걸을 때 한 발 한 발 조심히 걸으라고 충고했다. 뒤에 오는 사람이 따라 걷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배우고 끊임없이 반성하면서 어진 인격이 되고자 노력했던 선조들처럼 소크라테스 역시 끊임없이 올바르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를 진리로 이끄는 안내자는 그의 이성이었다. 이성적 사유는 훌륭하고 아름답고 올바른 삶으로 이끌어주는 그의 스승이었다.
     
나라의 법률이나 명령을 준수하는 것은 시민의 기본 의무다. 그런데 나라의 법률이나 명령이 잘못되었을 경우 이의를 제기할 권리가 시민에게 있다. 나의 이의 제기를 나라에서 수용하지 않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대목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당시의 헬라스인은 어느 도시에서 살 것인지를 선택할 권리가 있었고, 살던 도시가 마음에 들지 않아 다른 도시로 옮기면 아무런 불이익을 받지 않았다.
     
“우리 아테네인은 누구든 국사와 법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떠날 자유까지 갖고 있지. 가는 곳이 우리의 식민지든 혹은 다른 나라든 상관하지 않으며 자신의 모든 재산을 다 가지고 갈 수 있도록 아테네의 법률은 허용하고 있잖아.”
   
이제 소크라테스가 독약을 마셔야 할 정황이 또렷이 드러난다. 소크라테스는 법정에서 추방형을 제의할 수 있었다. 그랬다면 소크라테스는 크리톤의 권유대로 망명을 선택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인제 와서 사형을 회피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비겁한 짓이다.
     
“그러니까 이번 재판의 경우에도 나는 추방형을 제의할 기회가 있었잖아. 고소자들의 속마음 역시 추방이었기 때문에 내가 추방형을 자원했다면 법정은 나에게 합법적인 망명의 길을 터주었을 것이야. 그러나 나는 내 고집대로 갔잖아? 철학 하는 자유를 포기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달라는 것이 내 이성의 명령이었어. 크리톤, 인제 와서 법정의 판결을 거부하고 다른 나라로 도망하는 것은 가장 미천한 노예나 하는 짓 아니겠는가?”
   
참으로 냉정한 사유다. 지금 소크라테스는 멜레토스와 리콘과 아니토스에게 아무런 사감(私憾)이 없다. 지금 소크라테스는 세기의 투쟁을 벌이고 있다. 그 투쟁은 아니토스와 같은 속물들과 싸우는 것이 아니다. 그 투쟁은 ‘철학의 자유’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다. 이 신성한 싸움의 제단에 소크라테스의 목숨 하나 바치는 것은 아무 일도 아니다. 
     
자, 건배. 철학의 자유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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