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개의 방>
“자, 한나씨 이야기를 한번 들어볼까요? 여긴 어떻게 찾아왔죠?”
“룸메이트가 추천해줬어요. 성폭력상담소에서 일하는 친구거든요. 한번 가보라고 해서…….”
1년 전,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박사님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었다. 사실 나는 상담이 처음이 아니었다. 친구 혜진이의 성화에 못 이겨 약물치료를 받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내가 더 한심하게 느껴져 결국 그만두곤 했다.
혜진이는 성폭력상담소에서 일하면서 이곳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한번 가볼래? 이번에 우리 상담소에 여러 가지로 도움을 많이 준 곳이거든. 치료하시는 선생님들도 정말 좋고.”
혜진이 말에 나는 조금 호기심이 생겼다. 내가 약물치료를 그만둔 뒤로는 혜진이가 먼저 치료나 상담 이야기를 꺼낸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자, 한나씨. 편안하게 앉아볼까요? 목과 어깨의 긴장을 풀고 소파에 편하게 기대보세요.”
박사님의 말에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등을 잔뜩 구부린 채 앉아 있었다. 마치 내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꽁꽁 숨기듯이.
등을 소파에 살짝 기대니 갑자기 무방비 상태가 된 것처럼 불안해졌다. 박사님은 그런 내 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 따뜻한 차를 내어주었다.
차 향기를 맡자, 문득 은은한 피아노 연주 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얼마나 긴장하고 있었는지, 클리닉에 은은하게 흐르는 음악 소리조차 내 귀에는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자, 이제 한나씨가 겪은 일들을 들려주겠어요? 시간 순서가 맞지 않아도 상관없어요. 그냥 생각나는 대로 편안하게 이야기해주세요. 지금 당장 시작하기 어려우면 차를 마시면서 마음을 좀 안정시킨 다음 시작해도 괜찮아요.”
“아뇨, 별로 어렵지 않아요. 여러 번 해봤거든요. 그럼 지금 시작하면 될까요?”
나는 퉁명스레 말했다. 사실 다른 상담소에서도 여러 번 해봤으니까 낯선 일도 아니었다. 나는 건조하게 말문을 열었다.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집 근처 운동장에서 혼자 걷고 있다가 어떤 아저씨를 우연히 만났다. 아저씨는 뒷산으로 가면 좋은 산책로가 있다고 했고, 나는 바보같이 따라갔다.
한참 올라갔는데 갑자기 아저씨가 뒤에서 나를 덮쳤다. 내 옷을 다 찢어버렸다. 소리를 질렀지만, 아무도 도와주러 오지 않았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걸레가 된 옷을 걸친 채 혼자 남아 있었다.
겨우 산을 내려가 경찰서로 향했다. 상황을 설명하고 상처 부위의 사진을 찍는데 엄마 아빠가 도착했다. 그런데 엄마는 내 얼굴을 똑바로 보지 않았다.
결국 멍청한 경찰들은 범인을 잡지 못했다.
그 일 이후 내 삶은 계속 어둡기만 했다. 나는 혼자만의 세계에 틀어박혔다. 친구를 사귀는 것도, 엄마 아빠 얼굴을 보는 것도 싫었다. 나는 공부에 빠져들었다. 엄마는 내 성적이 점점 오르자 안심하는 것 같았다.
‘그래, 공부하자. 그리고 대학만 들어가면 이 집에서 탈출하자.’
고등학교 졸업 후 나는 집에서 독립했고, 그 뒤로 내게 가족은 친구 혜진이뿐이었다.
혜진이와는 대학 기숙사에서 만났다. 누구에게든 쌀쌀맞게만 구는 나를 혜진이는 마치 엄마처럼 챙겨주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우린 서로에게 룸메이트이자 가족 같은 존재다. 혜진이가 성폭력상담소에서 일하게 된 건 어쩌면 내 영향이 컸을지도 모른다.
혜진이에게 처음 그 일을 털어놓았을 때, 혜진이는 충격을 받은 듯 멍하니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내가 바보 같아 보이지? 한심하냐? 뭘 그렇게 봐?”
“아니, 그게 아니라……. 네가 아무렇지 않은 일처럼 말해서. 너 정말 괜찮은 거야?”
사실 나는 그 일을 열심히 곱씹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라 그런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잘 기억도 나지 않았다. 부모님과 경찰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그 일을 털어놓은 건 혜진이가 처음이었지만, 생각보다 털어놓기가 힘들진 않았다.
“재수 없었지, 뭐. 어째, 이미 다 지난 일인데. 그 변태는 잡히지도 않았고……. 별일 아니야. 이제 다 잊어버렸어. 괜찮아.”
“…….”
혜진이는 내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내 손을 꼭 잡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왠지 가슴이 뭉클했다.
내 이야기가 모두 끝나자 박사님은 내게 체크리스트를 작성하게 하고 여러 가지 질문도 던졌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는 말 들어본 적 있나요?”
또 똑같은 이야기의 시작이다. 나는 박사님의 질문에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네, 성폭력상담소에서 저한테 알려줬어요. 제가 강간당한 뒤로 그 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면서요. 그거 말 고도 더 있어요. 폭식이랑 구토. 제가 체크리스트 작성하면서 썼는데 못 보셨어요?”
“네, 봤어요.”
박사님은 나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말을 이었다.
“우리 클리닉에서 치료하고픈 부분이 있나요? 아니면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던가 하는 바람 같은 건요?”
“글쎄요……. 요즘 폭식이랑 구토를 너무 심하게 하는 것 같아서 그 부분은 치료하고 싶어요.”
나는 건성건성 대답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이런 대화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었다.
‘난 바뀌지 않을 텐데…….’
고개를 떨구니 내가 입은 헐렁한 청바지가 눈에 들어왔다. 다리가 달달 떨리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또 긴장하고 있었나 보다.
머리만 짧게 자르면 아무도 내가 여자인 걸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난 마른 몸을 헐렁한 청바지와 낡은 티셔츠 속에 숨기고 다닌다. 음식도 거의 먹지 않는다. 가끔 미친 듯이 폭식할 때 외에는.
회사에서 나는 활달하고 유능한 사람이다. 하지만 사실 나는 아무도 믿지 않고 누구와도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다. 혜진이 외에는.
“한나씨?”
혼자만의 생각에 빠져 있다 문득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드니, 박사님이 나를 빤히 보고 있다.
“앞으로 한나씨를 힘들게 하는 그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볼 거예요. 그러고 나면 폭식이나 구토 같은 섭식장애를 치료할 방법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그런 얘기는 하기 싫은데…….’
또다시 나는 다리를 달달 떨고 있었다. 박사님은 그런 내 모습을 보더니 말했다.
“불안해하지 말고 마음 편히 무슨 얘기든 해도 돼요. 이 방에서 나누는 대화는 아무도 듣지 못하니까요.”
첫 번째 방,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용기
PE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즉 충격적인 사건을 겪거나 목격한 뒤 생긴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방법입니다. 성폭력이라는 외상은 결코 덮거나 잊으려 해서는 해결될 수 없습니다. 한나 역시 그 충격적 기억의 파편들을 감당하지 못한 채 마음속 깊이 가두어놓고 회피해왔습니다. 그러면서 가족과도 점차 멀어지는 불행을 겪었습니다. PE는 사건을 연상시키는 기억들을 회피하지 않고 하나씩 분석해 극복하도록 합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을 다시 하나하나 떠올리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한나에게도 이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PE 과정을 조금씩 해나가면서, 자신이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폭력에 의한 피해자인 동시에 생존자라는 사실을 깨닫고 수용하게 됩니다. 그리고 치료의 마지막 단계에서, 마침내 부모와 화해합니다.
우리는 과거의 경험이나 기억에만 얽매여 가끔 중요한 사실을 잊곤 합니다. 바로 미래는 언제나 새롭게 열려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아픈 기억이라도 우리의 미래를 온전히 지배할 수는 없습니다. 외 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 한나의 이야기가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