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개의 방>
오전 10시, 식빵 한 조각, 사과 반 개. 총 150칼로리
오후 12시, 스타벅스 카페라테. 총 180칼로리
오후 3시 30분, 샐러드(드레싱 없이). 총 150칼로리
오후 5시, 김밥, 떡볶이, 순대 조금씩. 총 200칼로리
밤 열 시, 다이어트 일기를 쓰다가 참지 못하고 과자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과자를 입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입안에서 과자가 바스락거리며 부서진다.
‘밖에 들리진 않겠지?’
음악 소리를 조금 키웠다. 어느새 과자 한 봉지가 바닥났다. 오늘부터 다시 다이어트를 하려고 마음먹었는데 결국 또 이렇게 망쳐버렸다.
‘오늘은 어차피 틀렸어. 실컷 먹어버리고 내일부터 새로 시작해야겠다.’
프링글스 뚜껑을 열고 감자칩을 입에 넣는데 엄마가 벌컥 문을 열었다.
“이럴 줄 알았어.”
엄마 얼굴이 잔뜩 찌그러진다.
“서현아, 지금 몇 시니? 이렇게 늦은 시간에 과자 부스러기나 먹으니까 자꾸 살이 찌는 거야. 알아?”
“아까 저녁 안 먹었단 말이야. 이제 그만 먹을 거야.”
거짓말이다. 다섯 시쯤 민주랑 분식집에서 떡볶이와 김밥을 먹었다. 순대도. 먹기 싫었는데, 민주가 배고프다고 해서 거절할 수가 없었다. 1인분씩 시켜서 둘이 나눠 먹었으니 그리 많이 먹진 않았다. 그래서 여섯 시쯤 집에 돌아온 후 계속 배가 고팠다.
“아까 엄마가 저녁 먹으라고 할 땐 왜 안 먹었어? 과자 먹으면 살찌는 거 몰라?”
내가 뚱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을 않자 엄마는 방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다.
‘알아, 나도 안다고요.’
엄마는 살 빼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살만 빼면 더 예뻐질 거다, 뱃살이 이게 뭐니, 뚱뚱하니까 성적도 안 나오지……. 생각해보면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는 조금만 많이 먹어도 엄마한테 잔소리를 들었다. 그땐 별로 뚱뚱하지도 않았는데……. 엄마는 말라깽이인 데다 소화가 안 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하지만 나는 아빠를 닮아선지 뭐든 잘 먹고, 살도 금방 찌는 체질이다. 엄마 눈에 나는 엄청나게 먹고 엄청나게 뚱뚱한 돼지 같은 여자아이일 것이다.
‘짜증 나.’
프링글스 통을 품에 안고 감자칩을 꾸역꾸역 입에 넣었다.
바삭, 바삭, 바삭.
나도 모르는 사이 통이 텅 비었다.
“웩, 웩.”
손가락으로 목구멍 깊은 곳을 건드려 배 속에 든 걸 몽땅 토해냈다.
‘아, 시원하다.’
메스꺼운 기운이 진정되자 배 속이 텅 빈 듯 기분 좋은 허전함이 밀려온다. 과자를 다 토해냈으니까 몸무게는 괜찮을 것이다. 어쩌면 좀 더 빠졌을지도 모른다. 저녁을 안 먹은 셈이니까.
배가 부른 건 참을 수가 없다. 특히 밥이나 과자를 먹고 배가 부르면, 배 속에 탄수화물 덩어리가 잔뜩 들어차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럼 토하고 싶어진다.
‘빼내야 해.’
배 속에 든 걸 변기에 모두 쏟아내고 나면 편안해진다. 살찔 거라는 두려움도, 절제하지 못하고 먹었다는 죄책감도 잠시 잊을 수 있다.
토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원푸드 다이어트, 황제 다이어트, 한약 다이어트……. 그동안 별별 다이어트를 다 해봤지만 한 번도 성공한 적은 없다. 잠깐 성공했나 싶다가도 금세 요요가 찾아와 원래 몸무게로 돌아가거나 몸무게가 오히려 더 늘곤 했다. 그래서 다이어트 대신 먹고 토해버리는 방법을 택했다. 처음엔 토하는 게 조금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익숙해졌다. 살찔까 봐 불안해하는 것보다는 토하는 게 훨씬 편하다. 그러다 보니 조금씩, 토하지 않으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살은 빠지지 않고 그대로다. 그래서 내일부턴 진짜 다이어트에 돌입할 생각이다. 탄수화물 안 먹기, 칼로리 계산해서 먹기. 살이 빠지면 엄마한테 더는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되겠지. 살만 빠지면 남자친구도 생길 거야. 엄마 말로는 살만 빠지면 민주보다 내가 더 예쁠 거랬어. 살만 빠지면 공부에 더 집중할 수도 있고. 살만 빠지면……, 살만 빠지면…….
‘더 쪘잖아!’
이해할 수가 없다. 배부르다는 느낌이 들면 바로 토해냈는데, 몸무게가 줄기는커녕 1.5킬로그램이나 늘었다.
여섯 번째 방, 섭식장애 이겨내기
인간의 삶과 마음이 단순하지 않듯, 섭식장애도 여러 가지 복합적인 문제에서 출발합니다. 섭식장애를 겪는 많은 사람들은 심리적 갈등과 사회적 시선 때문에 몸에 대한 강박을 갖게 되고 결국 폭식이나 거식 등의 방법으로 자신을 학대합니다. 서현 역시 예뻐지고 싶은 내면의 욕구와 날씬해져야 한다는 부모의 요구, 서구적인 체형만이 절대적인 아름다움이라 보는 사회적 시선 등으로 인해 섭식장애 증상이 시작되었습니다.
실제로는 살이 찌지 않았지만, 본인은 살이 쪘다고 믿는 내담자들에게 정량의 음식을 먹으라고 설득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매일 먹은 음식에 대해 자세히 일기를 쓰고, 규칙적이고 균형 잡힌 식단으로 식사하는 실험을 통해 내담자들이 건강한 신체가 주는 기쁨을 스스로 깨닫도록 합니다.
서현은 이 모든 과정을 잘 마쳤을 뿐만 아니라, 내면의 아름다움과 자신만의 개성을 찾아가는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진정한 ‘미’는 피부와 몸에서 발현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감과 총명함에서 발현된다는 사실을 증명해준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