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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Mar 20. 2017

10. 파산하던 성남시와 아널드 슈워제네거(마지막 회)

<이게 나라다>

아널드 슈워제네거. 우리에게는 터미네이터 시리즈로 잘 알려진 세계적인 스타 배우다. 영화배우로 정점을 찍던 그는 갑자기 미국 캘리포니아 주지사에 당선되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캘리포니아는 어떤 곳인가? 만일 미연방에서 독립하여 하나의 국가를 이루게 되더라도 세계 Top 10 이내에 들 정도로 규모가 큰 곳이다. 

     
그는 또 한 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주지사로 재임 중인 2009년 캘리포니아주의 부도를 선언한 것이다. ‘주 정부에 돈이 없다.’ 는 선언과 함께 공무원들의 급여, 주민들의 세금 환급금, 주 정부 발주 사업에 대한 대금 지급, 학생들의 학비 지원금, 공립학교 교사의 봉급 등 지급이 정지되었고, 심지어는 감옥에 갇혀 있는 죄수들을 부양할 재정이 없어서 형기가 다 차지 않았는데도 이들을 석방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은 바다 건너에서 날아온, 그저 남의 나라 얘기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같은 일들이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다. 2009년 당시 미국은 GDP 대비 국가 부채율이 88%나 되었다. 2000년도에 33%였던 것에 비하면 9년 사이에 두 배 이상 급증한 수치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올해 국가 채무액이 645조 원으로 국가 부채율이 GDP의 40%를 넘어섰다. 당시 미국에 비하면 아직은 상대적으로 건전한 상태라고 볼 수 있으나, 2010년도부터 이 비율이 매우 가파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이다. 
     
지방자치단체들의 상황도 매우 심각하다. 현재 지방자치단체들의 평균 재정자립도는 51% 정도이다. 이 수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나름대로 선방했다던가, 심각하다던가, 보통이라던가 말이다. 그러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이 역시 매우 심각한 상황인 것을 알 수 있다. 
     
2016년 현재 총 243개의 자치단체 중 재정자립도 1위는 서울 본청으로 83.04%이다. 2위부터는 60%대로 떨어져서 65.17%의 서울 중구가 2위, 65.05%의 서울 강남구가 3위이다. 60% 이상 되는 곳은 10개밖에 되지 않는다. 50%를 넘는 곳은 모두 22곳으로 나머지 221곳은 재정자립도가 50%도 되지 않는다. 30% 미만인 곳은 155개나 되고, 10% 미만인 곳도 8개나 된다. 
     
이재명 시장은 2010년 성남시장으로 취임하면서 국내 최초로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바 있다. 그로부터 4년 후 성남시는 모라토리엄을 극복했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이 이 시장의 대표적인 치적이라고 치켜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정치 공세도 만만치 않다. ‘쇼’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도 많이 들린다. 이들의 논리에 의하면 2009년까지 성남시는 재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것이 된다. 모라토리엄을 선언할 만한 상황도 아니었는데, 정치적인 쇼를 위해 상황을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이 된다. 도대체 진실은 무엇일까? 
     
2009년 12월 17일 자, 그러니까 이재명 시장이 취임하기 전에 나온 기사 하나가 객관적으로 사실을 말해주는 듯하다.
     

성남시, 초호화 청사 짓고 ‘파산위기’ 직면 
판교신도시 사업비 5천700억 전용, 내년 민생사업 올스톱 
_ 뷰스앤뉴스 박태견 기자(2009년 12월 17일)

     
지방자치단체의 초호화 청사 건립은 언제나 문제가 되어 왔다. 지방재정자립도는 계속 떨어지고 있고, 주민들의 삶은 점점 피폐해지고 있는데, 복지 예산은 없다고 하면서 어떻게 그 많은 돈을 들여 신규 청사, 그것도 ‘호화’도 아니고 ‘초호화’라는 이야기가 붙을 정도의 청사를 짓는가? 청사가 그 지역의 상징 건물인가? 파리를 대표하는 에펠탑 정도의 건축물이 되길 원하는가?
     
필자도 삶이 힘들었을 때 성남시 수정구 태평동 반지하에서 살아본 적이 있다. 태평동 지역은 언덕에 있는 고지대이다. 이곳에는 인생에서 한파를 맞아 어렵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폐지를 주워 연명하는 노인분들도 자주 눈에 뜨인다. 
     
2009년 11월의 어느 날, 시청 신청사 개청식이 열린다는 소리가 들렸다. 그 당시 무슨 일들이 벌어졌는가? 전국에서는 신종인플루엔자 확산으로 비상이 걸린 상태였고, 성남시에서만도 수천 명의 확진 환자가 발생한 상황에다가 이미 1명이 사망한 상태였다.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성남시는 2억7천만 원을 들여 호화 개청식을 개최한 것이었다. 이 돈이면 신발 깔창 생리대를 쓰는 아이들을 모두 도울 수 있었을 것이며, 폐휴지 줍는 어르신 분들에 게 겨울철 난방비로 지원해 드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분노한 시민들과 운동가들이 시청을 찾아가 항의를 하든 말든 유명 연예인들과 함께 화려한 불꽃놀이가 벌어진 당일, 전임 시장이 아방궁에 들어가던 날, 아니, 3,222억 원이나 들어간 초호화 청사를 볼 때마다 추운 곳에 살던 시민들의 소외감은 극에 달했을 것이다. 31억 원이나 들인 홍보관이나 15억 원이나 들어간 음악 분수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가? 분수에서 흘러나온 음악이 성남 시민들을 행복하게 만들었는가? 
     
“전염병이 창궐하고 백성의 삶은 도탄에 빠졌는데, 왕은 십상시들과 주지육림을 즐기며 호화 잔치를 벌였다.” 역사책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장면이다. 당시 민주당 부대변인이었던 이재명 시장은 이를 두고 ‘시민 가슴에 두 번씩 대못 박는 초호화판 개청식’이라는 논평을 한 바 있다. 바로 이렇게 말한 부대변인이 2010년 성남시장이 된 것이다. 
     
이 시장은 취임과 동시에 ‘채무 이행이 어려워지게 된 경우, 일정 기간 채무 이행을 유예’하는 모라토리엄을 선언하였다. 이 당시의 채무액은 7,285억 원이었다. 이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몇 가지 숫자들을 살펴보아야 한다. 2010년도 성남시의 일반 회계 예산은 1조2,237억 원이었고, 지방세와 세외 수입을 합한 금액이 8천249억 원으로, 재정자립도는 67.4%였다. 채무액은 일반 회계 예산의 약 60%, 수입액의 88%에 해당하는 액수이다. 
     
앞서도 말했듯이 문제에 대한 인식은 누구 처지에 서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초호화 청사를 건립한 전 시장의 처지에 있었다면, 이 정도의 금액은 얼마든지 갚을 수 있는 금액일 것이다. 복지 등 축소하고 들어오는 수입으로 충당하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규모의 부채이다. 심각한 액수라고 하더라도 차기 시장에 게 떠넘겨도 된다. 
     
그러나 당시 분노한 시민들의 처지에서 상황을 바라보았다면, 모라토리엄 선언은 당연하였을 것이다. 특히, 차가운 바닥에 서 차가운 바닥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 일해 온 이 시장으로서는 초호화 청사와 아방궁 시장실을 보고 분노를 느꼈을 것이고, 이 말도 안 되는 청사 때문에 차가운 사람들에게 돌아갈 복지 혜택이 끊길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치를 떨었을 것이다.
     
모라토리엄을 선언한 이 시장은 이 사실을 시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린 후, 재정 위기 극복을 위한 동참을 호소하였다. 그리고는 바로 실행에 돌입하였다. 2010년도에는 행사성 예산, 공무원 복지사업 취소 등 초긴축 재정운용을 통해 판교특별회계 100억 원과 같은 해 편성하지 못한 법적 의무금 1,365억 원을, 2011년에는 1,239억 원, 2012년에는 1,500억 원 등 3년 6개월간 총 4,572억 원을 현금으로 갚았다. 그 나머지는 회계 내 자산매각, 채무존치 등을 통해 정리하였다. 
     
빚 갚느라 다들 허리띠만 졸라맸는가?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을 하지 못했는가? 그렇지 않다. 할 건 다 했다. 사회 복지 예산의 경우 일반 회계 비중이 26%에서 36%로 늘었다. 부채 청산이 끝난 후인 2014년도에는 전년도 대비 교육 33.1%, 문화/관광 53.4%, 보건 56.8%, 산업 및 중소기업 45.9%, 그리고 사회 복지가 27.1% 늘어난 것도 주목할 만한 성과라 할 수 있다. 재정자립도, 기업 활동, 복지 수준, 문화 척도 등의 분야에서 전국 1위를 기록한 것은 덤.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여 목표를 달성한 기쁨을 누린 것은 또 하나의 덤. 
     
차기 리더 중 이에 필적할만한 성과를 낸 사람은 누구일까? 도저히 논리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예를 들어, “알아. BBK 등 문제 많은 거. 그래도 경제는 살린다잖아.”, 혹은 “그래, 주변에 이상한 소문들 많지. 그래도 불쌍하잖아. 부모 모두 총 맞아 죽고. 한 번은 하게 해줘야지.” 등과 같은 주장이 대세가 되어 대통령을 뽑는 일은 더는 있어서는 안 되지 않을까? 이제야말로 ‘바람’이 아닌 ‘성과’로 뽑아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인 대한민국을 위해서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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