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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Mar 29. 2017

02. 오늘과 소피스트 시대는 무엇이 다른가?

<서양철학>

소피스트(Sophist)


사상은 그 시대의 아들이다. 한 시대의 사상은 그 시대의 문화의 영향을 받으며, 한 시대의 문화는 그 시대의 사상의 영향을 받는다. 고대 세계에서 사상적 전기를 맞게 되는 중대한 사건이 있었으니 곧 페르시아와 그리스 사이의 전쟁이 그것이다.

기원전 5세기에 페르시아 전쟁(500~449)이 끝난 후, 마라톤 전쟁과 살라미스 해전에서 승리로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페르시아의 압박에서 벗어난 후, 철학의 중심지는 이오니아 지방에서 아테네를 중심으로 하는 그리스 본토로 옮겨졌으며, 철학의 관심사도 형이상학적인 실체로부터 인간에 대한 탐구로 변화되었다. 이런 변화의 선구적 역할을 한 사람들은 소피스트들이었다.

기원전 494년 이오니아 지방의 최후의 보루였던 밀레토스가 페르시아의 다리오(Dareios) 왕에 의해 함락됨으로써 이오니아의 모든 도시국가들은 페르시아의 식민지가 되었다. 그런데 다리오 왕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아테네까지 정복하고자 했다. 왜냐하면 아테네는 이오니아의 도시국가들이 페르시아에 대항해 항거하도록 도와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490년에 원정대를 보냈으나 마라톤(Marathon)에서 어이없이 패하고 말았다. 486년에 다리오의 뒤를 이은 크세르크세스(Xerxes: BC 486~464)29)가 그리스의 모든 도시국가들에게 각국의 흙과 물을 조공으로 바칠 것을 요구했다. 이것은 치욕적인 복종을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대다수의 국가들이 이 요구를 거부했다. 이에 크세르크세스는 마라톤 전투의 패배를 설욕할 겸 엄청난 대군을 이끌고 그리스 본토로 진격했다. 드디어 아테네 지방과 아티카 지방이 정복되었고, 아테네 시민들은 살라미스와 펠로폰네소스 반도로 피난했다. 남은 것은 고린도 지협의 지상연합군과 살라미스 앞바다의 연합함대뿐이었다. 이제 모든 그리스인들이 페르시아의 노예가 될 이 암담한 상황에서 아테네의 명장 테미스토클레스(Themistokles)의 지략으로 페르시아에게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이것이 유명한 살라미스 해전이다.

살라미스 해전(Battle of Salamis)


페르시아와의 전쟁이 끝난 이후 수십 년 동안 그리스 문명은 크게 발전하였다. 활발한 무역의 결과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게 되었으며, 확장된 교역을 통해 다른 문화들과의 접촉이 이루어졌으며, 다른 문화들의 가치관과 종교적 신념들도 접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그리스 문명이 세계화되었다. 이러한 문명의 발전은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사회구조와 정치구조에도 영향을 주었다. 전제 군주적 지배형태가 민주주의 정치형태로 바뀌었으며, 시민들이 직접 정치적 결정에 영향을 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 시민들은 남자 귀족들에 한정되어 있었지만 말이다. 따라서 아테네의 대표적 정치기구인 민회에 진출하여 거기서 사람들을 설득하는 능력이 중요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수사학을 공부하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다른 사람들을 잘 설득하는 사람이 유능한 사람이며, 따라서 그런 유능함이 중요한 덕(ἀρετή; arete)이 되었다. 과거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 시대에는 사내다움의 조건, 즉 사내의 덕이 ‘용기’(ἀνδρεία; andreia)와 ‘정의’(δίκη, dike)였는데 반해 이제는 잘 설득하는 능력, 즉 유능함이 중요한 아레테가 되었다. 이런 시대적 상황에서 여러 도시들을 돌아다니면서 돈을 받고 그들의 능력을 전수해 주는 지식인 집단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이 바로 소피스트들이었다. 사람들은 그들의 설득력에 대해 경탄하기도 하고 의심을 품기도 했다.

그들의 목표는 젊은이들에게 지혜를 가르치는 것이었다. 그들이 ‘소피스트’로 일컬어진 것도 지혜, 즉 소피아를 가르치고자 한 그들의 목적에서 유래했다. 그런데 그들에게 있어서 지혜는 무엇보다도 정치적 삶에서의 ‘노하우’(know-how)였다. 그들에게 있어서 젊은이의 덕은 정치적 분야에서 ‘노하우’를 가지는 것이었다. 정치적 노하우와 관련하여 당시 소피스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수사학, 즉 말과 글을 통해 자기를 부각시키는 기술이었다. 정치적 야망을 가진 사람은 바로 그런 기술을 절실하게 필요로 했다. 소피스트들과 정치적 야망을 가진 사람들은 서로 이해관계가 일치했다. 그들의 좌우명은 일인자가 되는 것이었으며,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할 줄 아는 것이었으며, 인생을 경영하고 즐길 줄 아는 것이었다. 이것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이 정당화되었다.

소피스트들에 의하면 유능한 연설가는 진리를 들어냄으로써가 아니라 단순히 설득함으로써 자신에게 불리한 일을 유리하게 만들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플라톤은 소피스트들의 이런 태도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도대체 사실이나 진리나 정의가 아니라 단지 권력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진리와 인간의 가치에 관한 통찰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지도자가 아니라 호도자(糊塗者: 그럴듯한 말로 사람들을 미혹하여 길을 잘못 인도하는 사람)라는 것이다.

플라톤(Plato)



플라톤의 초기 저술들은 대부분 소피스트들에 대한 비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사기꾼과 도둑에 관한 비유는 소피스트들을 풍자한 것이다. 만일 유능함이 모든 가치판단의 기준이라면 사기꾼이 진리를 말하는 사람보다 더 훌륭하다. 왜냐하면 진리를 말하는 사람보다 그를 속이는 사람이 더 유능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도둑은 경비원보다 더 유능하다. 그는 경비원의 감시를 뚫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피스트들이 유능함을 최고의 덕이라고 주장한 것은 무엇 때문이었는가?


소피스트들은 어떤 절대적인(시간과 장소에 따라 변하지 않는) 진리도 없다는 상대주의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법적인 규정들, 윤리적 규범들과 종교적 교리들이 모두 상대적임을 입증하고자 했다. 영원히 타당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은 인간에 의해 그렇게 규정되어 있을 뿐이다. 다음과 같은 주장들은 이러한 소피스트들의 상대적인 세계관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표현들이다.

“진리는 없다. 진리가 있다 할지라고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없으며, 알 수 있다 할지라도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 없다.”_고르기아스(Gorgias)

“어떤 것이 나에게 그렇게 보이는 것은 그것이 나에게 그렇게 나타나기 때문이고, 너에게 그렇게 보이는 것은 너에게 그렇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인간을 떠나서는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을 떠나서는 객관적인 사태도 영원한 법도 영원한 신도 없다. 인간이 만물의 척도다.”_프로타고라스(Protagoras)

오늘날 우리 시대를 지배하는 문화는 어떤가? 우리 시대의 주도적인 가치관은 무엇인가? 소피스트 시대와 다른 것이 있는가? 가치의 절대적인 기준이 무엇인가? 양이 질을 지배하는 시대가 아닌가? 경제가 사상을 지배하는 시대가 아닌가? 사상이 경제에 종속된 시대가 아니가? 그런 사상은 더 이상 사상이 아니다. 철학이 존중되지 않는 시대이다. 철학 자신이 그런 방향으로 나가기 때문이 아닌가? 철학이 유용성의 하인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다시 암흑의 시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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