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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Apr 07. 2017

07. 데카르트는 어떻게 형이상학을 설명했을까?

<서양 철학>


                    

데카르트는 수학적 방법론에 기초하여 형이상학의 문제를 해명하고자 했다. 다시 말해, 그는 특수 형이상학의 대상인 신, 세계, 영혼의 문제를 수학적 방법론에 기초하여 해명하고자 했다. 수학적 방법론이란 무엇인가? 데카르트는 어떻게 수학적 방법론에 근거하여 형이상학을 해명했는가?


수학적 방법론이란 먼저 의심의 여지가 없이 확실한 하나의 공리를 확보하고 그 공리로부터 결론을 도출하는 연역적 방법론이다. 데카르트는 형이상학의 대상인 신, 영혼, 세계의 확실성을 설명하기 위해 먼저 수학의 공리와 같은 것을 확보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런 공리를 확보하기 위해 그가 취한 첫 번째 조치가 바로 ‘방법적 회의’였다.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것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의심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후에야 비로소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 ‘방법적 회의’란 모든 것의 존재를 실제로 부정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확실성이 확보될 때까지 어떤 것이 우리가 보는 그대로 실재한다는 소박한 태도, 즉 ‘자연적 태도’를 잠시 괄호 속에 묶어 놓고 판단을 보류한다는 의미이다. ‘방법적 회의’란 표현에서 강조되어야 하는 부분은 ‘회의’가 아니라 ‘방법적’이란 개념이다. ‘방법’을 의미하는 단어인 ‘method’ 또는 ‘Methode’는 어원적으로 볼 때 헬라어 ‘meta’(뒤에, 위에)와 ‘hodos’(길)의 합성어로 ‘길 위에 있음’, ‘도상에 있음’이란 뜻이다. 따라서 방법적 회의는 절대적 확실성을 찾아가는 도상에 있다는 뜻이다.


방법적 회의에 의해 데카르트가 도달한 의심의 여지가 없이 확실한 공리는 ‘생각하는 나’였다. 즉 내가 아무리 모든 것을 의심한다 할지라도 내가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의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의심한다는 것은 생각한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생각한다는 것을 생각한다.’ (cogito cogitare me) 이것이야말로 공리와 같이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제 이렇게 확보된 공리로부터 데카르트는 형이상학의 문제를 해명한다. 먼저 데카르트는 수학의 공리와 같이 확실한 ‘생각하는 나’로부터 신의 존재를 증명하고자 한다. 어떻게 증명하는가?


생각하는 나에게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져 있는 관념들(본유관념들: Eingeborene Ideen)이 있으니 곧 “무한실체”와 “유한실체”에 관한 관념들이 그것이다. 무한실체란 완전한 존재자, 즉 스스로 존재하는 신이다. 유한실체는 물체와 정신인데, 물체는 연장(Ausdehnung)을 속성으로 가지며, 정신은 사유를 속성으로 가진다. 그 밖에도 생각하는 나에게는 수, 시간, 장소, 운동, 형태, 등의 많은 본유관념들이 있다. 생각하는 나는 이런 본유관념들을 통해 외부의 대상들을 지각하게 된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무한하고 전능한 본질의 신에 대한 관념을 가지고 있는데, 이 관념은 결코 감각에 의해 후천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다. 관념은 외부로부터 유래하든가 우리 자신에 의해 형성될 수 있다. 그런데 순수하게 생각하는 나는 아직 외부로부터 들어온 아무런 관념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본유관념으로서의 신에 대한 관념은 나 자신에 의해 형성된 것인가? 그러나 그 관념은 우리 자신에 의해 만들어진 관념은 아니다. 


신에 관한 관념은 완전한 존재자에 관한 관념이기 때문에 유한한 존재자인 우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어떤 것의 원인은 최소한 그 결과와 동일한 실재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신에 관한 관념을 가지게 한 그 원인은 최소한 우리가 신을 생각할 때 가지는 정도의 실재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신에 대한 관념은 단순히 인간의 주관적 상상물이 아니라 실재성을 가진 존재자에 의해 주어진 것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신에 대한 관념에서는 사유와 존재가 일치한다.


또한 신은 완전한 존재자이기 때문에 우리를 속이지 않는다. 따라서 만일 우리가 연장을 가진 어떤 것에 관해 명석하고 판명한 표상들을 가진다면 우리는 그 표상들이 참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외부의 세계도 의심의 여지가 없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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