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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Apr 12. 2017

06. 출산과 다산의 기쁨은 계층별로 다르다.

<경제학 위의 오늘>

네 집 중 하나일 정도로 1인 가족이 증가하고 있지만, 유사 이래 인간은 다인 가족을 이뤄왔고, 지금도 대부분은 그런 조직에서 살아간다. 이 결과는 출산과 양육으로 이어진다. 출산은 경이로운 사건이라 그 자체만으로 많은 사람에게 기쁨을 준다. 


유학 시절 최소비용으로 치른 작은 결혼식 후 얼떨결에 자식을 얻게 됐다. 그 신기한 변화에 매우 놀랐다. 둘만 살았는데 새로운 존재가 갑자기 등장한 것이다. 그 생명이 우리 둘과 세상에서 가장 밀접한 존재라는 사실에 큰 애착을 두게 됐다. 사랑스러운 생명은 그 자체로 우리에게 즐거움이었다.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진 생명에 감사했다. 경이로움은 이처럼 기쁨과 감사로 바뀌었다. 

     

하지만 가난한 독일 유학생에게 출산은 기쁨 반 걱정 반이었다. 부양해야 할 대상이 늘어나 내심 불안했다. 득남의 기쁨, 그러나 정신 바싹 차리자! 아내의 출산소식에 입이 귀에 걸리는 드라마 속 아빠가 되지 못하는 나는 분명 문제 있는 아빠다.

     

좀 야박하지만, 출산의 즐거움을 경제적으로 이해해 보자. 전근대사회에서 출산은 지주와 양반들에게 자기 재산을 자손만대 보존할 기회다. 광활한 토지와 산더미 같은 보화를 물려주자면 자식이 많을수록 좋다. 그러니 출산은 물론 다산은 축복이었다. 이들에게 출산과 다산의 기쁨은 지금도 변함없다. 대체로 부자일수록 자녀 수는 많아진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2015년 소득수준이 높은 4분위 가계와 최저소득 1분위 가계의 분만 비중은 각각 33.8%, 9.4%다. 이만큼은 아니라도 소규모 자영농에도 출산은 기쁜 사건이다. 제대로 된 영농기술이 없던 시대에 출산은 노동력을 제공함으로써 생존의 등불을 꺼트리지 않게 해 준다. 박토에서 한 톨이라도 더 거두어들 이자면 많은 인력이 필요하다. 더욱이 자기 토지이기 때문에 더 열심히 일하면 늘어난 노동력 이상으로 수확이 늘어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고역과 내핍을 수반한다. 산출이 늘어나 분명히 즐겁지만, 비용이 만만찮다. 이리저리 계산해 보면 자영농에 출산과 다산은 그래도 기쁜 일이다.


똑같은 일이 소작농에겐 다른 결과로 나올 수 있다. 고역과 내핍 덕분에 결과물이 늘어나더라도 그것을 모두 자기 몫으로 챙겨간다는 보장이 없다. 자영농과 달리 이들은 생산수단을 사적으로 소유하지 못하고 있다. 또, 소작관계에서 보상은 권력관계로 결정된다. 점유권이 있으니 그 범위가 어느 정도 제한되겠지만, 고역과 내핍의 총체적 결과 중 상당 부분이 지주에게 분배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자영농과 비교해서 소작농에 출산과 다산의 기쁨은 현저히 줄어든다. 감소한 기쁨은 지주와 양반에게 재분배됐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아무런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할 뿐 아니라 계약관계에서 완전히 무권리 상태에 처한 노예나 노비는 어떨까? 이들의 다산이 노예주나 양반에게 큰 기쁨이 되는 건 두말할 나위 없다. 떼어내 줄 필요 없이 노동의 결과물 전체를 수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짜 노동력을 얻었으니 어찌 기쁘지 아니하랴! 나의 노예들이여, 출산과 다산의 축복을 맘껏 누리라! 

     

하지만 낳는 당사자는 다르다. 이 천형을 대대손손 물려주어야 하니 출산은 그 자체로 비극이요 다산은 불행이다. 그들의 출산과 다산은 타인의 기쁨이 된다. 전근대사회의 모든 출산과 다산이 행복하지만은 않았다는 점은 분명하다. 출산과 다산의 기쁨은 계층에 따라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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