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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Apr 17. 2017

10. 무엇을 교육해야 하는가? (마지막 회)

<경제학 위의 오늘>

나는 가르치려 든다! 그거 안 하면 내가 글을 쓸 이유가 없다. 돈도 안 되며, 기껏해야 천여 명 정도만 읽는 글을 쓸 이유는 없다. 한 가지 이유, 그것은 내가 받은 가르침을 가르쳐주고자 함이다. 곧, 교육이 목적이다. 

     

무엇을 가르치고자 하는가? 바로 떠오르는 대상은 지식이다. 지식 인이라면 적어도 지식(knowledge)을 가르쳐야 한다. 그런데 이 당연한 것이 지켜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지식을 정의하긴 쉽지 않지만, 나는 그것을 ‘대상에 대한 체계적 앎’이라고 생각한다. 이 점에서 지식은 기억, 상상, 억측은 물론 ‘정보(information)’와도 구별된다.

     

정보는 매우 단편적이며 단순하다. 그것은 지식으로 발전하기 위한 단초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를 전달하는 과정은 매우 단순하다. ‘전달비용’과 ‘학습비용’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그런 정보는 유용성이 없다. 워낙 단편적이고 단순하며 개별적이어서 그 범위를 벗어나면 가치를 잃어버려, 다른 곳에 적용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 대학이 이런 정보를 가르치고 있다. 주로 현장 경험을 쌓은 실무자들이 제공하는 강의다. 물론, 나는 그런 경험을 무시하지 않는다. 그런 개인적 경험과 정보는 대학생들에게 신선한 자극이 된다. 하지만 이런 강의는 몇 시간 ‘특강’으로 충분하다. 지식인은 정보가 아니라 지식을 전달해야 한다. 앞에서 정의한 것처럼 지식은 ‘대상에 대한 체계적 앎’이다. 

     

지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런 내용의 지식은 대략 과학지식(scientific knowledge) 혹은 학술지식에 해당한다. 과학지식은 수많은 경험, 오랜 사유, 그리고 창조적 상상의 산물이다. 먼저, 수많은 개별적 경험이 쌓여야 하고, 여기에서부터 그럴듯하고 근거 있는 상상, 곧 가설이 동원된다. 가설들은 깊은 사유 활동과 철저한 검정을 통해 하나의 학설로 자리 잡는다. 결과는 일반성을 갖춰 개별 사건에 적용될 수 있다. 문제를 쉽게 해결해준다. 유용성이 매우 높다는 의미다. 

     

그 유용성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교수는 열성적으로 설명해야 하며, 배우는 자들은 예습과 복습을 철저히 해야 한다. 강의시간에도 설명을 놓치면 이해하기가 어려워진다. 지식이 전달되는 과정에서 높은 학습비용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학생들은 보통 이 비용을 기꺼이 지출하지 않는다. 그러니 학교에 다니나 마나 한 것이다. 

     

실로 지식을 학습한 자의 능력은 향상된다. 별도의 경험 없이 그가 진출한 전문분야를 어느 정도 꿰뚫을 수 있다. 그 분야에서 주어지는 과제를 낯설지 않게 무리 없이 수행할 수도 있다. 많이 알고 확실히 알수록 유능하다. 아는 것이 힘이다! 열심히 암기하고 연습하자. 공부 많이 하고 잘하는 사람이 선호된다.


하지만 지식 역시 만능선수가 아니다. 지식은 과거의 산물이다. 나아가, 그것은 세계를 주어진 것으로 가정한다. 새로움에 저항하는 것이 지식이며 변화를 수용하기 어려운 것이 지식이라는 말이다. 많이 암기하고 열심히 연습하는 전문가, 이른바 ‘공부 잘하는’ 사람일수록 그런 태도는 두드러진다.

     

진화경제학에 ‘족쇄효과(lock-in effect)’라는 말이 있다. 과거의 지식과 방식에 구속되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현상을 표현한 말이다. ‘경로의존성(path-dependency)’도 그런 상황을 묘사하는 또 다른 학술 용어다. 과거의 지식에 익숙한 나머지 그 길을 포기하지 못하며, 변화에 부닥쳐 항상 그 경로 안에서만 변화를 시도하는 현상이다. 그 나물에 그 밥인 셈이다. 

     

패러다임이 변하면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과거 패러다임의 지식은 쓸모없어진다. 모두 지식의 한계다. 공부 잘하는 사람들이 맹하고, 창의적 연구에 무능한 이유는 역설적으로 지식의 이런 속성에서 비롯된다. 지식인은 정보를 제공하면 안 된다. 지식을 가르쳐야 한다. 하지만 지식의 유용성은 이처럼 제한적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교육해야 하는가? 나는 그것을 ‘역량(competence)’이라고 부른다. 역량은 기존의 문제는 물론 새로운 문제를 해석하고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다. 곧, 변화를 이해하고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이다. 더 나아가 변화를 주도하는 능력, 기존의 문제를 새로운 각도에서 해석해내는 창의력이다. 이런 능력은 이른바 ‘공부’를 많이, 그리고 열심히 한다고 향상되지 않는다. 즉, 지식의 암기와 반복은 역량을 높이는 데 결정적인 요인이 아니다. 

     

그것은 변화를 읽어낼 수 있는 유연성, 문제를 꿰뚫어보는 통찰력, 창의적 해석능력, 의심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자율적 학습능력이다. 그러한 능력은 지식 그 자체보다 지식에 접근하는 방법(approach), 곧 ‘연구방법’으로부터 나온다. 이를테면, 경제학에서 수요공급곡선, 소비 함수, 비용함수, IS-LM곡선, 라그랑쥬함수 등을 아무리 열심히 공부한들 역량은 향상되지 않는다.

     

나는 경제학 연구에서 그러한 역량이 세계관, 인문학적 질문, 자연과학적 기반과 관련되어 있다고 믿는다. 첫째, 경제체제와 외부환경은 어떤 관계를 갖는가? 둘째, 인간의 본성은 존재하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셋째, 인간의 합리성은 얼마나 완전하며, 인간은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가? 넷째, 인간과 제도는 어떤 관계를 갖는가? 다섯째, 경제현상을 결정하는 요인은 무엇이며 얼마나 많은가? 여섯째, 경제학과 도덕적 판단은 어떤 관계에 있는가? 일곱 번째, 경제학에서 자연과학이 차지하는 지위는 무엇인가?

     

나는 이런 질문들에 숙고하고 답하며,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역량이 높아진다고 믿는다. 따라서 내 경제학 강의의 절반 이상은 이 내용으로 채워진다. 경제학뿐 아니라 모든 강의가 그렇다. 하지만 강의를 듣는 약 20~30%만이 그 의의를 깨닫고 열심히 공부에 전념할 뿐이다. 내가 글을 쓰는 방식도 이러하다. 나는 글에 이 방법을 명확히 대입하지만, 보통 사람들에게 인기가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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