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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Apr 19. 2017

04. 아는 만큼 믿을 수 있다.

<돈을 남겨둔 채 떠나지 말라>

믿으려면 일단 알아야 한다. 서로에 대해 많이 알수록 신뢰 수준을 높일 수 있다. 꾸준히 만나고 거래하면서 믿을 만한 상대인지 확인하고, 나에 대한 상대방의 신뢰도 쌓아야 한다. 서로 정보를 주고받는 것은 필수다. 이렇게 쌓인 신뢰는 곧 평판으로 이어진다. 기업세계에서 평판의 중요성은 새삼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부정적인 평판이 만들어지면 협상을 포함해 여러 가지 기업활동에 제약이 따르게 된다. 반대로 양쪽 모두 평판이 좋다면 윈윈 협상을 할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진다.


10여 년 전에 미국 시애틀에서 1년 동안 연구년을 보낸 적이 있다. 미국생활에는 자동차가 필수품이어서 중고차를 사기로 하고 지인에게 한국인 딜러를 소개받았다. 소개를 받기는 했으나 모르는 딜러에게 처음부터 믿음이 생긴 것은 아니다. 비가 자주 오는 시애틀 날씨에 어울리는 빨간색의 날렵한 세단이 마음에 들었으나 과연 그가 제시하는 가격이 적정한 것인지, 얼마나 할인을 요구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을 그가 내게 보여주었다.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모든 중고차에 대한 상세정보가 고스란히 담긴 장부였다. 내가 관심을 보인 차에 관한 정보는 물론, 자신이 구매한 가격까지 보여주면서 판매가를 제시하니 그를 믿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덕분에 마음에 드는 차를 구해 1년 동안 잘 탔으며, 그와는 가끔 골프도 치는 사이가 되었다. 또한 시애틀을 떠날 때에는 그에게 다시 그 차를 만족스러운 가격에 팔았다. 처음 만난 자리였지만 그가 충분한 정보를 제공한 덕분에 그의 영업방식을 이해했고, 신뢰하게 되었다.



한국협상학회는 한국콜마의 윤동한 회장에게 2016년 12월 대한민국협상대상을 수여했다. 칠순에 접어든 윤 회장은 평생 신뢰를 바탕으로 원칙에 입각해 협상에 임해온 공로를 인정받아 이 상을 받게 되었다. 그는 북미지역 최대의 화장품 아웃소싱업체인 웜저(Wormser)와 공동으로 협상에 나서 2016년 9월 미국의 화장품 ODM 기업인 PTP를 인수하는 데 성공했다. 

첫 접촉 후 인수거래부터 거래완료까지 1년여 동안 한국콜마는 인수대상인 PTP는 물론 파트너인 웜저와도 치열한 협상을 벌였다. 협상이 한동안 교착상태에 빠지자 윤 회장은 웜저의 오너 형제를 한국에 초청하는 승부수를 던졌는데, 이것이 주효했다. 한국에 온 이들이 한국콜마의 R&D 및 생산능력을 눈으로 확인한 뒤 한국콜마야말로 반드시 필요한 파트너임을 마음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깊어진 신뢰를 바탕으로 윤 회장은 웜저 사의 거래선과 네트워크에 한국콜마의 R&D 및 생산능력을 결합하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설득해 투자지분율, 인수가격, 인수 후 이사회 운영방식 등에 대한 원만한 합의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상대방이 똑같이 정보를 주지 않는다면 나만 손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지 모르겠다. 맞는 말이다.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정보를 주고받아야 하는데, 얼마만큼 주고받을 것인가는 다시 신뢰 수준에 따라 정해져야 한다는 딜레마가 있다. 따라서 어떤 정보를 얼마만큼 제공할지 주의 깊게 판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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