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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Apr 20. 2017

05. 대우자동차는 왜 협상 내내 끌려다녔는가?

<돈을 남겨둔 채 떠나지 말라>

IMF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한국 기업에 대한 해외 기업들의 M&A가 본격화되었다. 대우자동차도 그중 하나로, 1999년 경영악화로 워크아웃을 선언하면서 글로벌 자동차기업들의 M&A 대상이 되었고, 우선협상대상자로 지정된 포드를 상대로 매각협상이 진행되었다.


그러던 2000년 9월 11일, 대우자동차 구조조정협의회는 포드 협상팀의 태도가 갑자기 달라진 것을 눈치챘다. 바로 전날까지 포드 협상팀은 대우자동차를 인수하면 어떤 시너지 효과가 있을지 진지하게 토론하고 인수 후 어떤 차종을 공장에 투입할 것인지까지 논의했다. 그러나 9월 11일부터 포드 측은 회의를 연기하는 것은 물론 “상황이 어려워졌으니 기다려달라”고까지 했다. 그때까지 대우자동차 측은 협상이 깨질 것이라고는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이미 폴란드 공장 합작계약서를 포함해 자동차업계에서는 좀처럼 공개하지 않는 모든 기업정보를 포드에 넘겨준 터였다. 그러나 포드는 2000년 9월 15일 협상결렬을 공식 선언하고 다음 날 협상팀을 한국에서 철수시켰다.

대우 구조조정협의회는 대우자동차의 국제경쟁입찰을 준비할 때부터 허점을 노출시켰다. 가장 큰 허점은 구속력 없는 제안을 하게 했다는 것이다. 2000년 6월 이루어진 국제입찰에서 70억 달러를 제시한 포드사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었다. 당시 적정 가격이 3조~4조 원 수준이었던 대우자동차를 7조 7,000억 원에 사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대우 구조조정협의회는 이에 대해 아무런 검증작업도 하지 않고 덜컥 포드를 우선협상대상자로 결정했다. 심지어 예비협상자도 정하지 않았으니, 대우자동차 스스로 포드 외의 전략적 대안을 지워버린 셈이었다. 그 결과 포드가 인수를 포기하자 아무런 대안도 없이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했다.

협상기술 면에서도 문제가 없지 않았다. 협상과정에서 중요한 사안은 서류로 만들어 남겨두는 것이 기본인데, 이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포드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후 대우 구조조정협의회와 포드 간에는 단 한 장의 합의서도 없었다. 즉 협상 내내 순전히 ‘말’만 오갔다는 것이다. 국제 비즈니스 협상에서는 논쟁이 벌어질 때 오로지 계약서 같은 서류에 입각해서 논리적이고 법률적인 대응을 하는 게 관례인데 이런 기본적인 절차조차 무시한 것이다. 그 결과 포드가 일방적으로 인수의사를 철회했을 때에도 아무런 손해배상 청구도 할 수 없었다.

이후 2000년 10월 GM-피아트가 인수의향서를 제출하면서 재개된 협상에서도 대안 부재의 문제는 여전히 계속되었다. 정부 고위관리와 채권단은 “대우는 꼭 GM에 매각되어야 한다”, “연내까지 대우자동차를 매각하겠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함으로써 자신이 대안이 없으며 시간에 쫓기고 있음을 상대방에게 고스란히 알려주었다. GM은 100년 역사 동안 M&A를 통해 성장한 기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인수합병 협상에 관한 경험과 역량이 풍부했다. 상황을 충분히 인지한 GM은 시간을 지연시키며 대우의 애를 태웠다. 또한 대우자동차의 우발채무 등을 이유로 인수가격을 계속 낮춰갔다. 안 그래도 그들이 제시한 12억 달러는 국제입찰 가격의 3분의 1도 되지 않는 수준이었는데, 협상과정에서 가격은 더 내려가 결국 2002년 4월 체결된 본계약에서 4억 달러의 현금출자로 신설법인을 설립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대우 측의 가장 큰 문제는 예비협상자를 정하지 않은 것이었다. 협상이 결렬될 경우에 대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간이 지나면서 매물인 대우자동차의 가치는 계속해서 하락했다. 더욱이 자신의 중요한 정보를 모두 넘겨준 상태에서 아무런 피해보상도 받을 수 없었으므로 협상결렬 시 입을 타격은 매우 컸다. 반면 포드로서는 협상이 결렬되면 한국 시장에 진출할 교두보 확보가 늦어지겠지만 포드의 전체 사업에 미치는 여파는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다. 또한 대우자동차에 대해 많은 정보를 얻은 상태에서 협상결렬에 대한 책임도 없었으니 의사결정의 부담도 별로 없었을 것이다. 이어 진행한 GM과의 협상에서도 대우는 제대로 된 대안을 마련하지 못했다. 시작부터 대우자동차의 협상력은 취약한 상태였고 협상 내내 일방적으로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으며, 결과도 좋지 않았다.

대우자동차 매각협상 사례는 대안이 얼마나 존재하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협상력과 협상을 철저하게 준비하고 효과적으로 진행시킬 수 있는 협상역량의 중요성을 동시에 보여준다. 협상당사자의 대안은 기본적으로 회사의 제반 역량에서 나오지만, 고정된 것이 아니라 협상자가 준비하기에 따라 달라지며 협상하는 중에도 노력에 의해 개선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대우자동차 매각협상은 아쉬움이 크다. 대안의 부재라는 문제점 외에도 비전문가로 이루어진 협상단 구성과 팀워크 문제, 정부·채권단·노동조합·사회단체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 사이의 갈등이 그대로 표출되었고, 한국 언론의 무절제한 정보공개 등으로 협상은 더욱 어렵게 진행되었다. 당시 협상대표를 맡았던 산업은행 총재가 “GM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닌 대우자동차 매각 같은 비굴한 협상이 두 번 다시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을 정도로 실패한 협상의 대표적 사례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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