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렉서블 씽킹>
먼 옛날 원시인은 척박한 환경 탓에 부족을 이루지 않고 홀로 생존하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따라서 굶지 않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무리가 꼭 필요했다.
아무리 최고의 사냥꾼이라고 해도 과일을 채집하는 장소라든지 약초의 효능에 대해서는 무지할 수 있었다. 한편 어떤 이들은 동물을 사냥할 정도로 민첩하거나 힘이 세지 않았지만 과일을 딸 장소를 잘 알고 있었으며 맛있는 식용식물에 관한 지식이 풍부했다. 이렇게 집단은 생존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식생활을 지탱해왔다. 그 외에도 집단은 외부 침입자로부터 구성원을 보호하는 기능을 했다. 집단에 속하지 않고서 혼자만으로는 배고픈 사자 무리로부터 무사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집단에서 제외되거나 집단과 충돌하는 상황을 피하려고 했다. 이 역시 생존과 결탁된 중요 사안이었기 때문이다.
집단의 구성원은 각자의 생각과 바람을 접어두고 집단의 우두머리가 정한 규칙을 따름으로써 공동체가 제공하는 보호와 안락함을 누릴 수 있었다. 끝까지 자기 생각을 관철하려 고집하는 사람은 집단의 규칙을 위반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이는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이렇게 우리는 집단의 일원이 되기 위해 ‘규범’을 따라야 한다는 오래된 본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아를 찾고 실현하고 싶은 주체적인 욕구가 존재한다. 우리가 동경하고 행복을 느끼는 일을 하는 것, 그것이 아무리 ‘일반적인’ 범주에서 벗어나는 행동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그렇지만 대체적으로 자신이 세운 목표를 실천하는 대신 집단에 순응하는 걸 택한다. 그럴 때마다 내면에서는 다음과 같은 속삭임이 들리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을 제대로 만족시켜야 해!”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겠어?”
“그런 건 그리 중요한 게 아니야!”
현대 사회는 혼자서도 생존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내면 깊은 곳에는 여전히 이러한 행동 양식이 뿌리내리고 있다. 집단에 순응하라는 석기시대 생존전략은 자신이 바라는 희망이나 목표를 부정하고 스스로를 가둬버리는 상황을 유발하고, 그로 인해 마음 깊숙한 곳에 내적 상심이 생기는 원인이 됐다. 이런 ‘집단본능’은 스스로를 부정하고, 전혀 내 것이 아닌 목표를 뒤쫓는 상황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