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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May 04. 2017

62. 나는 무엇으로부터 빠져나오지 못할까?  ♬

<지혜의 심리학>


                                                                                                                   

‘생각의 원리를 깨우쳐 행복에 이르는 길’을 다룬 책, <지혜의 심리학>을 여러분과 만나는 오수진입니다. 오늘은 인간이 왜 변화를 싫어하는지 생각해봅니다.

인지 구두쇠인 인간은 다른 곳으로 움직이는 것을 절대 원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변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변화는 기존의 삶에서 벗어남을 의미한다. 그 벗어남은 결국 익숙하고 확실하고 예측 가능한 무언가를 포기하는 것, 불안을 뜻한다. 불안은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면서 치러야 하는 대가인 셈이다. 그래서 우리 대부분은 어느 상황과 시점에서든 기존의 것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다. 이를 잘 보여주는 예가 하나 있다.

천장에 실이 두 개 매달려 있다. 실험실에 들어간 학생은 두 개의 실을 하나로 연결해야 한다. 그런데 실험 진이 사전에 학생들의 팔 길이를 대략 측정해 놓았기 때문에 한쪽 실을 잡고 다른 쪽 실을 향해 팔을 뻗어도 손이 닿지 않는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학생들에게 과제를 설명할 때 방 안에 있는 어떤 도구를 사용해도 좋다고 말해준다. 물론 사용하지 않아도 그만이다. 실험실 한쪽 구석에는 가위 하나가 놓여 있다. 학생들이 사용할만한 도구는 가위밖에 없다.

이제 재미있는 상황이 벌어진다. 대다수 학생은 가위를 종이 자를 때처럼 쥔다. 그리고 한쪽 손으로 실을 잡고, 다른 손으로는 가위를 뻗어 반대편 실을 잡으려고 열심히 애쓴다. 그런데 이는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킨다. 학생 대부분이 잡으려고 하는 실 끝이 가위에 싹둑 잘려나간다. 이제 실은 더 짧아졌다. 

이제 학생 대부분은 다시 가위를 거꾸로 잡는다. 위험하게도 날을 자신의 손으로 잡고 그 실을 잡아보려는 것이다. 이 방법도 실을 잡는 데 도움될 리 없다. 이런 광경은 학생마다 차이가 있지만, 평균 10분 이상 지속한다. 일부 학생은 “괜히 가위로 잡아보려고 했네.” 하고 투덜거리며 가위를 내팽개치고는 더욱 우스꽝스러운 시도를 시작한다.

별의별 학생들이 다 있다. 실을 빨아들이겠다면서 입을 사용하는 학생, 정전기를 이용한다며 손바닥으로 자신의 바지를 열심히 문지르는 학생, 심지어 기도와 비슷한 행위로 정신력을 이용하겠다는 학생도 나온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실험실 안에 가위가 아닌 다른 물체를 슬쩍 놓아두면 결과가 매우 극적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이번에는 가위가 아닌 망치를 준비해 실험한다. 그러면 학생 상당수가 망치를 어떻게 사용할까 고민하다가 이내 ‘아! 이러면 되겠구나!’라는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는 망치를 한쪽 실 끝에 묶는다. 그다음엔 실에 묶인 망치를 밀어 시계추처럼 앞뒤로 왔다 갔다 하게 한다. 학생들은 망치를 반대 방향으로 민 뒤에 다른 실을 잡고 기다리다 망치에 묶인 실이 가까이 왔을 때 낚아채서 두 실을 연결한다. 임무를 완료하는 시간은 가위가 있는 방에 들어간 학생 그룹보다 훨씬 짧다.

여러분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아니, 가위도 얼마든지 실에 묶을 수 있잖아!” 맞다. 가위는 손잡이가 고리 모양이기 때문에 망치보다 더 쉽게 실에 묶을 수 있다. 하지만 가위를 사용한 학생 대부분은 이런 생각을 좀처럼 해내지 못한다. 도대체 왜 그럴까? 그것은 어떤 사물이 상식적으로 지니는 역할이나 기능을 생각해보면 된다. 일상생활에서 실과 가위는 주로 가위로 실을 ‘자르는’ 관계이다. 따라서 가위의 기능을 자르는 것으로 한정해버리기 때문에 가위를 ‘묶는’ 용도로 활용할 생각 자체를 못한다. 

하지만 망치와 실은 다르다. 역할과 기능에서 별로 관련성이 없다. 그래서 망치의 기능인 ‘때린다’거나 ‘박는다’는 행위는 이 상황에서 굳이 생각할 필요가 없다. 망치에 실을 묶는다는 발상이 가위처럼 어렵지 않다. 그래서 생각의 발목을 붙잡는 고착으로부터 쉽게 빠져나올 수 있다. 나는 지금 어떤 고착으로부터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가?




북 큐레이터 | 오수진

성균관대학교 영문학과(중문학 복수전공)를 졸업한 후, 현재 KBS에서 기상 캐스터로 근무하고 있다. 더굿북의 북 큐레이션을 담당하고 있으며, 시각장애인을 위한 독서봉사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환경부에서 홍보 대사로도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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