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더굿북 May 04. 2017

01. 공중보급을 통한 여행의 시작

<알고리즘 행성 여행자들을 위한 안내서>

버락 오바마가 노벨 평화상을 받기 이전, 대통령 후보였을 때의 일이다. 독일연방정부는 그가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연설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8년 6월 24일 20만 명이 넘는 베를린 시민이 6월 17일 거리(Strasse des 17. Juni)로 몰려나왔다. 사람들은 베를린 전승기념탑 아래 놓인 연단을 향해 서쪽을 바라보았다. 무대는 서쪽으로 약간 빗겨 있어서 따뜻하게 빛나는 석양이 오바마의 얼굴 왼쪽을 비추고 있었다. 할리우드도 이보다 더 멋진 장면을 연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오바마의 연설도 빛을 발했다. 오바마는 대통령 후보로서 유일한 해외 연설의 기회에 의미를 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베를린 공중보급 작전 60주년이 되던 시점에 베를린 전승기념탑에서 연설하기로 했다. 이 연설에서 오바마는 베를린 공중보급 작전의 의미를 다시 한 번 강조했다. 1948년 여름, (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에 의해 봉쇄된) 서베를린 하늘에 연합군의 보급품 수송기가 나타나 시민들에게 생필품을 수송했던 일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오바마는 이런 생각을 되새기며 이제 새로운 다리를 놓아야 할 때라고 연설했다. 대서양을 횡단하는 다리, 전체 행성을 아우르는 다리를 말이다. 훤히 트인 길거리에 모인 베를린 시민들은 열렬한 환호성을 보내기보다는 조금 차분한 태도로 오바마의 의견에 동조했다.

그런데 오바마의 연설을 듣기 위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 이유는 무엇일까? 베를린에서는 이렇듯 완벽한 여름밤을 정치인의 연설을 들으며 보내는 경우가 극히 드문 데 말이다. 노벨상 선정위원회의 말을 빌리면, 오바마는 “사람들에게 더 나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선사”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희망으로 가득한 대통령 후보 때문에 거리로 나온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대다수는 온전한 행성에 대한 희망을 듣고자 거리로 나왔다. 오바마의 연설 중 일부를 소개한다.


이제는 세상을 가로지르는 새로운 다리들을 놓을 때입니다. (중략) 이제는 끊임없는 협력과 탄탄한 제도들, 고통 분담, 그리고 진보에 대한 전 세계적 약속으로 21세기의 도전들에 맞서기 위해 우리 모두 함께할 때입니다. 공중보급기들이 우리 머리 위 하늘에 나타나도록 이끈 것, 그리고 우리가 오늘 서 있는 이곳에 사람들이 모이게 한 것은 바로 그와 같은 정신입니다.

이런 생각은 한순간 천진하기 그지없는 이상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책임으로 다가왔다. 어쩌면 그런 다리를 가진 행성, 그런 협력이 이루어지는 행성, 그런 제도를 갖추고 있고 공동의 목표를 위한 공동의 노력이 이루어지는 행성은 결코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공동의 목표를 갖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행성이 조그만 파편으로라도 실재할 수 있다면, 그 행성은 다름 아닌 ‘알고리즘 행성’일 것이다.

베를린 공중보급 작전은 정치적 용단과 전략적 어림셈법이라는, 그러니까 알고리즘에는 정말로 어울리지 않는 두 가지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불과 몇 주 지나지 않아 이 같은 용단은 문제에 직면했다. 200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총 200만 톤에 이르는 구호품(그 대부분은 석탄이었다)을 400일 이상에 걸쳐 실어 나르는 것은 그야말로 힘든 과제였다. 의욕은 불타올랐지만, 마땅한 수단이 부족했다. 게다가 단 하루라도 작전이 중단되어서는 안 됐다. 수리해야 하는 보급기는 수백 대에 달했고, 조종사가 부족해 수많은 신참 조종사가 비행에 나서야 했으며, 엄청난 양의 구호품을 일일이 파악해야 했고, 이 구호품들을 공항까지 옮겨야 했다.


기존 자원 사용 계획에 따라 이런 과제들을 수행하려면, 최대한 효율을 기해야만 겨우 시간 내 처리할 수 있었다. 단순히 보급기와 인력을 더 투입하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았다. 문제는 어떻게 해야 더 효과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느냐 하는 것이었다. 연합군은 자신들의 기획 능력이 한계에 부딪혔음을 깨달았다. 족히 20년은 지난 후에야 사람들은 비로소 이 작전이 인간의 사고에 있어서 가장 커다란 한계 중 하나와 관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당시 수학자 조지 댄치그(George Dantzig)는 미 공군을 위해 일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댄치그는 이른바 심플렉스 알고리즘(simplex algorithm)이라는 프로세스를 개발했다(내 동료들은 이를 간단하게 그냥 심플렉스라고 부른다). 1949년 학술지 <이코노메트리카(Econometrica)>에 실린 기사에서 댄치그는 공중보급 작전 같은 계획 문제들이 심플렉스 알고리즘을 통해 매우 간단하게 해결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오늘날 수학이나 정보학을 전공하는 대학생들에게 심플렉스 알고리즘은 기본 교재나 다름없다. 경제학이나 공학 전공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심플렉스 알고리즘은 이른바 선형 프로그램의 해를 찾을 수 있도록 해준다. 뿐만 아니라 이보다 좀 더 어려운, 이른바 정수 선형 프로그램을 해결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기초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에서 ‘프로그램’이라는 표현이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프로그램은 컴퓨터 프로그램이 아니라, 방정식과 유사한 수학문제 유형을 뜻한다. 선형 프로그램과 정수 선형 프로그램은 그 쓰임새가 매우 다양하다. 심플렉스 알고리즘과 그 파생 요소들을 이용해 우리는 물류 네트워크를 조율하고, 용접 로봇의 동선을 최소화하고, 항공기나 선박의 운항 노선을 개선하고, 전력망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부품을 최적화하고, 트렁크를 정리하고, 유전체 서열분석을 가속화하고, 차익거래를 할 수 있다. 심플렉스 알고리즘의 활용처를 일일이 열거하면 책 한 권을 채우고도 남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조차 오늘날 알고리즘으로 계획되고, 설계되고, 결정되고, 조정되는 것들의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01. 리더의 비전이 가장 중요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