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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May 04. 2017

06. 불문마와 이어령 100년의 서재

<서진영의 KBS 시사고전 2>

‘이어령 100년의 서재’가 열렸습니다. 초대 문화부 장관 이어령 교수를 모르는 분은 많지 않으실 겁니다. 하지만 이어령 교수의 서재에 가보신 분도 많지 않으실 겁니다. 과연 한국 최고의 석학, 호기심과 창조 정신으로 학문과 실용의 영역을 넘나들었던 한국의 대표 지성의 서재에서는 어떤 이야기가 들려올까요? 

     
KBS 1TV에서 2015년 8월 22일 오후 8시부터 10회 연속 방영된 ‘이어령 100년의 서재’, 그 1편 ‘누나의 결혼식’은 우리 누이들의 아픈 이야기, 위안부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처절했던 일제강점기, 일본 군대가 정한 한 사람의 몸값은 2전 5리였습니다. 이 금액은 당시 엽서 한 장 값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일본군의 말은 2만 배가 더 비싼 500엔이었습니다. 말 한 마리 값에 2만 명의 징용 인력과 위안부가 끌려가야만 했던 시절, 이를 보면 〈논어〉의 불문마(不問馬)가 떠오릅니다. 

불문마(不, 아니 불), 문(問, 물을 문), 마(馬, 말 마)   
     
‘말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는 이 말은 〈논어(論語)〉 ‘향당편(鄕黨篇)’에 나오는 것으로, ‘구분이어늘 자퇴조왈 상인호아하시고 불문마하시다(廐焚이어늘 子退朝曰 傷人乎아 하시고 不問馬하시다)’가 전문입니다. 
     
공자(孔子)가 조정에서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마구간에 불이 났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공자는 사람이 다쳤는지만 물어보고 말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묻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소중한 것이라도 사람보다는 못함을 아시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침략전쟁에 눈이 먼 당시 일본에 사람의 휴머니즘과 인권은 머나먼 이야기일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일본은 어떤가요? 
     
이어령 교수는 이젠 나이가 들어 슬픈 과거를 기억조차 못 하는 누님을 대신해 위안부 문제가 얼마나 반인륜적인 국가 주도의 범죄였는지를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역사에 대한 잘못을 털지 못하면 그 짐은 고스란히 일본의 다음 세대에게 넘어가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소중한 것도 사람보다는 중요하지 않다는 불문마(不問馬)와 그 반대의 관점에서 엽서 한 장 값에 징용 가고 위안부로 끌려가야 했던 사람들의 가슴 아픈 역사, 왜 이 이야기로 ‘이어령 100년의 서재’를 시작한 것일까요? 
     
대한민국 100년의 통찰은 “어둠을 아는 자만이 아침의 아름다움을 안다”는 것입니다. 광복 70년, ‘우리는 어디까지 왔는지’를 생각하며 밝은 미래를 향해 뛰어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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