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영의 KBS 시사고전 2>
미국 IBM에서 만든 슈퍼컴퓨터 왓슨(Watson)은 전문적인 질의·응답 시스템 (Question Answering System)이라고 합니다. 즉, 사람이 실제로 대화하는 것처럼 인간의 자연 언어를 이해하고, 사람이 질문하면 스스로 대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지요.
이 왓슨이 세상에 널리 알려진 것은 미국의 유명한 텔레비전 퀴즈 쇼인 〈제퍼디 (Jeopardy)〉에 출연하면서부터입니다. 2011년 2월 왓슨은 제퍼디에서 그간 74연승으로 가장 많이 우승을 차지했던 챔피언 켄 제닝스, 그리고 325만5102달러로 가장 많은 상금을 획득했던 챔피언 브래드 러터와 사흘 동안 퀴즈 대결을 펼친 끝에 두 명의 챔피언을 누르고 우승합니다. 드디어 컴퓨터가 인간을 이긴 것입니다.
퀴즈 풀기에서 완승한 슈퍼컴퓨터인 왓슨이, 또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면서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법을 제안하는 의료 영역에 진출했습니다. 예를 들어 환자를 제대로 치료하기 위해서는 환자의 유전자 정보를 제대로 알아야 하는데, 일반적으로 의사들이 수 주일에 걸려 진행하는 DNA, 유전정보와 의학 문헌 검토를 왓슨은 단 몇 분 만에 마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를 보며 이목지관(耳目之官)이 떠오릅니다.
이(耳, 귀 이), 눈(目, 눈 목), 지(之, 어조사 지), 관(官, 벼슬 관)
〈서경(書經)〉 ‘경명편(冏命篇)’에 나오는 이 말은, 귀와 눈의 듣고 보는 작용을 말하며, 감찰(監察)을 맡은 벼슬을 지칭하기도 합니다. 임금의 이목(耳目)이 되어서 국가의 치안(治安)을 보호(保護)하던 관리, 곧 어사대부(御史臺夫)를 일컫는 말로 쓰이지요. 길목을 잘 지키면 병사 한 명이 천 명의 적을 떨게 할 수 있다고 하듯이, 명석한 귀와 눈을 가진 이목지관 한 명만 있어도 능히 천 명의 범인을 잡을 수 있습니다. 환자 상태와 의료 자료를 살피는 이목지관의 역할을 IBM의 왓슨이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의학에 왓슨을 활용하면서 어떤 성과가 있었을까요? 2013년 미국 종양학회(ASCO)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논문을 보면, 폐암 환자에게 정확한 치료 방침을 내놓는 능력이 40%에서 77%까지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여러 단계의 반 복적인 학습을 거친 후 왓슨의 정확도는 무려 90% 가까이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맹자〉 ‘고자 상(上)’ 편에서는 ‘이목지관 불사(耳目之官 不思)’라 하여 우리의 귀와 눈이라는 기관은 생각이 없다며, 마음과 생각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이것이 바로 슈퍼컴퓨터보다 의사가 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고, 슈퍼컴퓨터를 잘 활용할 수 있는 의사를 양성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겠지요.
인간과 컴퓨터 간에는 경쟁이 아니라, 활용이 중요합니다. 컴퓨터를 활용하는 능력에 더욱 큰 관심을 가져보시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