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사랑의 추억은 있다. 그 추억은 햇살처럼 마냥 반짝거리는 것일 수도 있고, 입에 담지도 못할 만큼 눈물겨운 것일 수도 있다.”
여러분이 간직한 사랑은 어떻게 기억되었나요? 한재원의 <사랑에 빠진 순간>은 색칠되지 않은 그대로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운명적인 만남과 같은 것이 배제된 진짜 나와 내 친구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아마도 독자들에게 공감을 얻는 이유일 것입니다. <삼삼한 책수다>는 봄날 학원에서 마주하게 되는 <사랑에 빠진 순간>을 여러분에게 들려드립니다.
추가 합격을 기다렸지만 결국 떨어졌다. 그렇게 나의 발걸음은 설레는 봄날의 캠퍼스가 아닌 재수학원으로 향했다. 입춘이 지나 날이 풀렸다지만 내게는 무척이나 시린 2월이었다.
학원에 간 첫날 자기소개를 했다. 그때 널 봤다. 내 자기소개가 뭐라고 너는 큰 눈망울을 반짝이고 있었다. 내게 질문도 했다. 널 보느라, 네 목소리를 듣느라 무슨 대답을 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때의 떨림은 아직도 선명하다. 귓가를 울리던 내 심장박동도. 친구들 앞에서 하는 자기소개였는데, 마치 너와 나 단둘이서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것처럼 그저 멍했다. 재수학원을 오길 잘했다는 생각도 잠깐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삭막한 학원에서 나 혼자 봄을 맞았다. 친구들에 비해 늦게 들어온 나는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안돼! 공부해야지’, ‘설레지 말자’, ‘정신 차려!’ 매일 다짐했지만, 나의 다짐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열심히 필기하는 옆모습, 선생님께 질문하는 목소리, 책을 가득 들고 나를 스칠 때 나는 향기. 나도 모르게 너를 좇았다.
너는 내게 언어영역 지문보다, 외국어 영역 듣기 평가보다, 수리영역 주관식보다 흥미롭고 어려웠으며 복잡했다. 머리를 맞대고 어려운 문제를 두고 씨름할 때, 모의고사 성적표를 두고 격려할 때, 자습시간에 초콜릿을 나눠 먹을 때마다 내 머릿속에서는 분홍빛 비눗방울이 터졌다.
하얗고 작은 얼굴, 꿰뚫어보는 것만 같은 눈동자, 궁금한 것은 참지 못하는 네 입술. 마주 앉아 네 얼굴을 가만히 뜯어보고 있으면, ‘이렇게 예쁜 눈코입이 이 작은 얼굴에 어떻게 다 들어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렇게 네 얼굴을 보고 있는 게 마냥 좋았다. 그렇게 내게도 봄이 왔다. 너라는 봄이.
어쩌면 이렇게 싱겁게 왔다가 떠날지도 모르는 사랑, 그래도 봄과 함께 모두에게 사랑이 찾아오길 희망하는 <삼삼한 책수다> 오수진이었습니다.
북 큐레이터 ㅣ 오수진
성균관대학교 영문학과(중문학 복수전공)를 졸업한 후, 현재 KBS에서 기상 캐스터로 근무하고 있다. 더굿북의 북 큐레이션을 담당하고 있으며, 시각장애인을 위한 독서봉사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환경부에서 홍보 대사로도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