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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May 17. 2017

10.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이해한다는 뜻이다.

<알고리즘 행성 여행자들을 위한 안내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정말로 잘했던 것에 대해서는 이미 충분히 알려져 더 이상 설명할 게 많지 않다. 불멸의 작품들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의 대형 작품들 가운데 장소를 옮겨 전시할 수 있는 것은 20여 개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이 행성에서는 20개 이상의 다 빈치의 작품전이 서로 다른 곳에서 동시에 열리고 있다. 그 이유는, 다 빈치가 그림 말고 다른 일도 능숙하게 해냈기 때문이다. 그는 자동차를 설계했고, 드론의 원조격인 비행체를 구상해냈으며, 프레스코 벽화를 위한 새로운 니스를 발명해냈다. 물론 그것 때문에 프레스코 벽화가 별로 남아 있지 않지만 말이다. 그의 업적에 대해 또 하나 덧붙여 설명하고 싶은 것은, 그가 바로 ‘알고리즘도’ 찾아냈다는 사실이다(솔직히 말해, 알 콰리즈미와 다른 사람들이 다 빈치보다 한 걸음 더 빨랐다. 또한 다 빈치의 전쟁 기계들 중 대다수는 고대 문헌에 이미 언급된 바 있다.)

미술 작품을 제외한 다 빈치의 작품들은 필사본, 이른바 ‘코덱스(Codex)’에서 발견됐다. 코덱스는 낱장을 책처럼 묶어놓은 것인데, 각 낱장들은 마치 엑스레이 사진처럼 그림을 그리는 손으로 생각을 하고 종이 부족으로 고통받았음이 분명한 우리 인간의 사고를 비춰준다.

다 빈치에게는 자연 탐구와 예술이 똑같았다. 그는 토스카나의 언덕이 멀리 떨어져서 볼수록 더 푸르게 보인다는 사실을 관찰해냈고, 그런 관찰을 토대로 공기 중에 푸른 빛을 내는 성분이 있는 게 틀림없다는 결론을 도출해냈다. 그에게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이해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필사본과 코덱스를 샅샅이 살펴보면, 이 세계를 바라보는 그만의 매력적인 방식을 알 수 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무언가 정적인 것을 그대로 모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이 생성된 바로 그 원리를 이해하고 싶어 했다. 그 원리를 이해하면, 그림도 가장 잘 그릴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믿었다.

파리 필사본 M에는 다 빈치의 나무 그리는 법에 대한 조언이 실려있는데, 이 조언은 하나의 나무에 대한 것이 아니라 나무를 그리는 일반적인 ‘문제’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초등학교에서 배운 나무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나무 그림을 그릴 때 나무가 자라는 그대로, 즉 아래에서 위로 그려 나간다. 다 빈치는 나무가 어떻게 가지를 뻗는지 좀 더 정확하게 관찰했다. 하나의 가지가 굵기가 서로 다른 두 개의 가지로 뻗어 나가면, 새로 뻗은 가지들 중 더 굵은 가지는 더 얇은 가지에 비해 본래 가지가 자라는 방향과 각도 오차가 덜하다. 즉, 그 가지의 각도 오차는 가지의 굵기에 반비례한다. 대충 이런 식이다.

다 빈치 같은 방식으로 관찰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하지만 이런 사고방식은 새로운 시각에 대해 새로운 그림을 만들어내기에 충분하다. 뭔가를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 다 빈치는 거기에 어떤 규칙이 있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코덱스에는 물의 흐름에 관한 연구 내용이 많이 실려 있다(다 빈치에게는 놀라울 만큼 어색한 경우가 많이 보였던 것 같다). 다빈치가 물의 흐름에 대한 알고리즘을 어떻게 찾았는지 형식적으로 바라보는 탓에 간과하기 쉬운데, 그가 추구한 원칙은 ‘현상을 이해하려면 모든 것을 가능한 한 단순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언리얼4(Unreal 4)라는 유명한 그래픽 엔진으로 파리의 아파트 실내를 가상으로 그려낸 것을 담은 영상이 있다. 얼핏 보면 이 영상은 디자이너 가구 홍보 사진과 구분되지 않을 만큼 사실적이다. 미니멀리즘적인 디자인을 선호하는 우리 시대의 분위기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 영상은 가상의 아파트를 그려낸 알고리즘 때문에 화제가 됐다. 이 영상에서 빛과 텍스처, 방 안의 식물 등은 사람이 그린 것이 아니다. 사람은 직접 그리는 대신에 현상을 그려낼 수 있는 원리들, 즉 그 현상이 발생한 원리를 글로 입력하기만 했다. 그런데 이 알고리즘 영상에선 단 한 가지가 매우 부자연스럽게 보인다. 좌우로 젖혀진 커튼이 바로 그것이다. 이 커튼은 꽤 길어서 주름이 바닥까지 흘러내리는데, 우리는 영상을 보며 그 주름이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즉각 알아챌 수 있다. 그 외의 모든것들, 예를 들어 방 안의 식물은 포토리얼리즘으로서 합격이다. 어찌됐든 우리는 사물이 흘러내리는 원리를 충분히 인식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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