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해외 주요 보직은 지역전문가가 차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던 삼성 인재경영의 모든 것>
과연 지역전문가 제도가 무엇이기에 삼성의 성공 비결로 지목됐을까? ‘세계화를 위한 현지화.’ 삼성의 21세기 목표 가운데 하나이다. 지역전문가 제도는 말하자면 문화적인 차이를 뛰어넘어 현지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완전히 현지화된 삼성인을 양성하는 제도이다. 해당 국가의 파견자로 선발된 사원은 모든 업무로부터 해방되어 아무런 조건 없이 6개월에서 1년간 자신이 선택한 나라에서 자유롭게 활동하면서 현지인과 생활하게 된다. 또 본인이 선택한 어학연수와 체험연수를 통해 현지 국가의 사회, 정치, 경제, 문화 전반에 대한 여러 가지 경험을 쌓도록 배려하고 있다.
삼성이 해외에서 현지화를 통해 생산 거점을 늘리고 마케팅 능력을 발휘하여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었던 데에는 지역전문가의 역할이 매우 컸다. 「일본경제신문」이 “지역전문가 제도는 삼성 현지 마케팅의 근간이고, 삼성전자가 급성장을 지탱하는 원천이 됐다(2011년 10월 6일 자)”고 평가할 정도다.
사진: Freepik.com
지난 1990년부터 시작된 삼성의 지역전문가 제도는 직원들이 1년씩 상당한 ‘회사 돈’을 써가며 해외에 나갔다 돌아와도 직원들에게 당장의 결과물을 요구하지 않는다. 현지에서 철저히 놀고, 먹고, 구경하도록 한다. 학교나 연구소에 등록할 필요도 없고, 현지 지사에 출근할 의무도 없다. 그저 그 나라의 구석구석을 맘대로 돌아다니게 한다. 회사는 다만 해외 체류 중간 중간에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체득한 내용을 자유로운 형식으로 사내 사이트에 게시하게 한다.
지역전문가로서의 임무가 끝나면, 파견자들은 체험한 현지 경험을 정리해 보고서를 작성하고 귀국 보고회를 갖는다. 지속적인 어학 교육과 학력 관리 등으로 나중에 해당 지역 주재원으로 파견되거나, 국내에서 현지와 비즈니스를 담당할 때 유능한 지역전문가가 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육성한다.
이를 위해 간부로 승진할 때까지 상사가 매 분기 1회 양성 보고서를 작성해 인사부에 제출하고 인사부는 매 반기 1회 정기면담을 실시해 해당 지역에 주재원으로 파견되면 언제든지 본인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꾸준히 관리한다.
삼성은 이 제도를 통해 지난 20년 동안 80여 개 국, 170여 개 도시에 4,000여 명의 직원을 내보냈다. 지역전문가 1인당 평균 비용이 급여 이외에 1억 원 안팎이므로 그동안 4,000여억 원을 ‘놀고먹는 데’ 쓴 셈이다.
하지만 지역전문가 제도에 대한 투자 효과는 20년이 지난 요즘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 제도를 통해 삼성은 돈 주고도 구하기 어려운 방대하고 촘촘한 지역 정보를 갖게 됐다. 60여 개 국 700여 개 도시의 생생한 정보를 담은 리포트만 8만 건, A4 용지로 4만 장 분량이다. 사진도 10만 7천여 장이 쌓였다. 파라과이에서 술 마시기 좋은 곳, 미국에서 주택 싸게 얻는 법 등은 물론 현지 국가에서 사귄 인맥, 외국 정부 부처의 승진 시스템 같은 정보도 망라되어 있다. 삼성 주재원들이 경쟁사보다 한발 앞선 위치에서 출발하는 것도 바로 이런 정보 때문이다. 특히 중국과 인도 등 신흥 시장에 대한 정보는 막강하다.
파견지를 국가별로 살펴보면, 지난 20년간 중국이 650명으로 가장 많았고, 일본 510명, 미국 450명, 영국 142명, 러시아 100명 등의 순이다. 최근엔 신흥 시장인 인도와 러시아에 더욱 집중하는 추세다. 초기에는 과장급 이하의 젊은 직원을 중심의 400여 명 규모였지만, 단순 언어 습득과 문화 기행 수준에 그쳐 젊은 직원을 150명으로 줄였다. 대신 기존의 ‘주니어 지역전문가 제도’ 외에 글로벌 경영 시대의 예비 경영층 양성을 위해 ‘시니어 지역전문가 제도’를 시작했다. 25명의 임원과 70명의 부장급 등 총 95명 규모다.
기존에 실시했던 ‘21세기 리더 과정(부장 대상)’과 ‘21세기 CEO 과정(임원 대상)’을 통합 및 확대한 것이다. 주니어 지역전문가 제도가 대리나 과장들을 대상으로 어학연수와 자유로운 지역 연구 활동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면, 시니어 지역전문가 제도는 이밖에 국제경영 감각·해당 지역의 적응 능력·테마 연구·글로벌 인적 네트워크 구축 등에 중점을 두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