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오래된 습관에서 미래를 예측하라.
<크리에이티브 R>
아이모드와 라인이 성공한 이유는 일본 특유의 전통 때문
일본인의 개인주의적 성향은 다양한 사회적 규칙을 만들었고, 이 규칙들은 그들의 개인주의를 보호해 주었지만, 동시에 어쩔 수 없는 불편함도 안겨주었다. 공공장소에서 전화 통화를 꺼리는 일본의 문화는 스마트폰이 유행하기 이전에 아이모드(imode, 모바일 인터넷 서비스)라는 일본 특유의 모바일 인터넷 서비스를 세상에 내놓게 했고, 세계적으로 크게 성공하게 만들었다.
당시 음성 통화와 문자 정도만 주고받던 휴대폰 서비스에 여러 가지 정보를 얻을 수 있게 해준 아이모드는 혁신적이었다. 일본의 택시 요금은 일반인이 이용하기엔 무척 비싸고, 자가용을 유지하는 것도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따라서 대부분의 일본인은 잘 마련된 지하철이나 버스 등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하는데, 이때 지하철 등 공공장소에서 조용히 굴어야 한다는 암묵적 규범은 일본인에게 휴대전화를 이용할 수 없게 하는 불편한 상황을 안겨주었다. 이런 불편함을 아이모드가 해결해준 것이다.
(당시 일본인을 대상으로 한 리서치 결과) 일본인은 아이모드를 통해 이동시간이나 낯선 곳에서의 지루함에서 벗어나 지속적으로 세상과 연결되는 느낌을 유지할 수 있었다. 또한 우리가 지금 애용하는 카톡과 같은 실시간 SNS서비스(문자로 대화하고 감정을 싣는 스탬프 이용 등)를 이미 경험했다. 이것이 스마트폰 시대 라인 서비스가 성공을 거둔 토대가 되었다.
일본에서 라인(Line, NHN의 소셜 채팅 기반 플랫폼 서비스)이 크게 성공한 까닭도 일본인의 독특한 성향에서 찾을 수 있다. 즉 일본인의 자국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높은 선호와 독특한 통신 문화 때문이다.
내가 일본인의 스마트폰 이용과 관련해서 진행했던 심층 조사에서 대다수의 응답자는 라인 서비스 운영사가 일본 회사라고 답했다. 일본인은 제조사나 서비스 운영회사의 국적이 어디인가에 민감한 특징을 보인다. 전반적으로 자국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를 선호하는데, 이는 일본 회사들이 그동안 보여준 제품·서비스의 완결성에 대한 경험과 신뢰에 기인한다. 그래서 외국산 브랜드가 일본 시장에서 성공한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인이 라인을 일본 회사로 인식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라인을 운영하는 NHN의 지독한 현지화 노력이 바탕에 깔려 있음은 물론이다. 이에 더해 행운의 여신도 그들의 편이었다. 일본의 한 재난 현장에서 지진의 잔해에 깔려 있던 생존자가 라인 서비스를 이용해서 구조된 것이 텔레비전을 통해 일본 전역에 방송이 된 일이 있다. 이를 계기로 일본인의 머릿속에 라인이 위기 상황에도 잘 되는 일본 회사의 서비스라는 이미지가 각인되었고, 이후 사용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일본인은 한번 사용한 서비스는 오랜 시간 동안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특성이 있는데, 라인이 바로 그 궤도에 진입한 것이다.
라인의 또 다른 성공 요인은 스탬프 UI(우리나라에서 ‘스티커’라고 부르는 그래픽 아이콘)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일본인은 아이모드 등의 피처폰 모바일 인터넷 서비스에 익숙해 있고, 여기에서 제공되는 채팅 서비스를 많이 사용했다. 이런 채팅 서비스는 특히 형식을 갖출 필요가 없는 사적 인맥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주로 이용되었는데, 전화 통화를 하기 어려운 공공장소에서 유용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게다가 스탬프 서비스를 통해 복잡한 문자 입력 없이도 사용자의 감정이나 상황을 쉽고 간편하게 전달할 수 있었다.
스마트폰의 등장과 더불어 일본 소비자는 스마트폰 인맥을 새로 구성해야 하고, 기존의 익숙하고 편리했던 스탬프 UI를 사용할 수 없는 불편함을 겪게 되었다. 이때 라인이 전화번호를 기반으로 사적 네트워크 구성을 용이하게 해주고, 일본인이 선호하는 캐릭터를 스탬프로 제공함으로써 사용자의 불편함을 일시에 해결해주었다.
내가 만난 일본 라인 유저들은 이 스탬프 서비스에 상당한 만족감을 표현했다. 라인 스탬프의 인기는 라인 스탬프를 모델로 한 액세서리와 팬시용품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