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티브 R>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얻는 좋은 방법 중의 하나는 눈으로 익히고 기억하는 것을 직접 손으로 만들어보는 것이다. 어린 시절 우리나라 지도를 한 번쯤 그려보았을 것이다. 지도를 그리면서 자연스럽게 우리나라 전체 지형이 어떤 것과 닮았다고 생각했을 것이고, 또 그런 생각이 우리나라 지형이 포효하는 호랑이의 모습과 닮았다는 공감대를 만들었다.
그럼 이제 그 기억을 떠올리면서 우리나라 지도를 보지 말고 생각나는 대로 그려보자. 다 그리고 나면 실제 지도와 비교해 보자. 아마도 두 지도가 대강은 비슷할 것이다. 좀 더 시간을 가지고 지도를 그린다면 언론에 자주 등장하거나 특별한 추억이 있는 곳은 자세히 표현되어 있을 것이다. 반면 자주 보지 못한 곳이나 별다른 추억이 없는 곳은 실제와 다르게 그렸거나 아예 생략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우리나라 지도는 우리에게 익숙할 것이다. 이번에는 범위를 넓혀서 세계지도 그리기에 도전해 보자. 물론 이번에도 기억만으로 그려야 한다. 다 그렸다면 실제 지도와 비교해 보자. 결과는 어떤가? 우리나라와 주변 국가를 제외한 5대양 6대주가 잘 기억 나는가? 그리고 정확하지는 않더라도 대략 비슷하게 그렸는가? 아마 대부분의 독자는 자신이 그린 세계지도와 실제 지도가 많이 다른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물론 지리를 전공한 사람이나 지도 관련 종사자라면 잘 그려내겠지만, 내 경험으로는 대부분 제대로 그리지 못했다.
세계지도 그리기를 시작하기 전으로 돌아가 보자. 어쩌면 여러분은 지도 그리기 요청을 받기 전까지 세계의 지형을 잘 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어린 시절 학교에서 배운 내용이기도 하고, 다양한 매체를 통해 여러 번 세계지도를 보아서 잘 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실습을 통해 여러분이 안다고 생각한 것이 실제 표현하는 과정에서 그렇지 않음을 스스로 깨달을 수 있고, 아울러 여러분이 잘 알지 못하고 관심이 없던 지역(예를 들어 나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러시아 북부, 캐나다 북부, 북극 쪽의 지형을 잘 몰랐다)을 새롭게 발견하고 새삼 감탄하는 즐거움도 얻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 지도를 그리는 동안 각 지역에 대한 여러 가지 궁금증도 자연스럽게 생겨났을 것이다. 어떤 사람이 살고 있는지, 어떤 집에서 살고 있는지, 무엇을 주식으로 하는지,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하는지, 어떤 언어를 쓰는지….
이처럼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그려보거나 만들어보는 연습은 우리의 인식 속에서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음을 확인시켜주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해주기 때문에 새로운 아이디어 발상에 도움을 준다.
흔히 현업에서 디자이너와 기획자는 프로토타이핑(모형 제작)을 비슷한 목적으로 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거의 제품화 바로 전 단계에 이르러서야 해보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아이디어 발상에는 사용하지 않는다. 아이디어 발상 단계에서는 문서에 의한 아이디어 공유와 전달이 대부분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다양한 그림이 그려지기도 하지만 충분하지 않다. 지도의 경우 평면적인 모습이기 때문에 그림으로 그리는 것이 가능하지만, 제품과 서비스는 입체적이므로 평면적인 그림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