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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Jun 22. 2016

08. 일본 엔화의 미래(마지막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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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의 미래>는 더굿북 "무료전자책"에서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위안화 못지않게 우리나라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게 바로 엔화의 가치다. 한국 경제의 산업 구조가 중화학공업 위주로 전환된 1980년대 중반 이후, 엔화의 가치는 한국 경제와 금융시장에 큰 영향을 미쳤다. 대표적인 예가 1980년대 후반의 이른바 3저(저금리, 달러 약세, 저유가) 현상으로 우리 경제와 주식시장이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을 누렸던 것을 들 수 있다.

이런 연유로 주식 투자의 경험이 긴 투자자는 엔화의 가치 변화에 항상 주목했으며, 이런 관찰은 큰 보답을 받았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이런 관계가 약화된, 아니 아예 완전 역전된 것으로 보인다. 외환위기 이후 엔화가 강세를 보일 때(엔/100원 환율이 상승할 때), 주가가 상승하기는커녕 오히려 하락했던 것이다. 1980년대 아니 1990년대 중반까지 이어지던 ‘엔화 강세=주가 상승’의 공식이 깨진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혹시 우리 경제의 구조가 달라진 데 따른 일은 아닌지, 나아가 일본에 무언가 다른 일이 생긴 것은 아닌지 자세히 살펴보자.
     
     
영향력 약화의 첫 번째 이유 - 한국 기업의 경쟁력 강화
   
엔/원 환율의 영향력 감퇴 혹은 영향력의 방향이 달라진 첫 번째 원인은 일본 경제가 장기불황 속에 정체된 반면, 한국 경제가 외환위기 이후 정보통신 및 기계 산업의 눈부신 발전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한 데서 찾을 수 있다.

한국과 일본 경제 모두 회복기로 접어든 2002년 이후의 상황을 살펴보면, 일본은 장기간의 경기침체 영향으로 수출 산업 구조 및 경쟁력에 큰 변화가 없었던 반면 한국의 수출 산업 구조가 중화학, 정보통신 산업 중심으로 빠른 속도로 변화한 것을 알 수 있다. 한 가지 예로, 한일 양국 모두 전기전자, 자동차, 기계류가 상위 1~3위 품목을 구성하고 있는데, 수출 상위 10위 이내 품목 가운데 9개 품목이 중복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상위 20대 품목 중 중복되는 품목이 총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6년 현재 한국과 일본이 각각 89.4%와 86.1%에 이르고 있다. 물론 두 나라의 핵심 산업 중복 현상은 엔/원 환율의 영향력이 더 커지는 방향으로 영향을 미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수출 품목의 경합도 혹은 중복 수준이 높아지는 과정에서, 일부 핵심 산업을 중심으로 한국 기업의 경쟁력이 일본 수준을 넘어선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세계 시장 점유율로 한일 간 경쟁 수준을 살펴보면, 한국의 세계 시장 점유율이 크게 상승한 것은 물론 한국 제조업 수출의 절반 가까이가 일본의 경쟁력을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특히 2003년 이후 일본의 경기회복 및 세계 시장 점유율 회복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상승 추세를 지속하여 한국 수출의 경쟁력 강화를 반영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듯 경쟁력이 강화되면, 엔화 가치가 일시적으로 하락했다고 해서 한국 기업이 큰 피해를 입는 일은 줄어든다.

물론 2008년처럼 세계 수요가 빠르게 위축되면 한국의 수출업체도 고통을 피해갈 수 없지만 일본, 타이완 등의 경쟁 국가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수출 감소폭이 적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엔/100원 환율이 2007년 말 832까지 하락했음에도 당시 한국 수출의 경쟁력 우위가 유지되었던 것은 한국 기업의 경쟁력 개선이 어느 정도 ‘추세’를 형성하고 있었다는 좋은 증거라고 판단된다.
     
     
두 번째 이유 - 엔 캐리 트레이드 붐
   
엔/원 환율이 상승할 때 우리 주식시장이 약세를 보이는 두 번째 이유는 엔 캐리 트레이드(Yen Carry Trade)의 확산과 소멸에 있다. ‘엔 캐리 트레이드’란 금리가 낮은 엔화를 차입하여 고금리 국가(오스트레일리아나 뉴질랜드 등 원자재 가격 상승의 혜택을 입는 강세 통화 국가)의 자산에 투자하는 행동을 지칭한다. 투자 대상에는 고금리 국가의 통화(예금)뿐만 아니라 차익 거래가 가능한 모든 수익 자산(증권, 상품 등)이 포함된다.

엔 캐리 트레이드의 규모에 대해서는 1천억 달러에서 많게는 1조 달러로 추산되는 등 집계 기관마다 차이가 커, 정확한 규모를 추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외환시장의 흐름을 좌우할 만한 수준까지 상승한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이러한 엔 캐리 트레이드가 글로벌 금융시장의 환경에 매우 민감하다는 것이다. 지난 2008년 서브 프라임 위기처럼 금융기관의 차입 여건이 급속도로 악화되며, 또 차입해 투자했던 나라의 자산 가격이 폭락하는 경우 투자자는 투자 자산의 환차손 및 가격 하락으로 이중의 피해를 입기 때문이다. 물론 환 헤지를 했다면 자산 가격 하락의 충격만 입지만, 대부분의 경우 차입을 통해 투자했기에 차입금의 규모가 클수록 손실은 눈덩이처럼 커지는 위험을 안게 된다.

  이런 이유로 엔화는 세계 경제가 불황을 보일 때, 다시 말해 세계 금융시장이 불황을 의식하여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를 기피할 때 강세를 보인다.(=달러/엔 환율 하락) 왜냐하면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캐나다 등의 고금리 통화나 고수익 자산에 투자했던 자금이 일거에 회수되어, 다시 일본으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해외에 나갔던 자금이 회수될 때 일본 엔화의 가치는 상승할 수밖에 없고, 일본 경제는 이중고를 겪게 되는 것이다. 엔화의 강세로 수출 기업의 경쟁력이 약화되며, 글로벌 경제 여건 악화로 수출 수요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결국 엔화는 미국 달러보다 더 ‘안전자산’으로서의 특징을 가진다.
     
     
달러/엔 환율의 변화 방향은?
     
현재 시점에서 10년 후 달러/엔 환율의 방향을 점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경기 전망이 어려운 데다, 일본 엔화가 ‘안전자산’으로써의 지위를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지도 안개 속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래의 전망은 나의 개인적인 시나리오일 뿐 너무 신뢰하지 않기를 바란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지난 2013년부터 시작된 일본 아베노믹스가 성공하며 달러/엔 환율이 추세적으로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일본 중앙은행이 열정적으로 추진하는 ‘질적, 양적 완화(QQE)’ 정책의 효과가 나타나면서 일본의 물가 상승률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는 점에 무게를 두는 셈이다. 특히 미국의 금리가 상승하면서 당분간은 엔 캐리 트레이드가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점수를 줄 수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엔 캐리 트레이드의 가장 기본은 일본 엔으로 돈을 빌려, 상대적으로 금리가 높은 미국 달러에 투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엔 캐리 트레이드가 본격화되기만 하면 일본 엔화의 약세가 지속되고, 나아가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다.

  그런데 문제는 시간이다. 2~3년 내에 다시 선진국 경기가 침체될 가능성이 높은데, 그때까지 일본 경제가 인플레이션 흐름을 안착시킬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예’가 될 것 같다. 왜냐하면 일본 정부가 어느 정도 디플레이션에 대응할 처방을 찾았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가 찾은 처방전은 ‘전면적이고도 확고한 통화공급 확대 정책’이다. 디플레이션이 퇴치되기 전까지 지속적으로 돈을 풀어버리는 것. 그리고 이 정책이 앞으로 무한히 계속될 것이라고 믿게 만드는 것. 이게 아베노믹스의 핵심인데, 적어도 2~3년 내에 일본 통화정책 당국이 이 정책을 폐기할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통화공급 정책이 디플레이션을 퇴치하고 경기침체를 막아낼 수 있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경제학 지식이 없는 사람은 ‘불황’을 그간 누렸던 방종에 대한 도덕적 징벌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불황은 소비자와 기업가가 어떤 이유로든 미래에 대해 불안감을 가지게 되어, 저축을 더 늘린 결과로 초래된다. 다시 말해 미래의 소비를 위해 현재의 소비를 줄인 결과, 경제가 잘 안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1989년 이후의 일본 경제 상황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인플레이션의 가능성을 높이는 정책을 취하는 것이 해답이 될 수 있다. 그럼 지금까지 일본 중앙은행은 왜 이런 정책을 시행하지 않았을까? 답은 ‘트라우마’에 있다. 1930년대 일본 중앙은행이 통화증발 정책을 시행하면서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나아가 군부의 군국주의적 행동을 억제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에 그간 일본 중앙은행은 통화공급 확대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하지 못했다. 그러나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 경제가 심각한 침체에 빠지면서 기존의 통화정책에 대한 반성이 제기되었고, 구로다 총재가 취임하면서 일본 중앙은행의 정책 기조가 일신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일본 중앙은행이 적극적인 행동에 나선 만큼 장기적인 달러/엔 환율은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물론 정치적인 격변이 발생할 경우, 얼마든지 이런 정책 기조는 변화될 수 있다. 역사적 경험을 돌이켜 봐도 정치 지도자의 유고나 교체 등으로 인해, 정책 추진의 에너지가 고갈되는 것을 숱하게 목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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