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 추월차선을 달리는 삶 ♬

<스탠드 펌>

by 더굿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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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와 혁신, 이 단어와 함께 등장하는 또 다른 단어 자기계발, 하지만 자기계발로 빠르게 따라만 가는 삶이 우리를 행복하게 할까요?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굳건히 서 있는 삶을 덴마크 인문 베스트셀러 <스탠드펌>에서 만나고 있습니다. 오늘은 추월차선을 달리는 우리의 삶을 가장 먼저 되돌아봅니다.

삶의 속도가 가속화되는 듯하다. 나를 비롯한 대다수 사람이 요즘 모든 것이 점점 더 빨리 움직인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기술이 끊임없이 쏟아지고, 직장에서는 조직 개편이 되풀이되며, 새로운 음식과 패션, 기적의 치료법이 쉴 새 없이 뜨고 진다. 요즘은 스마트폰을 새로 사자마자 최신 앱을 설치하기 위해 업그레이드부터 해야 한다. 직장에서 쓰는 IT 시스템은 익숙해지기도 전에 새로운 버전이 설치된다. 까다로운 직장 동료를 참고 지내는 방법을 막 터득할 때쯤 조직 개편으로 완전히 바뀐 새 팀에 다시 적응해야 한다. 우리가 장담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어제 배운 것이 내일이면 구식이 되리라는 것밖에 없다. 교육계와 기업을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평생학습과 능력개발이 가장 중요한 개념이 되었다.

우리는 이제 1970년보다 하룻밤에 평균 30분을 덜 자며, 19세기와 비교하면 최대 2시간 덜 잔다. 삶의 거의 모든 면에서 속도가 빨라졌다. 직업을 바꾸는 것부터 글을 쓰거나 식사 준비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패스트푸드, 스피드 데이트, 파워 낮잠, 속성 치료가 흔히 입에 오르내린다. 얼마 전 나는 스프리츠(Spritz)라는 앱을 시험 삼아 써봤다. 한 번에 한 단어씩만 보여주는 앱으로, 1분당 독서 속도를 250단어에서 500~600단어까지 끌어올려 준다. 소설 한 권을 두 시간 만에 뚝딱 읽을 수 있는 세상이 됐다! 그런데 그게 문학을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까?

왜 속도가 그 자체로 목적이 되었을까? 세속화된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현대인들은 삶이라는 긴 막대의 끄트머리에 영원한 천국이라는 당근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대신에 우리는 이 지상에 머무는 비교적 짧은 시간에 할 수 있는 한 많은 것을 채워 넣으려 애쓴다. 물론 이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헛된 노력이다. 현대에 유행병처럼 번진 우울과 소진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속도가 빨라지는 문화 때문에 생겼는지도 모른다. 성장에 미친 듯이 몰두하는 문화에서 속도를 늦추는 사람, 더 빨리 가는 대신에 더 천천히 가는 사람, 혹은 가던 길을 아예 멈춰버린 사람은 설 자리가 없어 보인다. 어쩌면 병든 사람으로 여겨질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우울증 진단을 받을지도 모를 일이다.

끊임없이 빨라지는 문화를 우리는 어떻게 따라갈까? ‘따라간다’는 말에는 끊임없이 적응할 마음, 자기계발과 전문성 개발에 계속 매달릴 마음이 있다는 뜻이 들어 있다. 평생학습에 회의적인 사람들은 평생학습을 ‘공부하다 죽기’라고 말한다. 요즘 학습하는 조직의 특징은 수평적 경영 구조와 책임 위임, 자율적 팀 운영이다. 일과 사생활의 경계가 흐릿하거나 아예 없는 것도 한 가지 특징이다. 이런 조직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우리의 개인적, 사회적, 정서적 능력과 학습 능력이다. 상사가 권위적으로 명령을 내리지 않으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과 협상하고 함께 일하며 우리 내면의 느낌에 따라 결정을 내려야 한다.

요즘 세상에서 이상적인 직원은 자신을 능력 저장고로 보며, 그 저장고를 감독하고 개발하여 최대한 활용하는 것을 자기 책임으로 여기는 사람이다. 요즘 회사와 조직은 예전에는 개인적인 영역으로 여기던 온갖 인간관계와 활동을 직원의 능력개발을 위한 도구로 끌어다 쓴다. 이제 감성과 개성마저 자기계발의 도구가 되었다. 만약 당신이 이 사회의 빠른 속도를 견디지 못한다면, 또는 너무 느리거나, 활기가 부족하거나, 주저앉아 있다면 코칭, 스트레스 관리, 마음챙김 명상, 긍정적 사고 같은 치료법을 처방받게 될 것이다.

우리는 모두 “지금 이 순간을 살아라”라는 조언을 듣는다. 사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이 점점 더 빨리 움직이는 세상에서 방향과 시간 감각을 잃기는 더욱 쉽다. 과거를 생각하는 일은 퇴행으로 여겨진다. 한편, 미래는 뚜렷하고 일관된 삶의 궤도에 있다기보다는 단편적인 가상의 순간들로 보일 뿐이다. 온 세상이 짧은 순간에 이렇게 집중하는데 우리가 긴 시간을 위한 계획을 세울 수 있을까? 그런 계획을 세워보려고나 할까? 어차피 모두 또 달라질 텐데 왜 계획 같은 것에 신경을 써야 할까? 그래도 당신이 굳이 장기적인 이상과 변함없는 목적과 가치에 매달린다면 아마 까칠하고 답답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자기계발 컨설턴트들이 잘 쓰는 표현대로 ‘변화의 적’으로 낙인찍힐 것이다.

요즘 사람들의 어깨를 내리누르는 부담스러운 자기계발에 하나를 더 추가할지 모른다는 위험을 무릅쓰고 나는 ‘굳건히 서 있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어쩌면 늦기 전에 당신이 발 디딜 곳을 찾으라고 주장하고 싶다. 생각보다 힘든 일이다. 우리는 개발, 변화, 변신, 혁신, 학습 같은 가속화 문화를 끌고 가는 온갖 역동적 개념에 에워싸여 있다. 단단히 서 있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런 가속화 문화에서 문제없이 잘 지내는 사람은 굳이 단단히 서 있고 싶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그들도 존엄을 잃고 삶의 중요한 면을 놓칠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발 딛고 서 있고 싶지만 그러고 싶다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혹은 발 딛고 설 곳을 찾으려고 노력하다가 융통성이 없다거나 까칠하다거나 보수적이라는 평가만 들었던 사람도 있다. 어쨌든 우리는 자기 내면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말고 더 균형 잡힌 세계관으로 세상을 살아야 한다.




북 큐레이터 | 오수진

성균관대학교 영문학과(중문학 복수전공)를 졸업한 후, 현재 KBS에서 기상 캐스터로 근무하고 있다. 더굿북의 북 큐레이션을 담당하고 있으며, 시각장애인을 위한 독서봉사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환경부에서 홍보 대사로도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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