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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Jun 26. 2017

05. 요리를 좋아하는 캘빈

<행복한 서번트, 캘빈 이야기>

어릴 때부터 먹는 것을 싫어했던 캘빈은 얼굴에 검버섯도 생기고 칼슘 부족으로 치아도 잘 나오지 않았었다. 어떤 때에는 불량식품이라도 먹어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먹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또래에 비해 키도 작고 몸도 말라서 영양사 선생님께 상담을 요청했다. 그랬더니 선생님은 캘빈이 음식을 먹지 않더라도 시각적으로 인지할 수 있게 여러 가지 재료를 보여주라고 하셨다. 눈에 익기 시작하면 결국은 조금씩 먹기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집에 돌아가자마자 캘빈이 평소 싫어하는 채소 순으로 식탁에 올려놓았다. 당근, 오이, 피망 등을 예쁘게 썰어서 놓았지만 캘빈은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채소를 먹으면 좋아하는 비디오도 볼 수 있게 해주겠다고 아이를 설득했지만 그렇게 억지로 먹이고 나면 바로 그 자리에서 토하기 일쑤였다. 채소 특유의 냄새와 식감이 캘빈을 괴롭히는 것 같았다.

그러다 문득 비디오를 이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비디오 보는 것을 좋아하는 캘빈에게 뽀빠이 비디오를 틀어주었더니 어느 날 갑자기 시금치를 사러 가자는 것이 아닌가? 뽀빠이처럼 시금치를 먹어야 힘이 세진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캘빈과 시금치를 사 온 후 나는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요리를 해야 캘빈이 먹을 수 있을지 몰랐기 때문이다. 시금치나물을 만들면 시금치 특유의 향 때문에 다시는 먹지 않을 것 같아서 시금치를 잘게 썰어 된장국에 넣었다. 당시 캘빈은 된장국을 즐겨 먹었는데, 시금치 냄새가 나지 않았는지 한 그릇을 다 비웠다. 어쩌면 맛이 있어서가 아니라 뽀빠이처럼 되기 위해서 억지로 먹었을 수도 있지만 일단은 성공이었다.

그 다음부터는 캘빈과 요리 방송을 함께 보면서 내가 직접 요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국에서 요리 강사로 활동하시는 분이 보스턴에 방문할 기회가 있어 그분에게 1년간 정식으로 요리를 배우면서 집에서 손님을 맞는 일이 많아졌다. 요리에 관심이 없던 내가 캘빈 덕분에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변한 것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내가 요리를 해 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제 캘빈이 직접 만들 수 있게 가르쳐야 했다. 우리는 먼저 인터넷으로 레시피를 찾은 후 함께 요리하기 시작했다. 캘빈이 좋아하는 파스타 삶는 법과 계란 후라이, 스테이크는 간단하면서 쉽게 할 수 있는 음식들이다. 요즘에는 오븐 쓰는 법도 가르치고 있다. 이제는 내가 바쁠 때면 캘빈 스스로 장을 본 뒤 직접 요리를 한다. 물론 단점도 있다. 스스로 음식을 만들다 보니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먹는 것이었다. 내가 집을 비우는 날이면 삼시 세끼를 스테이크만 구워 먹는다. 앞으로는 먹고 싶은 음식만 먹는 것이 아니라 영양가 있는 식단 짜는 것을 가르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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