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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Jun 28. 2017

08. 의사가 되고 싶은 하은이

<행복한 서번트, 캘빈 이야기>

캘빈이 올해 21살이 되었다. 19살이 된 하은이는 작년에 보스턴에 있는 통합의대에 합격해서 대학생으로서의 첫해를 보내고 있다. 하은이가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캘빈이 다니는 장애인 여름 프로그램에 봉사자로 지원했다는 말을 듣고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그렇게 오빠와 함께 여름 프로그램 센터에 들어가서 함께 나오는 모습을 보니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든든했다. 하은이는 봉사를 하면서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그곳에서 만난 한 자폐아는 하은이가 오기만을 기다린다고 했다. 캘빈을 보면서 자란 하은이가 장애를 가진 친구들을 대하는 법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 다음 여름방학 때는 애리조나 피닉스의 SARRC(Southwest Autism Research and Resource Center)라는 곳에서 2박 3일간 열린 캠프에 자원해서 참가했다. 선생님들은 하은이의 적응력을 칭찬하시며 다음 방학에도 계속 활동해주기를 바라셨다. 그렇게 하은이의 봉사활동은 고3 마지막 학기까지 이어졌다.

하은이가 다니는 고등학교는 졸업을 앞둔 마지막 학기에 관심 분야에서 일을 하거나 인턴쉽을 해야 했다. 졸업을 마무리하는 중요한 프로젝트도 진행하는데 하은이의 주제는 ‘자폐증과 예술’이었다. 매년 방학마다 자폐증 친구들과 함께 봉사활동을 했던 경험과 씨앗아트센터에서의 연구를 토대로 발표까지 하게 된 것이다. 어려서는 오빠가 엄마의 사랑을 다 빼앗아갔다고만 생각하던 하은이가 이제 오빠와 함께 프로젝트도 하고 오빠의 그림을 자랑스럽게 여길 정도로 성장했다. 하지만 어릴 때 가졌던 마음의 상처를 완전히 치유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한 하은이가 통합의대를 가겠다고 말했을 때 우리는 반대했다. 미국에서 의사가 되려면 전문의 전공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어도 16년은 공부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간호사나 다른 것을 권해보았지만 하은이는 의대를 고집했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동안 하은이가 의대를 진학하려는 이유에 대해 알게 되었다. 자폐아인 오빠에 대한 측은함과 부모님이 없으면 자기가 오빠를 책임져야 한다는 마음이 자리 잡고 있던 것이다.

사진: Mika-rika-free.jp


더 자세한 이유는 하은이의 대학 입학 에세이를 통해 알게 되었다. 캘빈이 어릴 때 보스턴 소아병원을 수시로 드나들었는데 하은이도 어쩔 수 없이 따라 다니게 되었다. 우리 부부가 의사 선생님과 상담하는 동안 하은이는 병원 로비에서 혼자 긴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 선생님이 캘빈을 진료할 때면 항상 지쳐 있던 엄마, 아빠의 얼굴에서 희망과 미소를 보면서 자기도 누군가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글을 읽고 펑펑 울었다. 이제 어엿한 대학생이 되어서 스스로 갈 길을 선택한 딸이 대견스럽고 고맙다. 어쩔 수 없었던 환경의 상처가 앞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데 지혜의 거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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