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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Jul 06. 2017

01. 더 늦기 전에 '호주'

<나는 호주의 행복한 버스 드라이버>

이민을 결정하게 된 동기

2005년 10월, 업무적인 일로 호주 출장을 가게 되었다. 포트 린콜른(Port Lincoln)이라는 목적지에 가기 위해서는 남호주의 수도인 애들레이드(Adelaide)를 경유해야 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시드니, 멜버른, 브리즈번 등의 대도시가 호주를 대표하는 곳이었고, 애들레이드는 한국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매우 조용한 도시였다. 깨끗하고 잘 정비된 전형적인 영국 스타일의 도시로, 인구 120만 명의 소도시라 그런지 사람들은 순진하고 친절하다. 애들레이드는 호주 최초로 계획된 도시이기도 해서 모든 도로는 City로 집중되어 있다.

당시만 하더라도 교통편을 잘 이해하지 못했던 나는 지도상으로 목적지를 확인하고 항구도시인 포트 린콜른으로 가기 위해 버스에 몸을 실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장장 12시간을 버스에서 보내며 나는 “아, 정말 땅이 넓긴 넓구나.” 싶었다. 12시간을 버스에서 보낸 나는 기진맥진하여 항구에 조그마한 숙소(Inn)를 잡은 후 맥주 한잔하면서 호주 바닷가의 저녁노을을 감상했다. 정말 환상 그 자체였다.

바 안의 사람들은 모두가 코카시안들이었고, 동양인은 아마도 나 혼자였던 것 같다. 누군가 나에게 다가오더니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었다. 나는 한국(South Korea)에서 왔으며 출장 중이라 했더니, 그는 88올림픽과 2002년 월드컵을 언급하며 아는 체를 했다. 그는 좋은 나라에서 왔다며 맥주 한잔을 시켜주는 것이 아닌가? 

통성명을 한 것도 아니고, 맥주 한잔 마시는 시간 정도에 짧은 대화를 나눈 것이 전부였지만, 긴 버스 여행의 피로가 한꺼번에 풀리는 듯했다. 출장이든 여행이든 언제나 사람들과의 만남은 흥미롭고 멋진 추억이 된다.

스스로가 이 넓은 세계의 일원이 되어 생각을 나누며, 공유하거나 차이를 느낀다는 것 자체가 기존의 관념에서의 탈출이며 새로운 도전을 위한 준비가 아닐까. 4박 5일의 호주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아내는 딸 둘을 데리고 호주 단기유학(1년)을 다녀오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이야기하였다. 당시 큰아이가 12살, 작은아이는 9살이었다. 비록 단기지만 더 늦기 전에 외국에서의 생활을 경험시켜주고 싶다고 했다. 나
는 동의하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동의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 비록 내가 많이 힘이 드는 상황이긴 했지만, 아이들의 기회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어디가 좋을까?”
“호주 애들레이드가 좋을 것 같아. 가 보니 아주 조용하고 깨끗한 데다 사람들도 노인들이 많아 오히려 아주 친절하고 좋더라.”


아내는 곧바로 절차를 알아보더니, 다음 해 2월 두 딸을 데리고 호주로 떠났다. 왜소한 아내와 어린 두 딸이 출국장으로 들어서며 시야에서 사라질 때 스스로에게 다가온 그 무력감과 원망은, 살아오며 처음 느끼는 자괴감이었다. 충분한 준비도 없이, 단지 ‘더 늦기 전에’라는 생각으로 결정한 것이었기에 더욱더 그들의 뒷모습이 슬프게 다가왔다. 그렇게 나는 말로만 듣던 ‘기러기’가 되었다.

아내는 한번 결정을 하면 지체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지금까지도 내게는 유일무이 엄격함의 대상이기도 하다. 사실 아내의 그런 부분이 절망과 포기의 순간 언제나 내게 힘이 되었고, 아내 덕분에 나는 순간순간의 힘듦을 극복할 수 있었다. 세월이 흐른 지금에서야 두 딸의 엄마로서 고민했던 그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해 본다. 아내가 아이들에게 주려 한 기회는 금전이 아니라 시간이었다. 더 늦기 전에 딸들에게 그 기회를 주기 위하여 실행한 용기의 결정이었다. 아내의 이러한 결정이 두 딸뿐만이 아니라, 나에게도 결국 새로운 길을 열어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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