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기묘한 날씨>
“이누이트는 잠을 잘 때면 안구가 빠져나와 여행한다고 믿는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는 건 안구가 여행하기 때문이다.”
날씨에 관한 신비로운 이야기, 책에 담을 수 있는 가장 놀라운 서사, 신간 도서 <아주, 기묘한 날씨>를 여러분에게 들려드리는 오수진입니다. 첫 시간에는 북극 탐험가 스테파운손의 눈으로 만나는 추위를 들려드립니다.
1921년에 북극 탐험가 빌햐울뮈르 스테파운손(Vilhjálmur Stefánsson)은 이런 기록을 남겼다. “내가 눈동자가 보일 정도로 눈을 뜨고 자는 사람이 있다고 지적하자, 그들은 그 사람은 그때는 꿈을 꾸지 않는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스테파운손은 아이슬란드에서 태어나 캐나다 매니토바 주로 이주한 부모 밑에서 자랐다. 스테파운손은 하버드대학교에서 인류학을 공부했으며, 1906년에 캐나다령 북극으로 떠났다. 10여 년간 스테파운손은 북극을 세 번 탐사했다. 꽁꽁 언 북극 풍경은 스테파운손을 매혹했다.
『친근한 북극, 극지방에서 지낸 5년(The Friendly Arctic: The Story of Five Years in Polar Regions)』에서 스테파운손은 온통 눈으로 덮인 극지방에서만 관찰할 수 있는 독특한 광학 현상을 묘사했다. “햇빛은 무시해도 좋을 정도다. 처음에는 하늘 높은 곳에서 구름을 헤치고 모습을 드러낸 뒤에 나중에는 두툼한 안개를 뚫고 내려오는 달빛은 썰매 개들을 구분할 수 있고 100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는 검은 바위도 볼 수 있을 정도지만, 눈을 밟고 있는 내 발은 빛이 거의 없는 것처럼 조금도 비추지 않는다.”
온통 하얗기만 한 광활한 지역에서는 지형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사라지고 방향감각도 없어져 완벽하게 텅 빈 곳에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그곳에는 마치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져 발을 들어 올릴 때마다 우주로 걸어 들어가는 것 같다.”
스테파운손은 길을 파악하려고 사슴 가죽으로 만든 장갑을 앞으로 던졌다. “장갑 한 짝을 10미터쯤 앞에 던지고, 그 장갑을 보면서 3~4미터쯤 걸어간 뒤에 다시 나머지 장갑 한 짝을 던진다. 완벽하게 하얀 공간에서 걸어가는 동안 거의 5미터 혹은 6미터 간격으로 떨어져 있는 검은색 두 점을 보면서 걷는 것이다.”
이런 영리한 방법을 쓴다고 해도 위험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이곳에서 눈은 쓸모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정도로 강인한 정신력이 있다면, 이런 일들이 그렇게 못 견딜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끊임없이 앞을 보려고 애쓰면 결국 ‘설맹’이라고 부르는 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
‘광각막염’이라고도 하는 설맹은 번쩍이는 눈이나 얼음에 반사된 자외선 때문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눈의 각막이 일시적으로 손상되는 병이다. 북극 사람들은 나무나 순록의 뿔을 깎아서 빛을 아주 조금만 통과시키는 가느다란 틈새가 있는 고글을 만들어 썼다. 시베리아에서는 구슬로 정교하게 만든 고글도 발견됐다. 대영박물관에 전시된 19세기 초반의 고글은 순록 가죽으로 만든 마스크에 가는 틈을 낸 볼록한 황동 ‘렌즈’를 꿰매어 만들었다. 이 고글은 부드러운 가죽 쪽을 얼굴에 대고 썼을 것이다.
스테파운손은 황갈색 유리 렌즈 고글을 착용했지만, 여전히 설맹은 자주 스테파운손을 괴롭혔다. “아마도 설맹은 밝은 태양 광선이 내리쬐는 화창한 날에 가장 위험하리라고 생각할 테지만, 그렇지 않다. 구름이 해를 가릴 정도인 때는 많지만, 완전히 하늘을 뒤덮거나 찌푸린 날씨라고 부르기에는 충분하지 않을 때가 있는데, 그때가 가장 위험하다. 그런 날은 햇살이 고르게 퍼져 어디에도 그늘이 지지 않는다. 그늘이 전혀 생기지 않는 날에 표면이 거친 해빙 위를 걷다 보면 사물이 구별되지 않아서 무릎 높이의 얼음 덩어리에 걸려 넘어지거나 집 벽만큼이나 우뚝 솟아 있는 절벽에서 미끄러질 수도 있다. 아니면 갈라진 틈새로 다리가 푹 빠지거나 무덤이 될 수도 있을 만큼 커다란 구멍으로 굴러떨어질 수도 있다.”
가혹한 추위, 몇 달이나 계속되는 어둠, 부족한 식량, 북극곰의 공격 위협, 고독, 탈진, 위험한 신기루. 이런 것들이 바로 영웅적인 북극과 남극 탐험 이야기에서는 빠질 수 없는 요소, 그러니까 영광을 극대화하는 위험이다. 생애 마지막 극지방 탐사를 마치고 돌아온 빌햐울뮈르 스테파운손은 고국으로 돌아온 뒤에 곧바로 이런 글을 썼다.
“내가 처음 품은 야망은, 내 기억으로는, 인디언을 죽이는 버펄로 빌(Buffalo Bill)이 되는 것이었다. 아주 작은 꼬마였을 때 그랬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내 야망은 바뀌었고, 나는 로빈슨 크루소를 꿈꾸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나 누구도 한 번도 밟아보지 못했던 땅을 발견하고 섬의 해변에 발을 내딛는 순간 나는 나만의 섬에서 조난자가 되는 상상을 했던 소년 시절의 꿈이 이루어졌음을 깨닫고 얼마나 가슴이 벅찼는지 모른다.”
북 큐레이터 | 오수진
성균관대학교 영문학과(중문학 복수전공)를 졸업한 후, 현재 KBS에서 기상 캐스터로 근무하고 있다. 더굿북의 북 큐레이션을 담당하고 있으며, 시각장애인을 위한 독서봉사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환경부에서 홍보 대사로도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