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더굿북 Jul 10. 2017

03. 호주에서의 새로운 삶

<나는 호주의 행복한 버스 드라이버>

현실의 시작은 막막함, 그 자체였다. 한국에서 가져온 건 국민연금 해약금 4천여만 원뿐이었다. 물론 한국에 있는 부동산은 처분하지 않았으나, 4천여만 원은 호주에서 우리 가족이 정착하기 위한 전재산이었다.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참으로 막막했다. 그러나 이것이 눈앞의 현실이었다. 아이들 학교를 등록하고, 영주권자로서 Centrelink(사회보장등록, 거주자등록 등)를 완료하였지만 밀려오는 두려움은 감출 수 없었다. 아마 모든 초기 이민자들이 느낀 감정일 것이다. 물론 금전적으로 여유가 많아 투자이민을 오는 사람들은 예외겠지만, 실은 이민생활 10여 년 동안 내가 살고 있는 곳으로 투자이민 온 경우는 단 1건밖에 못 봤다.

사실 한국에서 ‘있는’ 자로 사는 사람들이 이민이라는 도전을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금수저 By 금수저가 아니겠는가? 도전은 흙수저의 전유물인가? 하지만 그렇게 스스로를 비하할 필요는 없다. 금수저는 금수저 나름대로 부족한 것이 있을 테고, 게다가 그들은 삶에 있어 도전이 왜 필요한지를 모르는 불쌍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생존을 위함이든 변화를 위함이든 ‘도전’이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절대 포기하지 않고 행복을 꿈꾸는 이들이 바로 미래를 사는 사람들이다.

이곳의 해변에는 나무다리가 만들어져 있다. Jetty라고 한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게를 잡거나 낚시를 하곤 한다. 게잡이 철은 11월에서 1월까지인데, 나는 1월 초에 초기 입국을 하였기에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었다.

 나는 게를 잡으러 가서 줄 담배를 태우며, 아는 이 하나 없는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했다. 그때만큼 정신적 고통을 느껴 본 적이 없었던 같다.

현재 살고 있는 집을 계약한 후, 나는 한 달여 동안 Jetty에서 게잡이와 낚시로 시간을 보냈다. 딱히 무언가 할 일도 없었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기에, Jetty에서의 시간은 나에게 두려움이기도 했지만 그것을 다시 용기로 바꾸는 소중한 시간이기도 했다. 당시 나는 매일 30~50마리 정도의 게를 잡아와 우리의 저녁 메뉴는 거의 게 요리였다. 

그때 질려버렸는지 그때 이후 나는 게잡이를 간 적이 없다. 아무튼 나는 두려움을 용기와 도전으로 바꾸어 모든 것을 던져 보기로 하였다. 살아남아야 했기 때문이다. 더 이상 뒤를 돌아볼 여유도 없었다. 그저 아내와 두 딸을 위하여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가족의 힘은 위대하다. 나는 그들을 위하여 무엇인가를 선택하여야 했고, 그들은 나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삶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Jetty에서 ‘내 삶의 의미는 가족의 의미를 완성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다짐했었고, 이후 나는 이민이라는 혼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이러한 혼란은 이민 초기 입국자들이 공통적으로 겪게 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사막에 홀로 남겨진 기분이라고나 할까? 어느 것 하나 확실한 것이 없고, 문화적으로도 언어적으로도 다른 환경에서 출발하여야 한다는 두려움은 상상 그 이상이다. 더욱이 가족과 함께하는 상황이라면 순간적으로 이민 자체를 후회할 수도 있다. 나는 그런 후회를 해본 적은 없으나, 공통적으로 느끼는 두려움에서 예외일 수는 없었다. 다만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외국이든 한국이든 두려움 극복의 출발은 ‘가족’에 있다는 점이다. 출발과 과정, 그리고 결론까지 모두 가족이라는 사랑의 단위 안에 있다는 것을 어떠한 순간에도 잊지 않기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1. 왜 나는 늘 시간이 없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