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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Jul 10. 2017

01. 파리, 꼭 가야 할 이유를 갖는 공간

<여행의 취향>

홀로 떠난 첫 여행. 파리라 다행이었다. 파리와의 첫 만남은 그보다 몇 년 전의 일이었다. 오로지 파리에만 머물렀던 그 여행. 유럽이 목적이 아닌 파리가 목적인 여행이었다. ‘한 달간 한 도시’라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여행한 첫 도시가 바로 파리였다.

그래서 특별했다. 파리는 내게 분명한 이유를 갖는 공간이었다. 프랑스 역사, 특히 대혁명 전후시기에 관심을 갖고 있던 사학도에게 파리는 반드시 가야 하는 도시였고, 확인할 것이 많은 공간이었다. 책 속의 프랑스사는 인상적이었지만 너무나 멀었고, 매력적이고 흥미로웠지만 생동감이 없었다. 두 눈으로 보고 느끼며 확인할 가시적인 것이 필요했다.

처음 만난 파리는 엄마와 함께였다. 프랑스어와 프랑스 문학을 전공한 엄마와 역사를 전공하고 프랑스사에 관심이 많던 난 표면적으로는 완벽한 파리여행 동반자였다. 전공과 취향이 잘 맞고, 서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친구이자 가족이었으니까. 우리의 눈과 머리, 마음은 파리에 정확히 꽂혀 있었다. 다른 곳을 논의하거나 생각해볼 필요가 없는 두 여행자에게는 여행에서 서로 맞춰가고 포기할 것이 적을 거라고, 단점보다는 장점이 많은 여행이 될 거라고 멋대로 생각했다.

“난 프랑스어 다 잊어버렸고 대신 말해줄 생각 없으니, 네 일은 네가 알아서 해.”

엄마는 비협조적이었다. 엄마가 특유의 비음이 섞인 부드러운 프랑스어를 우아하게 구사했던 건 헤매던 길을 찾거나 기차표를 사거나 음식을 주문할 때가 아닌, 파리행 비행기 안에서 엄마보다 열 살은 어려 보이는 승객이 엄마에게 호감을 보였을 때와 튈르리 공원 꽃밭에서 점잖은 신사가 데이트 신청을 했을 때였다. 서울에서 파리까지, 다시 파리에서 서울까지, 분명 둘이 하는 여행의 일정을 나 혼자 준비해야 했다. 차라리 혼자 올 걸…. 패키지여행을 극도로 싫어하는 우리는 한 번도 패키지여행을 해본 적이 없었다. 덕분에 나는 엄마를 위한 1인 맞춤 가이드와 통역이 되었다.

파리에서의 첫 여정은 자콥 거리(Rue Jacob)였을 거다. 독특하고 이색적인 상점과 갤러리가 많은 자콥 거리는 일요일이라 문 닫은 곳이 대부분이었다. 


우리는 문을 연 곳이 있으면 들어가고, 아니면 쇼윈도를 통해 즐겼다. 그리고는 따뜻한 냄새 가득한 빵집에 들어가 길고 말랑말랑한 바게트를 샀다. 그걸 작은 손에 들고 흔들며 상점 쇼윈도며 오래된 책 냄새 폴폴 풍기는 고서점을 둘러보며 엄마는 소녀처럼 즐겁게 웃었다.


“불문학과에 입학한 게 언제인데, 이제야 프랑스에 와서 바게트를 먹어보네?”
대학시절 꿈꾸었던 ‘파리행’을 이룬 나이 든 소녀의 웃음을 보며, 혼자 올 걸 그랬다는 생각이 슬며시 바뀌었다.


서로에게 다행인 시간이었다. 엄마와 한 달간, 언제 또 그런 시간을 갖게 될까. 쉽지 않은 일이다. 파리가 아닌 다른 곳에서 엄마와 한 달 또는 그보다 짧은 시간이라도 가질 수 있을 것이고, 집에서도 함께일 수 있다. 그런 시간도 의미 있는 여행이고 일상일 것이다. 그렇지만 파리라는 공간을 엄마와 나눈 것은 분명 다른 의미가 있다. 모녀의 취향과 흥미가 한 곳을 향하는 여행은 결코 쉬운 게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서울, 바르셀로나, 로마, 하노이였다면 그 의미가 조금이라도 퇴색했을지 모른다.

파리는 그래서 특별한 의미가 있었고, 꼭 가야 할 이유를 갖는 공간에서의 시간은 당연하게도 ‘특별’했고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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