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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Jul 12. 2017

06. 호주 이민, 건설 현장에 서다.

<나는 호주의 행복한 버스 드라이버>

6개월의 조적 과정을 마치고, 나는 전문학교 선생님으로부터 전문기술자(Master)를 소개받아 Murray River라는 곳의 개인주택 건설현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당시 소개받은 마스터는 나와 동갑내기였다. 그리스 출신 이민 2세대로서 20년차의 기술자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애들레이드의 이민자 중에는 이탈리아인들과 그리스인들이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리스인들의 경우 건축기술자 분야에서 많은 활동을 하고 있으며, 이탈리아인들의 경우 외식사업(Restaurant)에 특화되어 있다. 한 가지 더 재미있는 사실은, 그리스의 에게해 문명과 이탈리아의 로마 문명은 아직도 대립하고 있는 듯, 그들은 서로를 비방하며 좋은 사이는 아닌 것 같았다.

견습공(Apprentice)의 계약 기간은 2년으로, 보통 2년간 견습공의 과정을 마치면 준기술자의 수준으로 건설현장에서 꽤 높은 수준의 시간당 임금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첫발의 노동현장은 잔혹한 시간이었다. 우선 신체적인 조건이 서양인들과 다른 나는 체력적으로 엄청난 부담을 느꼈다. 매일 아침 7시경부터 시작되는 일은 오후 4시까지 점심시간 1시간을 제외하고는 쉴 틈 없이 움직이며 마스터의 지시에 따라야 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노동의 강도였다.


게다가 영어라는 언어로부터의 엄청난 스트레스도 받았다. 마스터로부터 나는 언어에 대한 어떠한 배려도 받지 못했고, 공사장의 전문용어뿐 아니라 지시 사항을 이해하는 것도 매우 힘들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으나, 만약 지금 포기한다면 이곳에서 무엇을 하든 너무 쉽게 포기하는 과정이 반복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족을 생각하면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그들은 나만을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나는 용기를 내어 버티기로 다짐하였다.


이렇게 나는 이민 후 6개월 만에 호주사회에 진입하게 되었다. 온몸으로 하는 노동 경험이 전혀 없었던 나는 일을 시작하고 2개월간은 안 아픈 곳이 없었다. 그러나 상상을 초월하는 신체적 고통도 가족을 위해 생존하여야 한다는 의식을 꺾지는 못하였다. 하루 8시간 근무하는 조건으로 계약하였으나 대부분의 날이 근무시간을 초과했고, 8시간 이상의 노동에 대하여는 마스터가 초과 근무 수당을 지급했다. 덕분에 한 달 평균 7백여만 원의 소득을 올릴 수 있었고, 이는 이민 초기 정착을 위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다. 입국 당시 가지고 있었던 4천여만 원(국민연금 해약금)은 자동차 구입과 월세계약, 살림살이 장만 등으로 거의 소진되었지만, 6개월 만의 고수입 덕분에 이민으로 인한 큰 경제적 손실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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