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살림살이 경제학>
지금까지 국가는 일시적 양보를 할 때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기득권층의 이해를 대변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리고 노동운동을 비롯한 시민사회는 반경향을 만들어냈지만 경향성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데는 실패했다. 심지어 기층 민중조차 해방적 경향성을 보이기보다는 기득권층의 시각을 내면화한 결과 자기 배신의 경향까지 보였다.
그렇다면 엘리트 기득권층은 어떤 방식으로 민중을 배신하는가? 다른 말로, 민중은 엘리트에 의해 어떤 방식으로 배신을 당하고 있는가?
첫째, 국민 교육의 배신이다. 열심히 공부하고 노동하면 모두 잘살게 된다는 논리에 배신을 당한다. 물론 극소수의 뛰어난 자들은 성공한다. 세속적 성공이다.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많은 돈을 번다. 이걸 보통 잘사는 것의 핵심이라 말한다. 이 극소수의 모범케이스는 1퍼센트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이를 본보기 삼아 엘리트 기득권층은 99퍼센트의 민초들에게 열심히 하기만 하면 1퍼센트처럼 된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1퍼센트는 우월감과 자만심으로, 99퍼센트는 열등감과 질투심으로 살기를 강요당한다. 이것이 국가와 공공부문이 주도하는 공교육의 본질, 경제 운용과 노동 통제의 본질이다.
둘째, 미래 공약의 배신이다. 엘리트 기득권층은 대중을 상대로 조금만 더 기다리면 좋은 날이 올 것이라 약속하는데, 이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으로 변하면서 대중은 배신당한다. 1960년대에는 대망의 1970년대를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했고, 1970년대가 되니 대망의 1980년대를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라고 했다. 1980년대가 되니 대망의 1990년대를 위해 더 참자고 했으나, 1997년에 대망(大亡)했다. 그렇게 속고도 또 ‘금 모으기’ 등을 통해 속는다. 대망의 2000년이 되어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가 되니, 이제 2만 달러 시대를 향해 허리띠를 졸라매자고 했고, 2만 달러 시대가 되니 3만 달러를 위해 달려가자고 한다. 이런 식이다. 그 과정에서 민초들은 현재의 필요에 걸맞게 알콩달콩 살기보다 미래의 ‘좋은 날’만 기대하며 현재의 욕구를 억압한다. 스트레스와 두려움이 커지고 남녀노소 모두 공격적으로 변한다.
셋째, 공권력의 배신이다. 조세부터 보자. 국가를 이끄는 엘리트는 민초에게 혈세를 거두어 공공복리 증진과 국민 행복을 위해 쓴다고 해놓고서, 실제로는 조세권과 집행권을 오남용해 자원을 낭비한다. 게다가 조세 징수 측면에서는 부자 감세를 실천하고 조세 지출 측면에서는 정부 부처를 막론하고 낭비와 부정이 극심하다. 그러한 낭비와 부정을 은폐·축소하기 위해 경찰과 검찰, 국정원, 법원과 감옥, 언론 등 국가기구를 마음껏 활용한다. 나아가, 다수 엘리트는 공공부문을 통해 좋은 일자리 창출과 공공복리 증진을 해야 함에도 본연의 사명을 잊은 채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골몰한다. 또, 지금까지 혈세를 통해 구축해온 철도나 도로·공항·항구 등 사회간접자본을 민영화라는 이름 아래 사유화하거나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노동력을 유연화해 오로지 수익성을 드높이는 데 활용하려고 든다. 이런행태를 보이는 국가 엘리트들은 공인된 도둑에 불과하다. 노회찬 의원의 말대로, 이들의 업무가 실은 “통상적 범죄 행위”다. 그러니 이들을 두고 ‘공공의 적’이라 부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