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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나이에 따라 변하는 사랑의 형태

<어쩌자고 결혼했을까>

by 더굿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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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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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해도 어머니를 좋아할 수 없고, 아버지에게 버림받은 마음의 상처를 계속 가슴에 안고 살았던 오드리는 깊은 애정결핍을 느끼고 있었다. 어머니에게 오랜 기간 지배받으며 의존하고 자란 결과, 오드리는 확신을 갖고 자신의 인생을 결정해주는 존재에게 의지하지 않고서는 자신을 지탱하지 못하는 일면을 갖고 있었다. 이런 두 가지 욕구로 인해 그녀는 허울만 그럴싸한 남자를 택하게 되고, 똑같은 결과를 되풀이했다.

하지만 실패로 끝난 두 번의 결혼이 완전히 무의미했던 것은 아니다. 특히 첫 남편 멜 페러와의 결혼은 이상화된 아버지의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중요한 판단을 파트너에게 의지하는 의존적인 경향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2살 연상으로 배우이자 영화감독이기도 한 멜에게 아버지 같은 보호자 역할을 기대했지만 이상화가 실망으로 바뀌면서 이런 기대는 환상에 불과하고, 스스로 판단해서 행동하는 것이 훨씬 더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래서 멜과 원만하게 이혼을 할 수 있었다.

두 번째 결혼은 어떤 의미에서 첫 번째 결혼에 대한 반동형성(反動形成: 무의식적인 욕망과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고, 그 욕망의 반작용으로 구성되는 심리적 태도나 습관)이었다. 첫 번째 결혼의 실패에 진절머리가 나서 완전히 정반대되는 상대방에게 마음이 끌리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마흔을 앞둔 오드리에게는 두 번째 결혼으로 육아와 일에 쫓겨 허무하게 보내버린 30대를 되찾고 싶은 심리가 있었다. 몇 번이나 유산해서 둘째 아이를 쉽게 갖지 못하는 것도 큰 영향을 주었다. 젊고 성욕이 왕성한 상대방을 새로운 파트너로 택한 것은 다른 점에서는 완전히 실패했을지라도 아무리 해도 둘째 아이가 생기지 않던 마흔의 오드리를 불과 4개월 만에 임신하게 했다는 점에서는 큰 의미가 있다. 오드리가 아슬아슬한 한계선 끝자락에서 아이를 얻은 것만으로도 젊은 남편은 제 역할을 한 셈이다.

하지만 둘째 아들이 태어나자 두 번째 남편의 존재 의의는 급속도로 줄어든다. 40대에 접어든 오드리는 임신할 가능성이 없어졌다. 성적 능력이 왕성한 남편이 있어도 부담만 될 뿐이었다. 기껏해야 아들의 아빠일 뿐, 제대로 아들을 돌보지도 않고 생활비를 의지하는 것도 아니었기에 남편의 필요성은 적어질 수밖에 없었다.

아이를 낳을 시기를 졸업한 오드리는 삶의 새로운 단계에 접어든다.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Erik Erikson)은 인간의 발달 단계를 여덟 가지로 나누었다. 부부 생활이 생식과 육아라는 의미를 갖는 시기는 8단계 중 ‘장년기’에 해당한다. 하지만 생식이라는 역할을 끝내면 다음 단계로 나아가게 된다. 바로 자아 완성이라는 새로운 역할을 맡는 시기로 에릭슨은 이를 ‘노년기’라 불렀다. 오늘날에는 이 기간이 매우 길어졌다. 특히 여성은 이 시기부터 제2의 인생이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식능력이 없어지고 난 후에도 절반의 인생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노년기라기보다도 참다운 성숙함이 찾아온다는 의미로 먼저 ‘숙년기(熟年期)’가 있으며, 이어서 육체적인 쇠약에 직면하고 죽음을 준비하는 ‘노령기(만년기)’가 찾아온다는 게 현재 상황에 적합한 설명일 것이다. 숙년기가 매우 길어져서 사람에 따라서는 이 시기가 30년 이상이 되기도 한다.

오드리 헵번 사례의 처방은 다음 회에 이어서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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