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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Jun 28. 2016

03. 인연·첫 번째

<엽기적인 그녀>

                                                                                                  제3화.

가끔씩 바보가 되면 세상이 아름다워질 때가 있다.



“형, 밥 먹어~~~!”


“으~응.”

“형, 엄마가 빨리 와서 밥 먹으래. 일어나 빨리이!”

“아라써. 으으 …!”

“형, 지금 9시야 9시!!!!”

사촌동생 녀석이 밥을 먹으라고 깨웁니다. 어제 늦게 아니 오늘 일찍 고모 집에 왔기 때문에 제대로 인사도 못 드리고 오자마자 자버렸습니다. 식탁에 가보니 할머니가 먼저 나와 계시더군여.

“견우 언제 온 거냐?”

“어제 늦게 왔는데 할머니 주무시던데요?”

“얘가 새벽 같이 와 놓고선 무슨 소리야 지금.”

“고모, 그냥 넘어가.”

“무슨 애가 죽은 것처럼 잠을 자니?”

“ …….”

그렇게 아침식사를 하면서 늦은 인사를 드렸습니다. 늦은 아침을 먹고 나니 사촌동생이 웬 종이조각하고 샤프를 가지고 옵니다.

녀석은 고등학교 3학년인데, 공부를 썩 잘하나 봅니다. 예전엔 정말 빼빼 마르고 쬐만했었는데 지금은 키도 저보다 더 크고 목소리도 굵고 제법 어른 티가 납니다.

“엉아.”

“왜?”

“이거 바바.”

“몬데?”

“이것 좀 갈쳐줘.”

“수학이네? 어디 보자.”

‘헉!!’

“형, 왜 그래?”

“아, 아, 아니 그게 아니고 ….”

“모야 형? 얼른 갈쳐줘.”

“야, 임마!!!”

“왜?”

“이건 대학수학 수준이잖어! 고3이 벌써 이런 걸 왜 해? 임마!!”

“어어 …, 이거 친구가 풀어보라고 적어준 건데 ….”

“이딴 건 수능에 안 나와. 쓸 때 없는 짓 하지 말고 문제집이나 풀어!”

진짭니다.

고3이 풀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진짜라니까여.

혹시 공부 잘하는 애들은 풀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으흠 …, 안 믿으시는 눈치군여.

네!! 머 …솔직히 그렇습니다.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모르겠더군여. 그래서 요렇게 모면했습니다. 저 공부 못합니다. 공부란 것 해본 적도 없는 놈입니다. 훌쩍훌쩍~! 츄르르~!

그렇다구!!! 사촌동생한테 모르겠다고 할 수 없지 않습니까?

고모가 커피를 가져다 주시더군여. 한 모금 마시는데 핸드폰이 울립니다.


“여보세여”

“야!!! 너 누구얍? 이 자식앗!”

“네?? 누, 누구세여?”

“나 지금 여관에서 니 메모 보고 연락하는데, 너 당장 나와!!”

“헉!!!”

“너 나와! 지금 당장 나와!”

제가 깜빡 잊고 있었던 어제의 그녀였습니다.

그녀!! 역시 용감합니다.

술에 떡이 돼서 인사불성이었고, 일어나 보니 여관이고, 옆에는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한테 메모가 남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 메모보고 용감하게 전화할 수 있는 여자분 계십니까???

여관 아줌마한테도 분명 물어봤을 테고, 상대가 남자인 것도 알았을 텐데 ….

네, 그렇습니다!

그녀는 난생 처음 보는 남자한테 업혀서 여관까지 들어갔는데 그 남자가 남겨 논 메모를 보고 일어나자마자 전화를 한 것입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그녀는 분명 어제의 일은 하나도 기억하지 못할 것입니다.

다짜고짜 나오라는 말에 쫄아서 저는 그 여관으로 다시 가게 되었습니다. 제가 여관 근처에 도착하니 오전11시 정도 되더군여. 그녀가 여관 밖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멀찌감치 떨어져서 그녀를 보니 어제보다 훨씬 상큼해져 있었습니다.

옷은 그대로 이었지만 세수를 하고 화장을 다시 했나 봅니다.

멀리서 봐도 바람에 날리는 머릿결이 참 곱게 느껴지는 여자입
니다.

그럼 뭐합니까?? 무서운데 …….

솔직히 다가가서 말을 걸기가 무서웠습니다. 그녀는 어제 먼 일이 있었는지 모를 텐데 다짜고짜 이러면 어떡합니까?

“야! 이 자식아!! 개쌕! 씹쌕!”

“ …….”

“너! 나 어떻게 한 거야? 어떻게 한 거야아아아~~!!”

“ …….”

“넌 콩밥 먹어야대!”

흐헉! 이러면 개피 봅니다.

그렇다고 그냥 갈 수도 없습니다. 핸드폰 번호도 알고 있고 그냥 간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닌 거 같습니다.

“저, 저기요.”

“너냐?”

“헉!”

‘이 여자가 대뜸 반말을 ….’
“아, 아니 반말 하시 …십 ….”

“야! 배고프고 속 쓰리다. 밥 먹으러 가자!”

“네 …?! 뭐 드실 건데여?”

저는 그 상황에서 이렇게 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바보 같다구여?

참나! 함 당해 보세여. 저는 절대 그런 말 못함! 못함! 흥!!

그녀와 저는 그렇게 해서 가까운 해장국집을 찾아 들어갔습니다. 점심시간이 다 돼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로 분주하고 시끌벅적 합니다. 해장국집에는 대낮부터 해장은 안하고 술에 취해서 큰소리로 떠들고 있는 아저씨들도 있습니다.

“아주머니, 여기 순댓국 두 그릇 주세요.”

‘헉 …! 모지 …?’

그녀가 지멋대로 주문을 하더군여. 코가 막힙니다.

정말 이 여자갓!!

좀 기다리니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순댓국이 나왔습니다. 저는 상황이 상황이고 늦은 아침을 먹었기 때문에 그렇게 맘이 내키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진짜 잘 먹더군여.

순댓국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고 그녀가 하도 맛있게 먹길래 저도 한 숟가락 떠서 먹었습니다.


‘오옷? 딥따리 마시따!!’

이 가게 건물도 허름하고 안도 지저분한데 음식은 진짜 맛있습니다. 같이 나온 깍두기도 맛있더군여. 배가 고프지 않았지만 또 식욕이 돕니다.

제가 순댓국을 반쯤 먹었을 때 그녀는 자기 껄 다 해치워버리더
군여.

“야! 먹는 게 그게 모냐! 깨작깨작. 안 먹을 거면 내놔!”

라고 하더니 강제로 제 순댓국을 강탈해 가는 것이었습니다.

‘으윽 …!!’(츄르르~!)

제 숟가락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순댓국 국물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습니다.

대체 이게 뭡니까??? 화가 나서 그녀한테 외쳤습니다!!!!

“맛있게 드세여~!”

그녀가 먹는 걸 멀뚱멀뚱 바라보았습니다. 가끔씩 깍두기를 젓가락으로 집어 어그적~ 어그적~~! 씹어 먹었습니다. 그녀가 제 순댓국조차 금세 비워버리곤 제게 말하더군여.

“계산해라. 나가자 ….”

훌쩍~!

어제 친구들과 술을 먹었고, 그녀 때문에 여관비와 택시비로 돈을 다 써버렸지만 고모가 용돈을 하라고 돈을 주셨기에 약간의 돈이 있었습니다. 계산을 하고 순댓국집을 나왔습니다.

“따라와!”

“ …….”

이 여자 모냐? 예뻐서 봐 줄라고 했더니 너무 하잖어 이거!! 이번엔 못 참습니다. 진짜 너무나 화가 나서 그녀한테 말했습니다.

“어디 가시는데요?”

“잔말 말고 따라와!”

“넹~!”

그녀는 이 근처에 자주 오나 봅니다. 길을 잘 알고 있더군여. 저는 그녀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 가면서 제 자신과 대화를 했습니다.

‘그냥 도망칠까?’
‘잡히면 맞아 죽을 걸?’
‘설마 내가 아무리 달리기를 못해도 여자보다 느릴려구,’
‘그냥 갈 때까지 가보자.’
‘이 여자 지금 경찰서 같은 데 가는 거 아닐까?’
‘아냐! 그런 것 같지는 안어. 경찰서를 가려면 처음부터 갔겠지.’

“모해 안 들어 오구?”

화들짝~!

그녀가 저를 뎄고 간 곳은 부평역 근처의 조그만 카페였습니다. 곡명은 알 수 없지만 어디선가 많이 들어봤던 팝송이 흐릅니다. 푹신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불편할 것 같지도 않은 의자와 카키색의 나무 테이블, 한쪽 구석에 있는 책꽂이에는 잡지책들이 잘 정돈되어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조화를 잘 이룬 인테리어를 보니 조그마하지만 꽤 신경을 쓴 카페라는 느낌이 드는 곳입니다.
알바를 하는 안경 쓴 여자가 있고, 사람을 기다리는지 혼자서 담배를 물고 있는 남자와 다정하게 나란히 앉아서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커플도 보입니다. 창가 쪽에 자리를 정해 앉았습니다. 알바생이 메뉴판과 재떨이와 물을 갖다 주더군여.

“여기 커피 두잔 주세요.”

헉 …! 또 그녀 멋대로 주문을 합니다. 그리곤 저한테 이러더군여.

“계산은 니가 하는거다.”

‘이 여자 진짜 능수능란하다. 혹시 지하철에서 술 취한 척 대머리 아저씨한테 오바이트 하고 옆에 이따가 얼떨결에 도와준 남자 베껴 먹는 게 직업이 아닐까 ….’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녀가 먼저 이야기를 하더군여.

“어떻게 된 거야?”

“뭐가요?”

“어제 말야?”

“하나도 기억을 못하세요?”

“그건 아니구. 그러니깐 … 음 ….”

그녀는 어제 일에 대해서 끊어진 필름처럼 장면 장면만 단편적으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제 얼굴은 기억하지 못했지만, 제가 자기를 도와준 것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쓰러지기 직전에 저한테 ‘자기야~’ 라고 한 것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부평역에서 그녀를 업고 미친 듯이 여관을 찾아 헤맬 때는 잠깐이지만 눈도 떴었나 봅니다.

참나~! 그러면 지가 보답을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제기랄! 아무튼 저는 그녀의 기억 속에서 없어져 버린 필름들을 하나하나 연결해 주었습니다.

제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던 그녀, 갑자기 분위기가 이상해집니다. 슬픈 눈이 되는가 싶더니 …,

“사실은 어제 사랑하는 사람하고 헤어졌어.” 라는 말만 하고는 ….

“어엉~ 엉엉~ 으엉~~!!”


뜨악!

그 까페에 있던 사람들 전부가 또 저를 쳐다봅니다.

혼자 앉아 있던 아저씨는 좋은 구경거리가 생긴 양 실실거리며 빤히 쳐다보고 있고, 맞은편에 있는 커플은 나누던 대화를 멈추고 쳐다봅니다.

아무래도 이 여자랑 같이 있으면 주위의 시선을 끌게 되는 거 같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뒤로하고 그녀가 우는 것을 한참이나 지켜보았습니다.

여자의 우는 모습을 보니깐 왠지 가슴이 아픕니다. 이 여자 가까이서 보니까 정말 더 매력적 이더군여.

하얀 피부에 잘 어울리는 머리 스타일과 찰랑거리는 머릿결, 눈을 가리고 있는 손은 아주 작습니다. 들썩거리는 어깨도 가냘퍼 보입니다.

이런 여자가 어떻게 지금까지처럼 행동할 수 있었는가? 연구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기요, 그만 우세요.”

“흑흑흑~~~~!!! 훌쩍 …….”

울음을 참는 그녀의 가슴이 들썩거립니다. 그녀를 겨우 달래 카페를 나왔습니다.

5월 오후의 태양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고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듭니다. 이젠 그녀와 헤어져야 합니다. 하지만 제 맘엔 왠지 모를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 모를 아쉬움이 저를 그녀가 차 타는 곳까지 데려다주게 하더군여.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앞에 저는 뒤에 끌려가는 모습 이였지만 이제는 나란히 걷고 있습니다. 이제 찻길로 나왔습니다.


그녀가 한마디 하더군여.

“야, 차비 좀 줘라!”

저는 택시 타고 가라고 만원을 줬습니다.

저 너무 착하지 않습니까?

사실은 … 무서워서 그랬습니다. 제기랄!!!!

이 여자 생긴 것 답지 않게 절라게 터프합니다. 차비 안주면 또 어떤 만행을 저지를지 모릅니다. 그녀가 택시를 타면서 저에게 말하더군여.

“저녁때 연락할게. 잘 가라.”

그녀가 탄 택시가 눈에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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