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의 이력서>
서른 살이 되었을 때 캐머런은 그녀의 초라한 시작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학사와 석사 학위를 땄으며 대형 소비자 제품 회사에서 브랜드 매니저가 되었으며 업계의 유리천장을 깨고 위로 솟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녀가 CEO가 되는 데 발목을 잡는 일이 하나 있었다. 국제적인 경험이 없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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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스키넥터디에서 살았던 1년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남부를 벗어난 적이 없었다.
매일매일 그녀의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그녀는 기억했다. 이런 식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브라운앤윌리엄슨은 모회사인 브리티시 아메리칸 타바코BAT가 100% 지분을 소유한 미국 지사였어요.” 중요한 경영상의 결정은 런던에서 이뤄졌고 어느 날 미국 지사의 일부 인원이 글로벌 본부로 이동된다는 결정이 있었다. 캐머런이 인원 중 하나였고 두 개의 가능한 자리를 제안받았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그녀는 “48시간 안에 결정해야 했어요”라고 말했다. 캐머런에게는 유독 진전이라는 것이 어정쩡한 순간에 온 것이다. 그녀는 바로 직전에 집을 새로 샀던 것이었다. 그녀는 “아직 가구도 제대로 들여놓지 못했고 새로 산 집을 막 즐기고 있는 때였거든요”라고 말했다.
결정할 시간 중에 1시간 밖에 지나지 않았다. 짐을 쌀 시간이 아직 47시간 남아 있었다. 런던으로 옮겨가고, 집을 팔고 남부에서의 생활을 정리해야 할 상황이었다. 왜일까?
“기회를 잡지 못하면 후회하면서 살게 될 것이니까요. 두려움을 버려야 해요. 저는 새로운 집을 즐겼지요. 하지만 언제든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일단 가서 시도해보는 것이 나았어요. 인생은 리허설이 아니니까요. 위험을 감수하려면 준비가 돼 있어야 해요. 후회는 별로 안 해요. 부정적인 생각에 집착하는 성격이 아니에요. 그건 별로 생산적이지 못하지요. 제가 나쁜 결정을 한다고 해도 전 그것을 바꾸거나 흘러가도록 놔둘 수 있어요.”
그래서 48시간 안에 그녀는 떠날 준비를 했다.
30대에 그녀는 다양한 문화를 다루는 법과 여성으로서의 지도자 역할을 하는 법을 배웠다. 캐머런이 런던으로 옮겨왔을 때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두 가지가 더 두드러졌다. 그녀는 ‘미국과 영국은 같은 언어에 의해 분리된 두 나라’라는 것과 그녀가 ‘여성 역할’을 가지고 남성이 지배하는 분야에서 첫 번째 여성 중 하나로 유리천장을 뚫고 올라가는 것을 배웠다. 문화적 경험은 그녀의 경력을 통틀어 일했던 나라들에서 반복되는 패턴이었다.
“문화에 적응하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미국인들은 여행을 아주 잘하기도 하고 아주 못하기도 합니다. 중간은 없어요.”
처음의 문화적 충격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여행을 아주 잘해냈다. 왼쪽 차선으로 주행하는 런던 사람들, 점심시간이 3시간인 스페인 사람들, 오후 6시가 아니라 밤 10시에 저녁을 먹는 남유럽 사람들에 적응했다.
“전 그것을 존중했어요.” 캐머런은 말했다. “해외 어디서든 맥도날드를 찾는 미국인 중 한 명이 아니었습니다. 해외 경험으로 훨씬 더 넓은 시야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어요. 세계를 보는 시각이 달라졌죠. 시간과 문화에 대한 시각도 달라졌어요.”
그런 변화가 그녀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BAT는 회사가 하나의 단일한 문화를 가진 다국적 기업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회사는 지역의 관행과 경영기법에 있어서 많은 자율성을 인정하는 ‘멀티도메스틱(multidomestic)’ 회사였다. 캐머런이 이 멀티도메스틱 회사에서 계속 승진을 하려 한다면, 각 나라의 지사들이 아닌 그녀 자신이 관점을 바꿔야 했다.
하지만 각 나라의 문화에는 그녀가 이해하지 못하고 좋다고 생각하지도 않는 어떤 요소가 있었다. 여성이 불평등하게 대우를 받는지에 관한 것이다. 국제적인 경험을 쌓으면서 곧 그녀는 원하든 아니든 그녀가 여성으로서의 역할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때로 그것은 회사의 관행을 대놓고 바꾸는 것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멕시코에서는 여성이 임신을 하면 해고됐다.
“믿을 수가 없었어요. 이런 일이 가능하다고 생각도 못 했어요. 회사를 인수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라 아무도 그런 관행에 대해 묻지 않았어요. 물론 BAT가 인수 작업을 완료했을 때 그 관행은 폐지됐어요. 그 나라의 문화를 존중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기준을 가지고 공정성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했습니다.”
다른 경우에 있어서 캐머런의 여성 역할은 좀 더 개인적인 것이었다. 미국에 있을 때 캐머런은 여성 동료가 꽤 많았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그렇지가 않았다.
“잊지 않을 거예요.” 그녀는 회상했다. “구매부에서 일하는 여성 직원 하나가 어느 날 아침 일찍 제게 말했어요. ‘너무 일을 크게 벌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하다가는 우리 모두 망할 수 있으니까요.’라고요.”
그 동료는 혼자서 사다리를 올라가고 있었고 새로운 미국인인 캐머런이 실패한다면 자신도 성공할 기회를 망쳐버릴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상사에게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은 매우 직설적인 일이었지만 캐머런은 화내지 않았다.
“내가 여성을 대표하고 있다는 데 충격을 받았어요. 유럽에서는, 특히 담배회사는 여성이 없었어요.”
캐머런은 성공했다. 그때의 동료에게도 좋은 일이 됐다.
홍콩에서 잠깐 일을 한 것을 포함해 약 60개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10년을 일한 뒤, 캐머런은 외국에 계속 머무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1999년 그녀는 브라운앤윌리엄스에서 처음 일을 시작한 이래 꿈꾸던 자리를 제안받았다. 마케팅 담당 수석 부사장 자리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변한다. 외국에 머물면서 캐머런도 변했다. 한때 캐머런이 원했던 자리는 꿈을 이루는 자리라기보다는 일종의 의무로 느껴졌다. 글로벌 규모에서의 비슷한 일을 더 선호하게 됐다. 캐머런은 “회사는 제가 그 일을 하는 것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했고, 저는 그렇게 했어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마케팅 이상의 것을 맡을 수 있다고 믿게 됐다. 그녀는 뛰어난 소통을 할 수 있는 사람, 권위에 기대지 않고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 ‘사람들이 공동의 목표를 이루도록 자극할 수 있는’ 리더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생각하지도 못했지만 2001년 1월 브라운앤윌리엄스의 회장 겸 CEO로 임명되었을 때 완전히 놀라지는 않았다. 캐머런은 도전에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 역할로 고려된 여러 사람들을 보면서 내가 더 나은 선택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캐머런은 자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회사와 직원, 시장, 브랜드를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BAT도 같은 의견이었다. 2004년 7월 브라운앤윌리엄스는 레이놀즈와 합병을 했고 캐머런은 미국 2위의 담배회사이자 상장사인 새로운 레이놀즈 아메리칸의 회장 겸 CEO가 되었다. 그녀는 2011년 CEO로 은퇴를 했다. 당시 전 세계에서 연봉이 가장 높은 여성 중 하나였다. 하지만 2014년 그녀는 은퇴생활을 접고 다시 CEO로 복귀했다. 그리고 여성에 의한 사상 최대의 인수 작업을 통해 회사를 이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