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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Aug 03. 2017

07. 인과관계도 부정하는 철저한 인식론

<처음 만난 철학>

인간이란 무엇인가?_흄

지금까지의 통찰을 토대로 흄은 인과관계 또한 하나의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고 논한다.

이 주장은 상당히 비상식적이며 어쩌면 의미가 분명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일반적으로 사고할 때 우리가 지각하든 하지 못하든 인과관계는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흄에게 인과관계를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인식론으로서는 철저하지 않다.

예를 들어 지구상에서 공을 던지면 포물선을 그리며 운동한다. 이것은 공에 중력이 작용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보통의 생각이다. 그러나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처럼) 엄밀하게 생각하면 중력이 ‘진정한 원인’인지 아닌지는 결코 알 수 없다. 우리는 중력 그 자체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공의 움직임에서 중력의 존재를 추론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거기에서 인과관계를 인식하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가 인상끼리의 조합을 반복하여 지각하는 사이에 마음속에 인과관계를 만드는 심리적인 ‘습관’을 가졌기 때문이다.

흄이 보기에 인과관계는 결코 필연적인 법칙이 아니다. 그것은 마음속에 습관적으로 상정된 것이며 절대적으로 옳은 것도 아니다. 세계 그 자체에 인과 법칙이 있다는 생각은 독단적인 억측이다.

이 주장은 확실히 과격하지만 철저한 음미의 태도로 뒷받침되었다. 흄은 ‘절대적으로 옳은 인식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회의론자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그저 회의론자인 것은 아니다. 어중간한 상대주의와는 달리 흄의 논의는 상당히 진지하다.


독단론에 제동을 걸다.

모든 인식은 인상에서 출발하여 형태를 갖춰간다는 흄의 생각이 갖는 의의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저 지각의 자세에만 착안하여 인식의 구조를 도출하려고 한 데 있다.

외적 세계가 정말 존재하는가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남아 있다. 데카르트가 방법적 회의로 통찰했듯 아무리 극단적이라고 해도 보이는 세계가 착각에 지나지 않을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식의 보편적인 구조를 밝히려면 외적 세계의 존재를 전제로 삼지 않고 그저 우리의 지각에 착안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만약 세계가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그것이 착각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의식은 확실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모든 인식은 인상을 기초로 한 확신이다. 이 통찰을 토대로 흄은 로크의 경험론을 철저히 계승하고 독단적인 성격을 띠는 합리론에 강력한 제동을 걸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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