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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민주주의가 낳은 괴물, 히틀러

<휴마트 씽킹>

by 더굿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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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리더가 있다. 둘 다 못 된 성품을 가졌다. 대신 한 명은 똑똑하고, 다른 한 명은 그렇지 않다. 둘 중 조직원들에게, 나아가 우리 사회에 더 큰 해악을 끼칠 사람은 누구일까. 답은 명백하다. 똑똑하면서 나쁜 마음씨를 가진 리더다. 나쁜 짓도 똑똑한 사람이 행하면 피해가 더 크고, 사회적 비용도 커진다.

똑똑하지만 바르지 못한 성품을 가진 리더는 휴마트 리더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이다. 그 대표적인 인물로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1889~1945)가 있다. 히틀러는 훌륭한 언변을 갖췄고 사람을 모으는 비상한 재주를 타고났다. 하지만, 일그러진 성품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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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가 깨어있지 않았던 1930년대, 히틀러는 선거라는 민주주의의 제도적 토양을 딛고 권력을 잡았고, 괴물로 변하기 시작했다. 1928년, 총선에서 히틀러가 몸담고 있던 민족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Nazis, 나치스)의 지지율은 고작 2.6%에 불과했다. 그러나 대공황으로 자본주의와 자유주의 체제에 대한 회의가 확산되면서 사람들은 포퓰리즘에 선동되기 시작했다. 히틀러는 그 틈을 파고들어 대중을 자신의 사상 속으로 끌어들였고, 외국인을 혐오하는 민족주의적 선동을 난무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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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뒤인 1930년에 치러진 총선에서 18.3%를 득표하며 제2당으로 도약한 나치는, 1932년 있었던 대통령 선거에 히틀러를 후보로 내보냈다. 히틀러는 이 선거에서 36.7%를 획득하며 힌덴부르크(Hindenburg, 1847~1934)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그 직후 치러진 총선에서 나치는 37.4%를 얻으며 원내 1당이 됐다.

1933년, 힌덴부르크는 히틀러를 총리로 임명했다. 총리가 된 히틀러는 1933년, 모든 정당을 해산하고 의회의 전권을 나치에 위임하는 선거를 치렀다. 그리고 92.1%라는 압도적 득표를 결과로 얻었다. 1934년, 80대의 고령이었던 힌덴부르크 대통령이 사망하면서 총리와 대통령을 겸하는 총통 투표가 치러졌다. 여기서 히틀러는 88.1%의 찬성표를 받으며 합법적 제도를 통해 독일의 전권을 쥐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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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제도를 통해 모든 권력을 손에 넣은 히틀러는 전쟁과 유대인 학살 등 인류 역사에 큰 오점을 남겼다. 전후 독일인들은 이러한 과오를 통해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 제도 자체가 아니라 이를 운영하는 시민의 깨어있는 의식’이란 사실을 깨닫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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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반성의 의미에서 독일의 사회지도층은 전후 국가 재건 과정에서 깊은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하면 이 같은 역사가 재발하지 않을까라는 고민 끝에 나온 것이 바로 시민교육이다. 깨어있는 시민을 만드는 교육, 그것을 민주주의 핵심 과제라고 본 것이다. 그리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시민교육을 국가가 주도하는 방식으로 이끌어 가기로 했다.

독일 현지에서는 시민교육을 ‘정치교육(Politische Bildung)’이라 부른다. 정치교육은 1976년 제정된 ‘보이텔스바흐 합의(Beutelsbacher Konsens)’의 원칙에 따라 이뤄진다. 교화나 주입식 교육을 금하고, 학문·정치 영역에서 논쟁적인 것은 수업에서도 그대로 나타나야 한다. 학생들은 특정한 정치적 상황이나 자신의 이해관계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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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교육은 90년대 이전까지는 깨어있는 시민을 만드는 교육으로, 90년대 이후에는 통일 독일의 출범과 함께 다문화와 다원성을 강조하는 교육으로 진화했다. 2015년 시리아 난민 사태 때 독일 시민들이 난민의 유입을 정책적으로는 받아들일 수 있던 것도 오랜 시간 시민교육을 한 결과였다.

히틀러와 독일의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한국과 독일은 전쟁의 참화를 겪었고, 각기 라인강과 한강에서 기적을 일궈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 외부에서 민주주의를 이식받았고, 급속한 산업화의 과정을 거쳤다. 이는 영국과 프랑스처럼 오랜 진화 과정을 통해 자체적으로 ‘시민’이라는 개념이 만들어지고, 자생적으로 민주주의가 발전한 국가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한국은 1980년대 운동으로서의 민주화를 끝냈고, 1990년대와 2000년대에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를 정착시켰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민주주의 제도를 운용하는 시민의 깨어있는 의식이다. 시민의식이 성숙하고 건강하게 깨어있다면, 제도의 허점 또한 쉽게 보완할 수 있다. 설령 제도적으로 미비한 부분이 있더라도 운용의 묘로 극복할 수 있다. 히틀러와 같거나 그와 비슷한 선동가들의 손에 사회가 흔들리지 않을 건강한 시민의식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 21세기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가장 큰 과제이자 희망은 바로 ‘시민’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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