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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살아가면 고향, 정들면 고향

<그림책과 함께하는 내 인생의 키워드 10>

by 더굿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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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이 흘러가도록>

‘샐리 제인’은 미국의 스위프트강가에 있는 작은 마을에 사는 소녀였습니다. 여름이면 친구들과 강에서 물고기를 잡고, 밤에 뒷마당 단풍나무 아래에 친구랑 나란히 누우면 멀리 기차 소리가 들리고 개똥벌레가 어둠 속을 날아다녔습니다. 추운 겨울에는 아빠가 호수에서 얼음을 잘라냈고, 봄이 오면 단풍나무마다 물통을 걸고 나무의 즙을 받아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서울의 ‘사직동’처럼 이 마을도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어른들이 자주 모여 회의를 하더니 저 멀리 있는 큰 도시에 마을의 물을 주는 대신 돈과 새 집과 넉넉한 생활을 약속받고는, 결국 마을을 물속에 가라앉히기로 결정합니다.

깊이와 넓이를 도저히 알 수 없는 거대한 물 밑으로 사라져 이제 더 이상은 가볼 수 없고 눈으로도 볼 수 없게 됐지만, 그래도 숨 막히도록 아름다운 모습으로 가슴속에 영원히 남아 있을 고향을 가진 샐리 제인이 부러워지기도 합니다. 대도시에서 나고 자라 고향에 대해 이렇다 할 기억도 추억도 별로 없는 저 같은 사람만이 가지는 부러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에게 고향이란 단순히 물리적인 장소나 풍경 그 이상일 겁니다. 도시 한가운데에 있는 동네든, 봄이면 복숭아꽃과 살구꽃이 울긋불긋 꽃 대궐을 이루는 동네든, 우리가 그 속에서 살던 때를 기억하고 추억하는 한 그곳은 우리의 고향 아닐까요.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거나 부모님이 계신 곳만을 고향이라 하지 않고, ‘살아가면 고향, 정들면 고향’이라 말하는 것도 그런 까닭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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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그림책 수업시간에 60대 전후의 남녀 수강생들과 ‘고향’ 하면 떠오르는 단어, 색깔, 사람, 느낌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가슴에 깊게 새겨져 이후로 오래도록, 혹은 평생 우리 안에 남아 결코 지워지지 않는 고향. 그 고향 이야기가 아득히 멀어져 버린 어느 한 시절로 우리를 쏜살같이 데려다주었습니다.

“친구들과 볏짚을 태우며 밤 구워 먹던 생각이 나고, 지금도 볏짚 타는 냄새가 코끝을 맴도는 것 같다… 새소리와 아이들 떠드는 소리… 어스름이 깔려오는 저녁, 밥 냄새가 나기 시작하면 같이 놀던 친구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나만 혼자 남곤 했다. 가슴 아프지만 그 밥 냄새가 내게는 곧 고향이다… 여름밤 멍석 위에 누워서 바라보던 별, 별, 별들… 빛바랜 황토로 다져진 신작로… 커다란 소방서 뒤편에 있는 집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길에서 빨간 불자동차만 보면 아직도 옛집과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봄이면 온 산을 뒤덮던 진달래꽃…”

이제는 사라졌다 해도, 더 이상 가볼 수 없다 해도, 마음속 영원한 둥지인 고향 이야기를 더 늦기 전에 서로 나누고 남겨두어야 하는 까닭은 부모님의 품과 함께 그곳 역시 우리를 키워준 곳이기 때문입니다. 더 늦기 전에 우리 각자의 ‘사직동’을 한 번 찾아가 보는 것은 어떨까요? 깊은 물속에 잠겨 사라지고 만 샐리 제인의 고향처럼 이제는 더 이상 눈으로 볼 수 없다 해도 우리들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남아 있는 그곳으로 한번 가보면 어떨까요?


나의 살던 고향은…

그동안 살았던 곳을 기억나는 대로 모두 표시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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