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더굿북 Aug 07. 2017

05. 나에게 주는 상장 (마지막 회)

<그림책과 함께하는 내 인생의 키워드 10>

<그리운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아홉 살 ‘완바’에게 죽음이란 아주 낯선 말이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아서 아무것도 죽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펠리컨들이 바닷물 위에서 첨벙거리는 것을 바라보던 할머니는 물고기가 펠리컨의 먹이가 되는 것은 위대한 변화라고 말합니다.

왜 모두 죽는지, 계속 살아갈 수는 없는 건지, 완바의 질문에 할머니는 담담하게 대답합니다. 그래야 자연의 섭리가 깨지지 않는다고.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죽음이 필요한 거라고. 그렇다면 할아버지는 왜 돌아가셨을까요.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떠올리며 생의 숨겨진 비밀을 알고 싶어 하는 완바. 『그리운 할아버지』는 아이의 눈을 빌어 우리 모두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그림책 수업을 마무리하는 시간에 ‘나에게 주는 상장’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왔고 앞으로의 시간도 정성껏 꾸려나갈 스스로를 격려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흰 바탕에 테두리를 금색으로 장식한 화려한 상장 용지를 앞에 놓고 다들 고민에 빠집니다. 한참 시간이 흐른 후 돌아가며 앞에 나와서 발표하는 시간, 올해 나이 예순의 참가자가 직접 쓴 상장을 읽어나갑니다.

“상장 1. 공로상. 남편. 위 사람은 나의 소중한 남편으로서 육체가 쇠잔해감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위해 헌신한 공로를 높이 평가하며 이에 상장을 수여함.

“상장 2. 지혜상. 큰딸. 위 사람은 가정과 직장을 오가며 육아를 위해 최선을 다하였고 행복한 가정을 꾸렸으므로 이를 칭찬하고 격려하며 상장을 수여함.”

“상장 3. 성실상. 큰사위. 위 사람은 그동안 가족을 위해 밤낮으로 열심히 일하였고 가정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했으므로 이를 위로하며 상장을 수여함”

“상장 4. 기쁨상. 작은딸. 위 사람은 죽도록 고생하며 학업을 잘 수행하고 있고 가족에게 기쁨을 주었으므로 이를 대견히 여겨 칭찬하고 격려하며 상장을 수여함.”

그런데 한 가지, 이렇게 정성 들여 문구를 만들었으면서도 정작 자신에게 주는 상장이 없어 제가 다 서운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다른 사람 아닌 ‘나’에게 주는 상장을 채워 넣기로 합니다.”

사진: Freepik.com 


이제 우리 인생의 첫 키워드로 돌아갑니다. 나 자신을 먼저 만나 보살피는 것으로 앞에 놓여 있는 남은 생을 준비하려고 합니다. 먼 길 가기에 앞서 운동화 끈을 단단하게 조여 매는 기분입니다.

“요즘 허리가 아파서 고생이 많지? 그래도 조금씩 좋아지고 있잖아. 괜찮아, 괜찮아. 열심히 치료받고 출근하면서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까 너무 속상해하지 마. 힘내!”

“요새 새로운 일 시작해서 신나고 바쁘지. 주위에서는 걱정을 많이 하지만 너는 가능성을 보며 도전했으니까 마치 날개를 단것 같을 거야. 괜찮아, 괜찮아. 걱정 말고 앞만 보며 달려가자. 사랑한다.”

“그동안 회사일이며 집안일에 눌려 힘들었지. 그래도 요즘은 한숨 돌리게 됐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여태까지 어려운 고비를 수없이 넘겨왔잖니. 괜찮아, 괜찮아. 그런데 이제는 힘들면 조금 쉬었다 가자. 그래야 잘 걸어갈 수 있어. 나는 네가 자랑스러워.”

숲속의 밤이 깊어갑니다. 열두 명이 둥그렇게 둘러앉아 요즘의 자기 마음을 그림이나 색깔로 표현한 종이를 앞에 두고, 한 사람씩 돌아가며 자기 이름을 부르고는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자기한테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 괜찮다고 다독이며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조용조용 털어놓습니다.

누군가 울컥하며 목소리가 떨리는가 싶더니, 누군가는 갑작스레 눈물이 터져 말을 잇지 못합니다. 그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면서 모여 앉은 모두의 눈가가 촉촉해집니다. 조용한 음악에 몸을 맡긴 채 차분하게 기다리니, 눈물을 닦으며 스스로를 추스르고는 따뜻하게 자신을 위로하며 괜찮다고 토닥입니다.

직장일에 학업에 집안일에 육아에 간병에, 어느 한 사람 여유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도 한 달에 한 번씩 공부모임을 갖고, 1년에 딱 한 번 1박 2일을 함께 보냅니다. 이번에는 자연휴양림의 통나무집에서 하룻밤을 묵었는데, 맛있는 밥을 먹고 푹 쉬는 것도 좋겠지만 짧게나마 자신을 들여다보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지기로 한 것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 또 꼭 해주어야 할 이야기는 괜찮다고, 너는 최선을 다했다고 지금도 충분히 잘 해내고 있다는 위로와 격려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도 부족한 이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제게 이렇게 말해주렵니다. “괜찮아, 괜찮아.”


매거진의 이전글 09.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누구이며, 어디로 가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