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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상위 1%의 비법, 하브루타?

<휴마트 씽킹>

by 더굿북

“어떻게 생각하니? 왜 그렇게 생각해?” 아빠가 초등학생 남매를 부르더니 하얀 종이를 꺼내 그림을 그렸다. “벤치에 다섯 명이 함께 앉아 있는데 한 사람이 더 와서 앉았어. 그랬더니 의자가 부서진 거야.” 일곱 살짜리 아들은 펜을 들더니 부서진 의자 옆에 당황하고 있는 마지막 사람의 모습을 그렸다. “부서진 의자는 누가 물어줘야 할까?” 아빠의 질문에 열한 살 딸이 말을 이었다. “마지막에 온 사람요. 그 사람이 앉아서 의자가 부서졌으니까요.”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던 아들이 종이 그림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6분의 1씩 나눠 내야 하지 않을까요. 순서의 문제일 뿐 누가 앉았어도 부서졌을 테니까요.” 아들의 대답에 딸이 맞장구쳤다. “맞아. 혼자 앉았다면 부서지진 않았을 테니까. 그런데 벤치는 무엇으로 만들었을까?” 아들이 “나무로 만들었겠지.”라고 하자 딸이 무릎을 치며 말했다. “그럼 의자를 약하게 만든 사람 책임도 있어. 튼튼하게 다시 만들어 달라고 하자.” 딸은 펜을 들어 튼튼한 의자 위에 여섯 명이 웃고 있는 그림을 그렸다.

아빠는 매일 하루 30분씩 자녀들과 수다를 떤다. 자녀들과 웃고 떠들며 대화하는 것이 전부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실천하면서 아이들의 생각 근육을 키운다. 이것이 바로 유대인의 자녀 교육법인 ‘하브루타(Chavruta)’다.

히브리어로 친구 또는 짝을 의미하는 하브루타는, 가정에서 『탈무드』를 함께 읽고 대화하는 것부터 초·중·고교와 대학에서의 토론식 학습까지 포괄하는 유대인들의 교수·학습법을 말한다. 부모와 자녀, 학생과 교사가 동등한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핵심이다. 부모나 교사가 정답을 말하지 않고 아이 스스로 생각하고 말하도록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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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Freepik.com


국내 하브루타 교육의 권위자인 전성수 부천대 교수는 “왜, 어떻게 등 질문 능력을 길러 주는 것이 유대인 교육의 핵심”이라며, “세계인구의 0.2%에 불과한 유대인이 노벨상 수상자의 22%, 아이비리그 입학생의 30%를 배출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고 말했다.

하브루타를 실천하는 이들의 사례를 보면 자녀와의 대화 속에 많은 지혜가 숨어 있다. 이날 아빠가 자녀들과 나눈 두 번째 주제는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 하버드대 교수가 제기했던 ‘기찻길 딜레마’였다.

“네 명의 승객을 태운 기차의 브레이크가 고장 났어. 저 앞에 기찻길은 두 갈래로 나뉘어 있는데, 한쪽 선로에는 철도원 한 명이 일하고 있고, 다른 한쪽은 철로가 끊어진 절벽이야. 여기서 네 명을 살리기 위해 철도원 한 명이 일하고 있는 선로로 방향을 트는 것이 옳을까?” 아빠의 질문에 남매는 ‘승객 네 명을 살리자’와 ‘철도원을 죽게 해서는 안 된다’로 입장이 갈렸고 열띤 토론을 벌였지만 결론은 나지 않았다.

남매는 토론하는 과정에서 정답보다 소중한 철학적 가치를 터득했다. 다수의 행복에 손을 들어 주려면 소수의 권리를 희생시키지 않으려는 노력도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벤담의 공리주의나 롤스의 정의론을 달달 외우지 않고도 이 같은 대화를 통해 스스로 그 원리를 깨치는 것이다.

이처럼 하브루타의 결론에는 정답이 없고 모든 게 열려 있다. 한국 부모들은 정답이 없으면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끼지만, 아이 스스로 궁리할 수 있는 ‘생각의 물음표’가 많아야 사고력과 창의성이 높아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렇다면 별도의 시간을 투자하지 않고도 하브루타를 쉽게 실천해볼 수는 없을까. 다행히 일상 속 대화법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하브루타 교육의 효과를 볼 수 있다. 조금만 느긋하게 여유를 갖고 ‘어떻게’와 ‘왜’라는 단어를 잘 사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파트 복도에 놓인 자전거를 ‘치우라’고 말하는 대신 자전거를 방치해 뒀을 때 벌어질 상황을 예측하게 하고, 스스로 ‘치우겠다’는 말이 나오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또, 동생처럼 자기보다 어린 사람에게 자기 스스로 깨달은 지혜를 알려주게 해 함께 아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준다.

하브루타의 효과는 실제 교실에서도 증명됐다. 2014년 부산교대 석사논문(장영숙)에 따르면, 부산의 한 초등학교에서 3개월 동안 하브루타 방식으로 과학수업을 진행했더니, 일반수업보다 탐구능력 향상도가 월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 수업을 진행한 반의 과학탐구 능력은 79.2점에서 76.9점(만점 120점)으로 별다른 변화가 없었던 반면, 하브루타 수업을 진행한 반은 77.1점에서 103.1점으로 눈에 띄게 높아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반드시 하브루타와 똑같은 방식으로 교육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아이 스스로 궁리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고, 자기주도적 역량을 키우는 교육 방식은 우리도 배우고 실천해야 할 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부모와 교사가 먼저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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