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마트 씽킹>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비슷한 뜻으로 “외나무가 되려면 혼자 서고, 숲이 되려면 함께서라.”는 속담도 있다. 미래세대를 키우는 교육도 역시 같은 원리다. 아무리 가정교육을 잘 받은 아이라도 친구와의 관계에서 잘못된 것을 배우면 나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교육도 공동체가 함께 나서야하는 이유다.
경북 포항의 구룡포가 대표적인 사례다. 과메기의 주산지인 구룡포의 겨울은 아이들에게 유난히 추웠다. 청어나 꽁치를 겨울 해풍에 말려서 만드는 과메기는 수작업이 많아 제철이 되면 어른들이 집을 비우기 일쑤였다. 그 때문에 과메기 철인 10월부터 2월까지 아이들은 혼자 방치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지역적 특성 때문에 한때 구룡포는 문제 아이들이 많은 동네로 불렸다. 이 지역 아이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장래 희망을 ‘다방 아가씨’나 ‘깡패’로 적어낸 아이들도 여럿 있었다고 한다. 도시의 아이들처럼 다양한 경험을 하지 못하다 보니 꿈마저 가난해지는 일상이 반복됐다.
변화는 몇몇 주민들의 뜻 있는 실천에서 시작됐다. 구룡포 읍내의 중국집 사장은 매주 토요일마다 20여 명의 아이들과 신나게 공을 찼다. 운동이 끝나면 자신의 중국집에서 자장면을 먹였다. 얼마 후 읍내 목욕탕에서는 아이들에게 공짜로 목욕을 시켜주기 시작했다. 이렇게 주민들의 재능기부가 하나둘 늘기 시작했다.
2008년, 주민들은 ‘구룡포아동복지위원회’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50여 회원들은 먼저 환경정화운동을 시작했다.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유해환경을 없애자며 캠페인을 벌였다. 술집과 다방 등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는 업소들의 자정 운동과 함께 유해 전단지 살포를 막는 것도 이들의 역할이었다.
재능기부에 참여하는 주민들도 더 늘어 미용실과 피아노·태권도 학원은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헤어컷 비용과 수강료를 절반만 받기로 했다. 보습학원에서는 저소득층 학생을 위한 무료 과외를 시작했다. 지역 수산물협동조합에서는 매년 물고기를 가장 많이 잡은 선주에게 500만 원 정도의 상금을 받는데, 이 상금을 기부하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밤마다 조를 짜 아이들의 안전한 귀가를 책임졌다. 매달 놀이동산, 유적지 등지로 아이들과 함께 떠나는 문화체험 활동도 진행했다. 2012년에는 구룡포 오케스트라단을 창단했다. 아이들에게 악기를 지원하고, 교육을 하며 그동안 접할 수 없었던 클래식 음악과 만나게 했다. 실력이 붙자 나중에는 재능기부로 공연하러 다니며 아이들로 하여금 지역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기회도 생겼다. 이처럼 어른들이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아이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인성이 밝아졌고, 과거처럼 ‘깡패’ 같은 꿈을 적는 일도 사라졌다.
학업 능력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2010년 구룡포초등학교의 기초미달 학생 비율은 국어(1.4%), 영어(8.5%), 수학(2.8%) 모두 높게 나타났다. 그런데 2012년에는 전 과목 모두 기초미달 학생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온 마을이 아이들을 키우는 데 힘을 모으자 구룡포에 기적아닌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교육은 다른 동물이 갖지 못한 인간만의 특징 중 하나다. 어미 사자가 새끼에게 생존하는 법을 가르치긴 하지만, 본능 차원에서 이뤄지는 동물의 훈육과 사회적 차원에서 이뤄지는 인간의 교육은 차원이 다르다. 인간은 교육을 통해 선대로부터 축적돼온 지식을 학습하고, 올바른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배운다.
오늘날 많은 이들이 교육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지나치게 많은 것을 학교에만 의존해 왔다. 그러면서도 입시교육만이 유일한 교육의 목표인 것처럼 모순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교육의무는 교사에게만 있는 게 아니다. 아이 한 명을 키우기 위해 온 마을주민들이 나설 때 진정한 교육이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